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국내] 삼성SDS 컨설팅본부 보안컨설팅팀 인턴십 2011년 12월 ~ 2012년 7월
비전공자로 IT 기업 인턴십하기
윤보람 숙명여대 수학 4
[인턴십 체험기] 삼성SDS, 천리교뉴욕문화협회 갤러리
“무슨 과 다니세요?”
“수학과요.”
“와, 그럼 수학 잘하시겠네요! 수학 선생님 하시게요?”

수학과에 재학 중인 내가 보통의 사람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할 때 나누게 되는 대화다. 나는 이런 식의 대화가 정말 싫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수학과’라는 전공 하나로 내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고 멋대로 평가하는 것이 싫었다.

물론 처음엔 수학을 잘하고 수학이 좋아서 수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졸업 후 기업에 들어가 내 역량으로 기업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 2학년 때 전공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 막연히 생각했던 수학과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우는 수학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후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어느 기업, 어느 분야, 어느 직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인턴십 체험기] 삼성SDS, 천리교뉴욕문화협회 갤러리
비전공자로서 IT기업에서 인터십을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하지만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고 값진 성과를 얻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각종 대외활동과 복수 전공이었다. 대학생 기자로 글을 쓰고, 서포터즈가 되어 마케팅을 하고, 경제학을 배웠다. 하지만 정작 내 적성을 찾은 것은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하나 취득해야 했는데 이 자격증을 공부하고 실습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 IT 관련 자격증을 기초부터 전문적인 것까지 3개를 취득하고 나서 나의 길을 찾았다.

물론 비전공자로서 IT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하지만 내 관심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고 값진 성과를 얻었다. 삼성SDS 인턴십에 지원할 때 그동안 꿈을 찾기 위해 했던 다양한 경험이 도움될 수 있도록 컨설팅 분야에 지원했고 보안컨설팅팀에 배치됐다.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기본 교육부터 시작해 컨설팅 전반에 대한 교육까지, 회사 생활 적응을 위해 실무 교육을 받았다. 인턴십을 통해 배운 것들을 활용해 PT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고,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이 성장했고 이 기업에서 일하게 된다면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재택근무, 출산 휴가, 사내 어린이집, 여사원 휴게실 등 복지도 잘 갖춰져 있어 여성이 일하기에도 좋은 직장이라고 느꼈다.

혹시 전공이 맞지 않아 방황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다면 전공에 얽매일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으면 한다. 확신과 의지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천리교뉴욕문화협회 갤러리인턴십 2012년 2월 ~ 8월
환상은 깨지고 삶은 단단해졌다
이동규 중앙대 경제 4
[인턴십 체험기] 삼성SDS, 천리교뉴욕문화협회 갤러리
각 나라엔 대표하는 이미지가 있다. 독일은 ‘철학’, 프랑스는 ‘예술’, 러시아는 ‘문학’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각자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브랜드는 ‘다양성’. 그런 내게 뉴욕 갤러리에서의 큐레이터 어시스턴트 인턴십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일본계 갤러리 ‘Tenri Cultural Institute’ 인턴십에 지원했다. 학교와 연계된 인턴십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실무 경험을 쌓으며 학점도 딸 수 있어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었다. 갤러리에서 인턴십을 한 친구가 추천서를 써준 덕분에 큐레이터와의 면접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삐쭉 솟은 마천루를 닮은 그들의 콧대와 자존심, 화려한 네온사인 속 잠들지 않는 도시를 떠올리며 뉴욕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 환상은 첫날부터 망가졌다. 심한 지린내를 풍기는 지하보도,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지하철, ‘패션 피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길거리의 인파들은 예상 밖이었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모습도 마찬가지. 내가 생각하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상냥한 웃음, 교양이 넘치는 큐레이터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본 모습은 ‘3D 직종’에 가까웠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과 연락을 취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초대 메일을 보내는 일의 번거로움을 제쳐두더라도, 고가의 작품을 설치할 때의 수고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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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상냥한 웃음, 교양이 넘치는 큐레이터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본 모습은 ‘3D 직종’에 가까웠다.


캔버스가 휘거나, 무게가 많이 나가 못에 걸리지 않는 작품들, 너무 커서 두세 명이 달려들어야 움직이는 작품도 있었다. 천장에 달린 조명을 조절하기 위해 고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는 큐레이터와 가까운 직업이 목공소 작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수 위의 백조처럼 고상한 겉모습과 달리 물 아래에선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는 직업이 바로 큐레이터였다.

해외인턴십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막연한 이상을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듯 뉴욕에서의 인턴 생활도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추지 못한 동양인으로서 업무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와 실무 두 가지를 모두 얻겠다는 포부로 뉴욕에 왔던 이들이 실망하고 서러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었다. 나 역시 생활하면서 뉴욕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기회를 알게 되었다. 더 큰 세계를 보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만끽하러 온다는 마음으로 해외인턴십의 문을 두드린다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