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학교는 ‘울타리’다. 웬만한 실수는 ‘학생이니까’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라며 용서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졸업, 즉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세상은 돌연 삭막해진다.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기 일쑤고, 열정을 갖지 못한 것도 직장에선 죄가 된다.

뭐라도 될 것 같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를 쓰고 들어간 직장에선 꿈이란 단어보다 현실이라는 쳇바퀴에 맞춰 사는 부속품이 되기 십상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선택한 보편타당한 길. 하지만 여기 그 보편타당함 대신 스스로 꾸미는 삶을 선택한 청춘들이 있다. 나이 쉰에 명예퇴직한 후 자영업 일선에 뛰어드는 공식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창업’이라는 고생길을 자처한 이들이다. 누군가가 뽑은 사원으로 일하는 대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스스로 CEO가 된 청년들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이, 청년들 스스로 함께하는 삶을 위해 뜻을 모은 이, 돈 버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의미를 실천하는 이…. 각자가 하는 일도 생각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화두는 있다. 무작정 정해진 길만 따라가지 않겠다는 용기와 열정이다.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형제가 만드는 착한 떡, 대령이오~

온종일 떡과 씨름하며 ‘정직함’을 전달하기 위해 손을 걷어붙인 두 청년이 있다.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형제 CEO 박호성(33) 씨와 박경민(32) 씨다. 이들은 창업 2년 만에 ‘억’ 소리 나는 매출을 올리며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블루베리, 망고, 12간지 떡케이크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자이소’의 박호성 대표를 만났다.

PROFILE
2008년 12월 인터넷 쇼핑몰 설립
2011년 6월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벤처기업 인증
2011년 9월 삼성동에 오프라인 매장 오픈
2012년 6월 ‘cafe JAISO’ 가맹사업 시작


‘빵세대’ 박호성 대표가 떡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건 외삼촌의 영향.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박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를 갔다. 그리고 제대 후 손에 아무것도 쥐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긴 방황을 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가 외삼촌의 떡 공장 아르바이트를 권유했고 그곳에서 떡 만드는 재미를 느꼈다.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동생에게 사업을 제안했고, 함께 ‘자이소’의 문을 열었다. 처음 3개월 동안의 매출은 제로. ‘좋은 재료로 좋은 떡을 만든다’는 목표 하나로 묵묵히 일했다.

떡 디자인부터 재료, 이벤트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매출 20억의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떡 가게가 됐다. 2011년부터는 ‘카페 자이소’도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메뉴를 선보일 수 있을지 직원들과 항상 고민한다. 덕분에 자이소의 전등은 꺼질 날이 없다.


Q 형제가 함께해서 좋은 점이 있나요?
극과극의 성격을 가진 형제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줘서 좋아요. 처음 시작했을 때도 가족이어서 그런지 소통도 잘되고 손발이 척척 맞았어요.

Q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떡 사업을 시작할 때 자금이 부족해서 먼저 온라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매장도 없고 인지도도 없으니 당연히 손님이 없었죠.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함께 일하던 직원 한 명이 말하더라고요. “힘내서 같이 조금만 더 견뎌봐요. 준비한 만큼 빛을 볼 거예요”라고. 몇 개월째 월급도 못 받는 직원이 오히려 저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Q 운영하면서 꼭 지키는 것이 있나요?
창업하기 바로 직전, 유명한 떡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 회사에서는 밥으로 먹는 쌀이 아니라 개나 동물에게 사료로 주는 쌀로 떡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떡의 색은 색소로 냈죠. 그러면서 인터넷 사이트에는 경기도 이천 쌀로 만들고, 천연 재료로 색을 낸다고 게시하더라고요. ‘뭔가 잘못됐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떡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자이소를 시작했어요. 저희는 무색소, 무방부제, 천연 재료는 꼭 지키고 있어요. 우리의 착한 떡을 이영돈 PD가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예요.(웃음)

Q ‘대박’ 노하우가 궁금해요
남들이 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특이하고 더 재밌는 제품을 생산하고 싶었죠. 사람들은 ‘떡’ 하면 ‘구식’ ‘옛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맛있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먹으면서 영감도 얻고 시장조사도 다니면서 베이커리나 양식과 접목하려고 노력했어요. 양식과 한식의 퓨전에서 오는 새로움을 손님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쓴다는 것을 마케팅에 잘 활용한 부분이 자이소의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Q 창업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사람들은 창업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어요. 100개 중에 3개 성공하고 10개 유지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창업은 정말 힘들어요. 경쟁력 있는 창업을 하려면 첫째, 남들이 안 하는 아이템으로 해야 하고 둘째, 시작했다면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준비를 정말 많이 하고 시작하세요. 아이템에 대해 잘 모르고 쉽게 뛰어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거든요.


