시퀘스터 sequester

[입사시험에 나와! 족집게 경제상식] 빚이 많다고? 그럼 돈 쓰지 마!
경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키지 않아도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 있어. 최다 출연 1위는 당연히 미국이야. 세계에서 제일 힘 센 나라에다 경제 1위의 대국이고, 거기다 기축통화국이기까지 하니 부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이번에도 ‘미쿡 형’들 얘기 좀 해 볼까 해.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돈 많은 나라? 탱크 많은 나라? 땅 넓은 나라?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 소위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가 아닐까 해. 중국이 돈을 긁어모으며 G2니 뭐니 하지만, 그들을 선진국으로 부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뜬금없이 웬 선진국 타령이냐고? 바로 이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장황해졌구먼. 미안~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 달러를 맘대로 찍어 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미국이란 건 이미 앞서 얘기했어. 그런데 지금 미국 연방정부는 돈이 없어서 탱크도 못 만들고, 공무원 출장비도 못 주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 돈이 없으면 언제든 찍어 낼 수 있는 분들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셨을까? 해답은 ‘시퀘스터(sequester)’ 때문이야.

시퀘스터는 원래 ‘격리한다’ 혹은 ‘가압류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야. 재정 분야에선 ‘일괄삭감’이란 뜻으로도 쓰여 왔지. 요즘 경제뉴스에 단골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퀘스터는 미국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 삭감’을 말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퀘스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올 3월 들어 결국 발동됐다’는 게 기사의 요지지. 또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최근의 유럽 재정 위기 등 연이은 경제 위기와 불황으로 어려움에 빠진 세계 경제가 시퀘스터 발동으로 더욱 위축될 거란 비관적 뉴스도 쏟아지고 있어. 세계 경제를 암흑으로 몰고 있는 이놈의 시퀘스터란 게 대체 뭘까?


재정지출 한도 넘으면 예산 자동 삭감
시퀘스터는 1985년 필 그램 상원의원 등이 발의한 ‘균형예산 및 긴급적자통제법’에 뿌리를 두고 있어. 재정과 무역 모두 적자 상태인 ‘쌍둥이 적자’로 고생하던 시절의 고육지책이었지. 더 이상의 적자 재정을 꾸려가다가는 국가 디폴트를 면치 못하리라는 위기감에 일단 국가 부채를 줄이기로 한 거야. 이를 위해 우선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에 한도를 정했어. 또 의회와 정부가 별도 합의를 하지 못하면 시퀘스터 법안이 자동으로 발효되게끔 했지. 재정적자가 허용한 최대 규모를 초과할 것 같으면 예산집행 중이라도 시퀘스터에 의해 정부지출이 자동으로 삭감돼. 쉽게 말해 미국 정부가 거둔 돈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쓰려 하면, 법으로 더 이상 못 쓰게 막아 버리는 조치야.

막무가내식 달러 찍어 내기 신공이 있는데 왜 그랬을까? 무한정 돈을 찍어 내면 낼수록 달러화의 가치는 떨어지겠지?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 미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예 돈 쓰는 걸 강제로 줄이기로 한 게 바로 시퀘스터란 얘기야.

지난 3월 1일 발동된 시퀘스터로 인해 미국 정부 예산은 국방비 427억 달러를 포함해, 9월 30일 종료된 2013년 회계연도에만 850억 달러(약 90조 원)가 강제로 삭감됐어. 또 올 10월부터 시작된 2014 회계연도를 포함해 앞으로 10년간 회계연도별로 1100억 달러씩 자동으로 삭감될 예정이야. 미국의 재정지출 중단→미국 경기 위축→세계 경제 악영향. 뭐 이런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지. 남의 집에서 돈 안 쓰고 아낀다는데, 왜 우리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경제위기를 야기할지도 모르는 강제 예산 삭감이라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스템이 그러니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미쿡 형들의 논리지.

우리는? 올해 세수 부족분이 10조 원을 넘길 거란 뉴스가 나오고, 재정적자 시한폭탄이란 말까지 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추경’이란 진통제로 연명하기 급급한 게 현실이지. “미국 애들 때문에 우리만 힘들다”라고 투덜대다가도, 당장은 힘들어도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해.


글 장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