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육아를 위해 MBC를 퇴사한 최윤영 아나운서. 회사를 떠나 아이 곁에서 ‘엄마 최윤영’으로 지낸 잠깐의 시간 동안 그녀는 ‘방송인 최윤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온 최 아나운서를 캠퍼스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들이 만났다.
[My dream My Way] 아나운서 최윤영,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세요”
2012 년 8월 13일, ‘최윤영 아나운서, 사직서 제출’이란 뉴스가 줄지어 온라인에 보도됐다. ‘생방송 오늘 아침’ ‘뉴스데스크’ ‘W’ 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활발히 활동해온 그녀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고 커다란 아쉬움이었다. 육아를 위해 고민 끝에 선택한 퇴사…. 1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던 그녀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으리라. 최 아나운서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 아이의 엄마로 돌아갔다.

이후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EBS 육아 프로그램 ‘부모’. 그녀는 “안녕하세요, 서연이 엄마 최윤영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방송인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서 선택한 또 다른 의미의 육아였다. 그렇게 ‘부모’ 외에는 다른 프로그램의 섭외를 일절 거절하며 ‘엄마 최윤영’ 역할에만 충실해왔다. 그런 그녀가 최근 MBN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아궁이’의 MC를 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방송인 최윤영’으로의 반가운 방향 전환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My dream My Way] 아나운서 최윤영,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세요”
MBC를 퇴사하셨을 때 정말 아쉬웠어요.

저희 아이가 좀 예민한 편이에요. 애착 형성이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곁에 없고 돌봐주는 사람이 계속해서 바뀌니 아이가 불안해하고 너무 많이 우는 거죠. 육아휴직을 내고 함께 있을 때는 아이가 마법처럼 정말 좋아졌는데, 휴직 기간이 끝나고 회사로 다시 복귀를 했더니 오히려 그전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아이를 위해 퇴사를 결심했죠.


많은 사람이 프리 선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방송국 내에서는 다들 제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많이 이해해주셨어요. 사실 퇴사를 하고 아이 곁에 있으면 아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처럼 변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엄마의 영향으로 아이가 바로바로 바뀔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는 것을 초보 엄마는 몰랐던 거죠.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 곁에서만 있으려니 육아 스트레스가 극심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EBS 육아 프로그램 ‘부모’ 제작진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처음엔 거절했었는데 “육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니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세 번째 연락을 받고 방송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사실 방송을 한다는 생각보다 학원을 다닌다는 생각으로 한 거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배운 게 정말 많아요.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부모’가 육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거라면 최근 MC를 맡은 ‘아궁이’는 좀 다른 의미일 것 같네요.

엄마로서 희생하며 아이에게 모든 걸 주면 행복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방송을 그만두고 나서 꿈을 포기했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이를 스튜디오에 데려간 적이 있어요. 제가 방송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자신도 출연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재롱 부리는 딸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는데, 문득 ‘엄마가 TV에 나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닮고 싶어 하는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아궁이’ 섭외 연락을 받은 거예요. 그동안 다른 섭외 전화는 계속해서 거절을 했었는데, 그때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어 했던 시사 분야를 예능과 접목시킨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My dream My Way] 아나운서 최윤영,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세요”
쉬는 동안 방송에 대한 애정을 다시 느끼셨군요.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신은경 선배가 쓴 ‘9시 뉴스를 기다리며’라는 책을 받았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고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죠.


아나운서가 되기 전, 대학 시절에 리포터 활동을 먼저 했다고 알고 있어요.

아나운서를 하고 싶어 한 것은 확실했지만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방송이 어떤 건지 먼저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제가 다니던 교회에 EBS PD분이 계셨거든요. 찾아가서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는지 여쭤봤어요. 자료조사라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방송을 배워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EBS 리포터를 뽑는 시기라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은 거예요. 그렇게 리포터 활동을 시작해 나중에는 아침 방송의 MC까지 하게 됐어요.


방송 MC로 승승장구하던 때 아나운서 시험을 본 건가요?