글·사진 정부경 대학생 기자(중앙대 패션디자인 3)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들어는 봤나? 옥수수로 만든 양말

‘옥수수 양말’, 이름 하여 콘삭스(Cornsox).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한 켤레에 8000원. 가격도 만만치 않다. ‘과연 잘될까’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콘삭스는 탄생했고, 지금은 특허를 출원 중인 ‘잘나가는’ 아이템이 됐다. 2011년 설립된 벤처기업 ‘더뉴히어로즈’의 이야기다. 직원은 3명뿐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지는 더뉴히어로즈의 대표 이태성(31) 씨를 만났다.

PROFILE
2011년 사회적 기업 더뉴히어로즈 설립
2012년 9월 콘삭스 브랜드 론칭
2013년 ‘옥수수로 양말을 만드는 제조방법’ 특허 출원 중


취업문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이태성 대표는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어 과감히 사표를 냈다. 막상 회사를 관두니 ‘꿈’은 보이지 않고 ‘현실’만 보였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정부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해준다는 말에 아이템을 찾아나섰다. 소비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패션 아이템, 그중에도 패션양말에 주목했다. 소모품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치를 지닌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화적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양말을 만드는 ‘면’은 환경문제에서 걸림돌이었다.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옥수수 섬유’를 알게 됐고, ‘이거다!’ 싶어 기획에 들어갔다. 그 결과 청년 사회적 기업가로 선정돼 본격적으로 콘삭스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옥수수 섬유로 양말을 만들자 ‘이렇게 사용하면 필요한 사람들이 못 먹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국제옥수수재단’과 손잡고 아프리카 최빈국 부르키나파소에 수익 중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Q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존에 없던 상품을 만드는 것이고 사회적 기업 모델이다 보니 지지를 얻기가 힘들었어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사회적 기업’ 하면 떠오르는 것이 취약 계층을 고용해서 상품을 만들거나 노인들을 돌봐주는 사업인데 그런 것들은 상품의 질이 떨어지거나 멋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옥수수 섬유로 만든 양말은 일반 면에 비해 강도가 조금 떨어지는데, 부자재가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아요. 하지만 가끔 이런 문제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있어 계속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왜 기부를 생각하셨나요?
처음에는 패션양말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공업용 옥수수이긴 하지만 식량자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많은 기업이 ‘그런 문제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를 만났을 때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 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옥수수재단을 통한 기부를 결심했죠.

Q 어떤 식으로 기부가 이루어지나요?
옥수수재단에 최빈국 연결을 부탁했어요. 지금 기부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최빈국이에요. 아프리카의 빈곤 국가는 식량을 자국 내 농업생산력에 의존하고 있어 단순한 구호식량 보급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해요. 그래서 저희는 부르키나파소에 옥수수 농가를 만들어 작게나마 빈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해요. 장기적인 기부 구조를 만드는 거죠. 멀리 본다면, 교육까지 기부 범위를 확대하고 싶어요. 빈곤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해요. 자신들이 처한 사회 환경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기부 아닐까요.

Q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항상 윤리적 소비와 기업의 원래 목적을 생각해요. 저는 기업의 가장 큰 목표가 ‘이윤 창출’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에디슨이 과연 돈을 벌 생각으로 전구를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이 밝은 곳에서 생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기업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의 대가로 돈을 받아요. 기업의 원래 목표를 찾는 것이 저희 목표이고, 그 과정에서 일을 재밌게 해나가고 싶어요.


글·사진 박지원 대학생 기자(충북대 국제경영 3)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재밌는 벌집에서 웰빙 음료가 뚝딱!

