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캄보디아에서 사회적 기업을 일구는 한국인들이 있다. 캄보디아 전통의 천연염색 기술로 천을 만들어 베개·옷·인형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고엘공동체(대표 한정민)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는 창업을, 게다가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 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캄보디아에서 설립하다니, 그 사연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가 지원하는 ‘극한도전’ 프로그램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한 ‘고고고엘’팀(심재관·김다희·윤혜민·김우람)이 고엘공동체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 고엘공동체] 그곳에 ‘모두가 행복한 기업’이 있다!
[stage1] 고엘공동체로 가는 길

고엘공동체는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에 있다. 우리는 러시아마켓이라는 곳에서 한정민 대표를 기다렸다.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다. 캄보디아의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환한 미소를 띤 채 나타난 한 대표는 캄보디아 사람이 다 된 것처럼 보였다. 고엘공동체의 공방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는 ‘툭툭이(오토바이 마차)’를 탔다.

10분 정도 지나 툭툭이가 커다란 녹색 철문 앞에 섰다. 이곳은 고엘공동체의 본사 격인 공방. 일터가 아니라 가정집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공간에서 한 대표의 가족과 직원들이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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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엘공동체는 두 군데에 둥지를 틀고 있다. 본사 격인 프놈펜의 공방은 사무실 겸 상점 겸 작업실이다. 실을 천연염료로 염색해 원단을 만들어 오면 그것을 보관하거나 옷, 인형, 액세서리 등으로 만들어 파는 작업을 한다.

공장 격인 염색장은 프놈펜에서 40분쯤 떨어진 타케오라는 지역에 있다. 실을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 캄보디아의 천연 재료로 염색을 하고,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외상으로 나누어 주면 주민들은 베틀로 원단을 짠다. 천을 되사서 품질을 체크하는 검품센터 역할을 하는 한편 주민들에게 베틀 기술을 알려주는 교육센터 역할도 하는 곳이다.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 고엘공동체] 그곳에 ‘모두가 행복한 기업’이 있다!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 고엘공동체] 그곳에 ‘모두가 행복한 기업’이 있다!
[stage2] 첫걸음

“처음엔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왔어요. 전도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먹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죠.”

한 대표가 캄보디아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면서 처음엔 대학생들과 떡볶이를 파는 아이디어 등을 구상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타케오란 지역을 알게 되었고, 그 지역을 조사하면서 고엘공동체를 구상하게 된 것.

고엘공동체의 시작이 된 타케오는 100년의 베틀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로 천연염색과 베틀로 원단 짜기를 해왔다고. 그러나 수십 년의 내전을 겪으면서 천연염색 기술이 쇠퇴하고 화공염색(화학약품으로 하는 염색)이 대신하게 되었다.

한 대표는 화공염색이 자연과 사람 모두를 훼손하고 주변에 악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점에 주목했다. 주민들에게는 먹고살 수 있는 일거리이면서 사람과 자연이 모두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아이템은 천연염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한 대표와 그의 아내가 한국에서 천연염색을 배웠다. 또 캄보디아인 제자 두 명과 함께 염색 기술을 시험하면서 2006년 6월 고엘공동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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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3] 고난의 시간

“처음에는 재정이 열악해서 아주 힘들었죠.”

고엘공동체의 설립 자본금은 고작 23달러. 월 10달러 정도의 정기적인 후원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운영이 되지 않았다. 시작 후 5개월 정도는 30달러도 벌지 못했다. 기술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해 스카프를 먼저 짜서 나중에 염색하는 후염방식(지금은 선염방식. 실을 먼저 염색해 천을 짜는 선염방식이 고르게 염색되고 물 빠짐이 덜하다)을 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근근이 운영했다. 실을 살 수 있으면 일을 하고, 없으면 전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뉴욕의 이름 없는 후원자와 싱가포르, 한국에서 오는 도움이 없었다면 버티기조차 어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첫 출발을 함께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큰 훈련의 시간이 되었다.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 돈을 벌고 운영을 고민하면서 그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고엘공동체를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구성원끼리 가정을 만들기도 해서 커뮤니티(공동체)보다는 패밀리(가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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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4] 커뮤니티 < 패밀리

어려웠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고엘공동체의 수입이 안정되었다. 구성원들은 캄보디아 평균 임금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한 대표에게 천연염색 기술을 배운 제자이자 설립 멤버인 썸랭은 “전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고엘공동체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면서 “고엘공동체와 함께하기 전에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남편이 생기고 아이도 생겼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현재 타케오 작업장을 담당하는 매니저이자 한국인이 운영하는 이삭학교 3회 졸업생. 순수한 모습과 미소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 고엘공동체] 그곳에 ‘모두가 행복한 기업’이 있다!
[stage5] 지속 가능한 공동체

고엘공동체의 모토는 ‘지속 가능성’이다. 다른 도움 없이 자립하고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해가 없도록 모든 것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대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위해 먼저 사람과 자연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엘공동체의 목표는 4년 반 후에 회사를 모두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많은 권한이 현지 구성원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를 완전히 캄보디아 사람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캄보디아 같은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다른 많은 NGO와는 다른 행보다. 적지 않은 NGO가 프로젝트 형식으로 길면 5년, 보통 2년 남짓 일방적으로 재정 운영을 해서 담당자가 철수하면 모든 것이 멈추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하지만 고엘공동체는 설립자인 한 대표가 없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 한 대표는 “고엘공동체 같은 작은 공동체가 여럿 모여서 하나의 조합을 만들고, 더 큰 힘을 가지고 계속 지속하는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stage6] 탐방을 마치고

고엘공동체를 떠나오면서 인형을 하나 샀다. 캄보디아 물가보다 조금 비싼 가격대였지만, 그 인형이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하니 오히려 싸게 느껴졌다. 손으로 천천히 만든 인형,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제품을 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쉽지 않지만 좋은 일을 위해 도전하는 한 대표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다. 그의 말마따나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생각한 좋은 기회였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은 시간이었다.



Mini Interview
“땀 흘려 이룬 것은 강하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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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 고엘공동체 대표


Q 고엘공동체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A 시작하고 나서 3년 동안 경험한 힘든 시간이 고엘공동체가 가진 힘의 원천이죠. 땀 흘려 나온 것이라 강한 겁니다. 반대로 땀 흘린 것이 아니면 위태롭죠.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지속 가능성과 사람을 생각하면서 서서히 해나가야 목적에 이를 수 있어요. 공동체가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내실을 기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반짝 특수를 이용하면 경쟁력을 얻을 수 없어요. 꼭 밟아야 하는 시간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Q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A 기업가나 노동자 중 어느 한쪽에 의존하는 것은 불안정해요. 서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어요. 한국의 경우 대기업에 의존하는 구조 때문에 중소기업의 입지가 약하고 다양성과 보편성이 무시당하는 일도 많죠. 대기업이 무너진다면 생태계까지 무너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고엘공동체가 공정무역을 하는 이유도 모두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정무역은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사업이에요.


Q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해외에 진출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선진국에 가려고 하는데, 거기엔 지식밖에 배울 게 없어요. 반면 가난한 나라에서는 배울 게 아주 많아요.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내가 누려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지요. 가난한 나라에서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세요. 또 다양한 기관에서 봉사하며 고생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김우람 대학생 기자(숭실대 벤처중소기업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