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정말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 저를 말렸어요.(웃음) 만약 아나운서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동안 방송인으로서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고 일도 안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은 모두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KBS와 MBC에서 합격했고, MBC 아나운서로 입사를 했죠.
[My dream My Way] 아나운서 최윤영,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세요”
최 아나운서처럼 프리랜서로 경험을 쌓고 공중파 아나운서에 응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아뇨. 그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후회한 것 중 하나거든요.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뽑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신입 아나운서에게 중요한 것은 ‘신선함’이에요.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 경력직 같은 노련함은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죠. 매년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를 뽑는 이유는 새로운 느낌을 찾기 위해서니까요.


기성 아나운서를 흉내 내는 것보다 자신의 개성,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저도 아나운서 시험의 면접관으로 참석해보면 사실 아카데미 출신이다 아니다가 한눈에 보이거든요.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찍어낸 듯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지는 말라는 거예요. 학생들이 발음이나 발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배우는 것을 말리지는 않아요.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 부분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죠. 발음 같은 문제보다는 전체적인 호감도나 매력이 더욱 중요해요.


아나운서를 희망하는 학생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에 대한 환상만 가진 경우도 많아 실제로 입사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 아나운서를 꿈꿀 때는 주인공으로 서 있는 아나운서의 모습을 그렸어요.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아나운서는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잘되도록 돕는 역할이라는 것을 느꼈죠. 아나운서는 회사에 소속된 회사원이에요. 시키면 해야 하는 게 회사원이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거죠. 화려한 면만 보고 아나운서가 된다면 좌절할 거예요.


회사원이라고 하니 아나운서가 갑자기 친근감 있게 느껴지네요.

연예인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죠. 방송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아나운서들은 새벽 라디오 뉴스를 진행해야 해서 돌아가며 숙직을 해요. 보통 열흘이나 일주일에 한 번씩이요. 잘 자봐야 3시간 정도인데 체력적으로 힘들죠. 그리고 신입사원 때는 여느 회사원처럼 선배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해요. 다른 부서들은 이동이 있을 수 있지만 아나운서국은 한 번 입사하면 퇴사할 때까지 함께하거든요. 그러니 선배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죠. 그래서 아나운서를 뽑을 때는 인성을 많이 봐요. 계속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인성 외에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이 부분을 자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공감,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공감을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하고요. 경험해보지 않은 걸 얘기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렵거든요. 예전에 함께 방송을 했던 한 선배는 부유층이었는데도 생선 장사나 노점상을 직접 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방송에서 얘기할 때 단순히 보고 들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크기가 완전히 다르죠. 아나운서가 되길 원한다면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방송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하기 마련이죠. 최 아나운서는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일단 실수가 있었다면 저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떨리면 떨린다고 얘기하고, 실수가 있었다면 실수했다고 얘기하는 거죠. 노련하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다 보이는 것을 굳이 감추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저는 모든 사물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에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의사 선생님이 출연하셨어요. 그런데 대답이 너무 짧아 방송 시간이 20분이나 남는 거예요. 그때 관련 분야에 대해 제가 궁금해했던 것들을 질문하며 방송을 이어갔어요.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My dream My Way] 아나운서 최윤영,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세요”
방송을 하면서 겪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제가 신입 아나운서 시절에 심야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방송 끝인사로 “당신을 위해 오늘도 웃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자살을 하려고 차를 몰고 가던 중 우연히 그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잡으셨다는 사연을 받은 거예요. 보람을 느끼면서도 말 한마디의 영향력이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최 아나운서를 롤모델로 삼는 학생이 많아요. 본인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예전에는 롤모델이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아요. 이왕이면 어떤 프로그램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 놓을 수 있을 만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요.


앞으로의 계획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방송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새로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생각의 근육이 말라버렸구나’예요. 그동안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춰 지내다 보니 생각도 아이 나이에 맞게 굳어버린 것 같아요.(웃음) 이제 방송인 최윤영으로 돌아가야죠.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같은 것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려고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있어요.


읽은 책 중에 몇 권만 추천해주세요.

최근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좋은 내용이 많아 대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도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죠.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세요.(웃음)


잡앤조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된다’라는 생각이 드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이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많이 생각하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