도시 한복판에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벌집. 벌집은 형형색색의 블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과일음료 전문점 ‘비스켓(Beesket)’ 매장이다. 과일과 채소 그림이 그려진 동그란 블록 중 원하는 것을 골라 벌집 모양의 통에 넣어 가져가면 그 자리에서 블록에 그려진 과일과 채소를 갈아 나만의 음료를 만들어준다.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이 벌집의 주인은 조성훈(33) 이온씨드 대표다.

PROFILE
2010년 6월 (주)이온씨드 설립
2010년 8월 특허 출원 9건
2010년 10월 비스켓 브랜드개발연구소 설립
2011년 8월 비스켓 종로 본점 오픈


여름만 되면 카페는 물론 길거리에서도 생과일주스 전문점을 만날 수 있다. 너도나도 같은 메뉴에 ‘웰빙’을 달고 나왔지만 ‘레알’ 웰빙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조성훈 대표는 원하는 과일만 섞어 만든 건강한 한 잔의 과일주스를 연구했다.

토론토대학 경제경영학과 출신의 조 대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창업을 결심했다. 브랜드 개발과 디자인경영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헬싱키경제대학에서 디자인경영을 공부하고, SADI 삼성디자인학교에서 제품디자인을 수료하는 등 브랜드 개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2010년 브랜드 개발 회사인 (주)이온씨드를 설립했고, 1년 동안 브랜드 연구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1년 8월, 그의 첫 브랜드인 비스켓이 탄생했다. 비스켓은 ‘나만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또 어딜 가나 ‘웰빙’을 찾는 고객들에게 정확한 영양 정보를 제공한 것도 비스켓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Q 비스켓의 시스템을 생각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개인이 입는 옷도 좋아하는 옷도 다르듯이 개개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카페에서 사람들이 메뉴를 고르는 데 한참 걸리더라고요. 시간 낭비 같았어요. ‘이런 시간을 즐거운 행위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시간을 음료를 만들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꿨어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Q 과일음료 전문점의 이름이 왜 비스켓인가요?
여러 종류의 꽃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꿀을 담는 ‘벌(Bee)’과 여러 가지 재료를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바구니(Basket)’ 두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매장과 제품 인테리어도 벌집을 콘셉트로 잡았죠.

Q 창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요?
정리한 아이디어를 보면서 ‘타당성 여부’와 ‘마케팅 가능 여부’를 판단했어요. 그리고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죠. 창업을 준비할 때 기획서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개발, 디자인, 브랜드 기획, 인테리어, 음료개발, 품평회, 품질경영 모든 분야를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없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조립식 블록 장난감 ‘레고’로 인테리어를 구상하면서 동선을 파악했고, 음료와 농축액에 대해서도 공부했죠.

Q 운영하는 데 겪는 어려움이 있나요?
어떤 계획이 있어서 그것을 이뤘을 때, 그 다음 단계를 위한 변화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한계를 잘 알고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또 하나는 인력난이에요. 벤처기업을 함께 세워 키워나갈 도전적인 인재를 찾는 일이 어렵더라고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만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Q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실행하는 용기를 가지세요.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과 용기만 있으면 돼요.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우선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저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험을 쌓았고, 그것을 통해 조금이나마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글·사진 김묘진 대학생 기자(신구대 사진영상미디어 3)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10만 원으로 시작, 대학생의 점심 친구로

18전 17패, 그리고 값진 1승. ‘봉구스밥버거’는 그렇게 이뤄낸 오봉구(본명 오세린·28) 대표의 결실이다. 정이 넘쳐나는 이름, ‘봉구’가 만든 밥버거는 전국에 300개가 넘는 체인점을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수많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유난히 ‘봉구스밥버거’의 노란 간판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PROFILE
2011년 봉구스 밥버거 설립
2012년 8월 프랜차이즈 사업 시작
가맹점 수 : 300개
직원 수 : 20명


