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오앤디 엔터테인먼트 대표

스포츠 선수들은 운동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연봉 협상, 구단 이적, 광고계약 체결, 스케줄 관리, 마케팅, 운동량 관리 등을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 선수가 경기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법정대리인으로서 이런 업무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 스포츠 에이전트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곽태휘, 정인환, 이승렬의 소속사이자 이을용, 김태영, 이운재 등이 거쳐간 한국 축구계의 대표 에이전시 오앤디(O&D) 엔터테인먼트 김양희 대표는 “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가 좋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꿈과 비전을 위한 멘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 위주의 스포츠 에이전트 시장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에이전트인 그녀를 서울 신사동 오앤디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상멘토링] “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의 친구이자 멘토”
아직도 스포츠 에이전트는 생소한 직업인데요,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농구선수 출신이에요. 부상 때문에 그만뒀는데, 저도 그렇고 주위 선후배를 보니 선수들이 은퇴 후 진로를 비롯해서 공통된 고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다 보니 차츰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하지만 그때까지도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몰랐어요.

일을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에이전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를 보고는 ‘저게 내 일이구나’ 싶어 에이전트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시장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론적인 부분이나 체계화된 정보 루트도 없었고요.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하면서 회사를 설립하고 아는 선수들을 관리하는 형태로 시스템 자체를 하나씩 만들어간 셈이죠.

지금은 어떤 경로로 에이전트가 되나요.

보통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공식 지정하는 에이전트 라이선스를 따면서 시작해요. 1년에 한 번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요새는 관련 학원도 있어요. 하지만 라이선스는 말 그대로 자격 취득일 뿐이고, 업무를 진행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특히 공식 채용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체계적인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인력 모집이 언제 있을지 몰라요. 최근에는 인턴사원으로 경험을 쌓게 하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죠.

농구선수 출신이라고 하셨는데 축구 에이전트를 하신 이유가 있나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에이전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프로리그 종목이 축구예요. 야구, 농구, 배구는 에이전트가 없어요. 원래 개념의 에이전트보다는 매니저나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정도죠. 물론 외국은 대부분의 종목에 에이전트가 있어요. 그래서 국내 선수가 해외에 진출하거나 용병 선수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다른 종목도 에이전트를 써요.

에이전트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적은 언제인가요.

저희 회사는 주로 아마추어를 발굴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어리고 재능 있다고 생각되는 선수를 찾아서 관리했는데, 제 판단에 어긋나지 않고 성장해 프로에 입문하고 좋은 활약을 보일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과물을 만든 거니까요.

또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선수, 예를 들어 클럽에서 후보이던 선수의 환경을 바꿔주고 나니까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를 봐도 그렇죠. 아,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보람이 있어요. 용병 선수는 가족 전체를 데려오거든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축구를 하는 것이니 나머지 부분에서 편하게 해줘야 적응을 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초기 1~2년, 혼자 마트에서 장 볼 수 있을 때까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다니면서 적응을 돕죠. 그런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일 때 뿌듯하죠.

축구 에이전트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비전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국제대회 성적에서 보듯이 한국 축구는 성장하고 있어요. 국내 축구 시장도 더 커지고 알차질 수 있죠. 한계도 분명히 있어요. 그만큼 경쟁도 심해질 거고요. 제가 진입했을 때와는 다르게 자신이 에이전트로서 어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연구하고 들어와야 해요. 힘들 수 있지만 노하우만 있다면 그만큼 메리트 있는 시장이죠.

에이전트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선수와 경기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해요. 선수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안목이 에이전트에게 제일 중요한 콘텐츠니까요. 축구 전문 지식을 쌓아야겠죠. 클럽, 감독, 선수마다 장단점과 스타일을 분석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쌓고, 전문성으로 상대를 감동시키고 어필할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합니다.

저는 선수나 감독님들과 미팅할 때 철저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전문적인 이 영역에서 ‘여자가 축구에 대해 뭘 아느냐’는 시선이 오거든요. 공부를 무척 많이 했어요. 아마추어, 프로, 해외 경기까지 찾아다니면서 경기를 보고 연구했죠.

이건 제 노하우인데요, 경기를 볼 때 감독이나 클럽의 스타일을 봐요. 이 감독은 어떤 성향의 축구를 하고 어떤 선수를 선호하는지를 캐치하는 것이죠. 또 주로 지는 경기를 보고 부족한 점이 뭔지를 찾아요. 그걸 토대로 조언을 하면 감독님들도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잡아주니까 듣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아가 거기에 맞게 장단점을 갖춘 선수를 제안해서 성공한 영입 사례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먼저 자문을 해오기도 해요.
[지상멘토링] “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의 친구이자 멘토”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라이선스를 따야겠지만 그건 업무적인 측면이고요, 우선 마음의 준비,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간혹 에이전트가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허드렛일도 많고 전국을 돌아다녀야 해서 개인 시간도 없어요.

저희 회사 남자 직원들은 전부 장가도 못 갔다니까요. 에이전트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에요. 선수가 목표점에 도달하도록 보조하는 역할이고요. 따라서 어떤 선수를 관리하는 데 헌신할 수 있다는 각오가 철저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예요. 헌신을 위해서는 그만큼 열정도 필요하겠죠.

스포츠 에이전트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멘토. 아주 현명한 멘토요. 에이전트는 부모이기도 하고, 때로는 현명한 스승, 힘들 때는 친구의 역할을 하죠. 선수의 꿈, 목표, 비전을 공유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직업이고요. 그런 부분에서 현명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림자 같은 멘토가 바로 스포츠 에이전트 아닐까요.

에이전트로서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빅리거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시장을 경험한 지금은 달라졌어요. 에이전트들의 포지션을 구축하고 인정받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간혹 시쳇말로 ‘치고 빠지는’ 에이전트들이 물을 흐려놓기도 해서 많이 안타까워요.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클럽, 지도자, 선수와 어우러지는 동지로서 대우받으려면 책임감 있는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겠죠. 한편으로는 여성 에이전트가 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