10만 원. 창업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무모했지만 ‘봉구’의 밥버거는 그렇게 시작했다. 특목고를 나온 오봉구 대표는 공부깨나 하는 학생이었지만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며칠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결국은 스스로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어묵, 군고구마 등 길거리에서 사업을 펼쳤고, 실패가 계속됐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0만 원을 투자해 수원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팔기 시작한 밥버거는 이틀 동안 단 한 개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첫 손님으로 한 학생이 찾아왔고 그 학생의 홍보 효과 덕분에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오봉구’는 그때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스스로 만든 닉네임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수원역 근처에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작은 가게를 열었다. 도로까지 손님들의 줄이 이어질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프랜차이즈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해 지난해 8월부터 전국에 3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Q 창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창업이 쉬워 보였어요. 경험하면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여러 번 실패를 겪으며 매출이 좋은 점포와 그렇지 않은 점포를 파악하고 관찰하기 시작했죠. 손님 유형이나 정보를 메모해두는 습관은 그때 기른 거예요. 그때는 마케팅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작정 달려들길 잘한 것 같아요.

Q 지금의 위치까지 오는 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봉구스밥버거를 시작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친구들의 취업 소식과 부모님의 압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쉽지 않았죠. 하지만 길거리에서 학생들에게 팔던 기억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어요. 저는 공격적으로 일을 해요. 의지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미친 듯이 몰두하죠. 절대 기죽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 노력해요.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힘들 땐 그렇게 생각해요.

Q 창업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얼마 전에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봤어요. 아이템도 자본도 실패 원인이 아니었어요. 1위는 미숙한 운영이었어요. 창업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템과 장사의 ‘목’은 전문가 수준인데 정작 그 모든 걸 합친 것만큼 중요한 자신의 운영 능력을 잘 알지 못해요. 예를 들어 ‘손님과 직원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마케팅, 매장 분위기, 돈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막을 것인지’ 같은.

작은 매장이라도 CEO의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연구하면 자연스럽게 생길 거예요.

또 한 가지, 성공했을 때 ‘돈을 낭비하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똑같은 자본으로 시작했을 때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업을 해서 번창하여 가게가 두세 개씩 늘어나는 곳이 있어요.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해요.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소자본 창업자들과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저의 경험들이 다른 창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2의 봉구스밥버거가 나오는 그때를 꿈꾸고 있어요. 지금은 해외 영업을 준비 중이에요.


글 김묘진 대학생 기자(신구대 사진영상미디어 3)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꿈꾸는 청년들의 대안은행

취업컨설팅, 각종 멘토링 프로그램, 그도 아니면 힐링 토크 콘서트까지.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되면서 청춘은 진취나 열정보다는 위로와 다독임의 대상이 돼버린 듯하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자리 잡은 ‘토닥토닥협동조합’(이하 토토협)도 조합의 이름에서 짐작하듯 삶의 무게에 지친 청년들을 위로해주는 곳이다. 대신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을 주자’는 게 이들의 모토다. 바로 ‘돈’이다.

PROFILE
2010년 청년유니온 1기 사무국장
2012년 7월 청년연대은행 추진위 구성
2013년 2월 토닥토닥협동조합 이사장(현)


“꿈꾸는 청년들의 연대은행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금융생활 협동조합이죠. 단기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이 태반이라 생활은 불안정하고, 은행 문턱은 높고, 다른 데서 빌리자니 고금리에 허덕이게 되고…. 청년들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고민을 해결해보자 생각했어요.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죠.”

청년연대은행을 고민하다 ‘상호부조’라는 키워드를 고민했다는 조금득(34) 토토협 이사장. 조합원 개개인이 출자해 서로의 어려움을 돕는다는 취지가 자연스럽게 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조 이사장은 지난 2010년 화제가 됐던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조 ‘청년유니온’의 창립 멤버이자 1기 사무국장 출신이다.

Q 토토협 창립 계기가 궁금해요.
제 별명이 알바천국이었어요.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죠.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어요. 실질적인 생활 안전망이나 대책이 정말 막막하더군요. 자립적인 대안 안전망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작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위를 구성했고, 올 2월에 토토협을 창립했어요.

Q 협동조합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화(02-332-5804)나 온라인 카페(cafe. daum.net/ybank1030)를 통해 가입하시면 돼요. 만 15~39세면 누구나 가능하죠. 조합원이 되면 출자금을 내야 하는데, 최소 월 5000원에서 최대 5만 원까지 출자할 수 있어요. 6개월 이상 출자해야 일반대출 적용 대상이 되죠. 현재 조합원 수는 300명 수준이에요.

Q 대출은 어떻게 신청하고 얼마를 받을 수 있나요?
일반대출은 50만 원(연 이자 2%, 상환기간 10개월), 범위 내 대출은 본인 출자금의 70%(연 이자 1%, 상환기간 10개월)까지 받을 수 있어요. 긴급대출은 20만 원(연 이자 2%, 상환기간 3개월), 토닥이대출은 30만 원(무이자, 상환기간 10개월)을 받을 수 있죠.

Q 대출 조건에 ‘토닥이씨앗’이 있던데요, 무엇인지 궁금해요.
토토협은 크게 금융협동과 재능생활협동으로 나누어 운영해요. 금융은 긴급자금 대출이 주요 업무이고, 재능생활은 재무적 어려움뿐 아니라 청년들의 외로움과 고립감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을 목표로 하죠. 예를 들어 외국어나 자격증 같은 재능 기부,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 포기한 경우 등 얼굴을 맞대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거죠. 이런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면 토닥이씨앗을 받을 수 있어요. 이 밖에 철학·역사 소모임, 조합원들이 만든 영화를 직접 상영했던 ‘캔맥영화제’, 사람이 책이 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받는 ‘사람책’ 활동 등 다양한 문화·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Q 서울시 등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지원은 없나요?
서울시 주요 활동 중 하나가 ‘청년혁신활동’ 이에요. 토토협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팀들,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팀들을 매칭해주고, 급여도 지급하며 같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구체적 미션이 있는 팀을 선정해서 사업을 돕는데, 토토협은 ‘금융자활공동체와 청년 재무치료사가 만드는 빛나라(빚놔라) 프로젝트’가 선정됐어요.

Q 그 밖에 청년들을 위한 지원 활동은?
토토협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인데요, 바로 청년 재무상담이에요. 학자금, 주거 비용 등으로 위축된 청년들이 많잖아요. 경제적 문제, 부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 재무상담과 교육에 집중하고 있어요. 토토협의 수익 기반이기도 하죠.


글 장진원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CEO 멘토링
“성공은 실패의 부산물… 네 아이디어를 믿고 일단 시작해봐!”

다하누는 한우로 유명한 농업회사 법인이다. 강원도 영월의 한우마을 ‘다하누촌’은 전국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고기를 먹으러 오는 테마 관광지다. 다하누촌이 유명해진 것은 획기적인 유통 방식 덕분. 지역 한우 농가에서 바로 다하누 매장으로 상품을 공급, 중간 과정 없이 바로 소비자를 만나는 구조로 가격 거품을 싹 걷어낸 것이다. 한우 농가 살리고, 지역 경제도 살리고, 소비자 주머니까지 살려낸 대표적인 아이디어 창업 케이스인 셈이다.

다하누 프로젝트는 30년 경력의 ‘고기 장사꾼’ 최계경 대표의 작품이다. ‘육도락가’를 자처하는 최 대표는 1983년부터 ‘고기’로 사업을 시작해 숱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 다하누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더구나 다하누촌이 위치한 강원도 영월은 그의 고향.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바람직한 기업상을 만들어낸 그를 한국창업동아리연합회(PEUM·피움) 회원들과 만났다.



Q 다하누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요.
5대조 할아버지께서 소 장사를 시작, 이후 100여 년 동안 가업으로 승계했습니다. 1979년부터는 아버지가 소 장사와 함께 비육을 하셨어요. 나도 당연히 쇠고기 관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육점 사업을 시작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을 찾았는데, 이때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더군요. 단순히 조상 대대로 하던 가업이라서 잇는 게 아니라 고향 사람들과 상생하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고민했어요. 구상 끝에 나온 게 지역 브랜드화 사업인 ‘다하누촌’이에요. 영월 한우를 직거래로 판매하고, 주변 식당은 상차림비를 받고 운영 수익을 내는 공생 시스템을 만든 거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 간판을 통일하고 유니폼이나 운영 방식까지 규격화하는 과정을 거쳐 다하누촌이 탄생했어요. 2007년 영월 다하누촌을 시작으로 2009년 김포 다하누촌, 2011년 판교 다하누AZ쇼핑에 이르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Q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요.
30년 동안 정육점 사업부터 외식 프랜차이즈, 축산물 유통업까지 두루 경험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어떤 업종을 하든 ‘고객과 눈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장사의 기본 중 기본이죠. 다하누가 직거래를 통해 양질의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고객과 눈을 맞추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한 번 이용한 사람이 또 이용하고, 결국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거예요. 고객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에도 이 원칙은 변함이 없어요. 비록 회사에서 잘못한 게 없다 하더라도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고, 충분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합니다. 모두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감수하는 거죠. 그래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Q 대학가에서 인기를 끄는 저가형 외식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어요.
저렴하게 판매하면 당장 인기를 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경쟁력 있는 가격’, 이것만으로 고객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하거든요. 싼 가격을 받으니 상대적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여력이 없는 것이죠. 반대로, 값을 비싸게 받지만 고객이 매우 만족하면 어떨까요. 싼 가격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보다 비싼 가격을 받더라도 고객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게 나아요. 만족하는 고객은 다시 매장을 찾기 마련이니까요. 소비자가 만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어요.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이 점에 초점을 맞춰 보세요.
도전! 아이디어 창업 5인의 청년 CEO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 어
Q 동서양 음식을 결합한 퓨전 메뉴는 어떨까요.
외식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외국 음식이나 퓨전 음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식과 문화를 합쳤을 때 ‘상승 효과’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예컨대 이탈리아 음식에 무조건 김치 국물을 붓는 식은 아닌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다하누에서 곰탕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어요. 메뉴 중에 ‘도가니 통밀 바게트’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건 프랑스식과 한국의 도가니곰탕을 접목해 한국인 외국인 모두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이에요.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는 서양 음식 문화를 도가니 수프와 통밀 바게트로 풀어낸 건데, 내외국인 대상으로 시식을 해보니 반응이 매우 좋아요. 퓨전 메뉴를 개발할 때는 ‘합치거나 버무려서 상승 효과가 있는가’를 먼저 검토하세요. 물론 각 음식의 고유 맛을 잃어선 곤란하죠. ‘멋있어 보여서’ ‘요즘 유행이니까’ ‘남들이 많이 해서 성공하니까’ 하는 식으로 만드는 메뉴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Q 그동안 개발한 상품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무엇인가요.
한우 곰탕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제품화한 ‘다하누 곰탕’이에요. 현재 국내 항공사의 기내식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경쟁사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임에도 낙점을 받았죠. 우연한 기회에 한국 항공사에서 기내식으로 수입 사골을 쓰는 곰탕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곧바로 항공사를 찾아가 ‘곰탕 납품 계획서’를 제출했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계획서를 들고 들어간 거예요. 한국에서 ‘한우’를 먹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어필했고 ‘한번 해보자’라는 답을 얻었어요. 이렇게 시작한 일이 72억 원 규모의 식품가공 공장 설립과 다하누 곰탕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이어졌어요. 역시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좋은 맛을 내면 소비자들은 다시 찾는다는 진리를 확인했어요. 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객이 만족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다는 게 사업 철칙입니다.

Q 창업을 하고 싶지만 실패할까 두려워요.
어떤 일을 하든 실패할 가능성은 늘 있어요. 특히 음식 관련 사업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고 실패 확률이 매우 높지요. 한 통계를 보니 음식사업 성공 확률이 10% 이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서 걱정만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걱정은 실패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해보지도 않고 실패할 것부터 걱정해서 어영부영 하지는 말았으면 해요. 실패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 ‘성공’입니다. 성공은 실패의 부산물이라는 거예요. 되는 것만 생각하세요. ‘실패가 두렵지 않나요?’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세요. ‘성공’만을 생각해도 모자란데 실패까지 미리 생각할 여유는 없어요.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잖아요?

Q 20대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피드백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학교, 집, 직장, 거래처, 고객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피드백을 잘한다는 것은 공유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에요. ‘네트워크의 힘’을 아는 사람이죠. 피드백은 직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능력이에요. 주어진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상사나 선배가 귀찮아할 정도로 보고하세요. 소통하고 공유하는 노력을 하라는 겁니다. 끊임없는 피드백은 자연스레 네트워크를 만들고,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는 성공의 발판이 될 겁니다.


진행 박수진 기자│정리 김은진 인턴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