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내가 필라테스, 크로스핏을 하는 이유

[한경잡앤조이=김슬기 그렙 교육사업팀장] 2019년 어느 날, 살 좀 빼보자는 그 흔하고 막연한, 금세 바스러질 나약한 목표와 함께 집 앞 필라테스 센터에 등록했던 적이 있다. 한 번도 삶에서 꾸준히 해본 운동이 없었던 상태라 필라테스에 등록했다는 그 자체로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필라테스 센터에 방문상담을 하기 전 내게는 ‘운동 센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전에 회사 주변 요가를 점심시간 짬을 내 다녔었는데, 겨우 한 달 출석한 내게 재능이 있다며(?) 몇 백만 원짜리 강사 과정에 등록할 것을 강매했던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센터를 잘못 선택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왠지 상담을 하면 바로 결제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고, 조금만 열심히 나오면 강사 과정 따위를 언급하며 나를 당황스럽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쉽게 운동센터에 발을 들이지 못했었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이랑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글은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열심히 짬을 내 운동을 병행했던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필라테스가 어찌나 재밌었는지 출근 전에 수업을 갔다가 부랴부랴 회사에 가고, 퇴근하자마자 숨가쁘게 필라테스 센터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에 나오는 기구는 체어/Chair. 이걸로 하체 운동 하는 날에는 죽음을 맛보곤 했다.
△필라테스가 어찌나 재밌었는지 출근 전에 수업을 갔다가 부랴부랴 회사에 가고, 퇴근하자마자 숨가쁘게 필라테스 센터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에 나오는 기구는 체어/Chair. 이걸로 하체 운동 하는 날에는 죽음을 맛보곤 했다.
필라테스, 내 몸 상태를 알게 된 계기
한창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등과 어깨가 결리고, 때로는 목까지 통증이 올라오는 탓에 저주파 치료기를 여기저기 붙여가며 일을 하곤 했었다. 심지어는 다리가 저릴 때도 많아 업무 중 허벅지나 종아리를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했다. 부끄러움은 안중에도 없고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감각에 집착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라테스 수업에 1~2개월 정도 출석하고 나니 이런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 등록한 건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빠르게 재미가 붙었고, 쉬는 날에는 아침/저녁 하루 2회 출석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워낙 제대로 움직여본 적이 없는 몸이 깨어나면서 자연스레 좋은 효과를 본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필라테스는 내 몸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운동이기도 했다. 예컨대 나를 자주 괴롭히던 다리 저림은 고관절의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고관절이 좋지 못한 이유는 내 발의 문제(평발)와도 관련이 있었다는 것. 내 몸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다는 것은 곧 삶을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과 같았다.
△대부분 ‘저게 무슨 고문 기구냐'라고 말하는 기구 중 하나인 캐딜락/Cadillac.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의 재활을위해 침대를 개조한 기구다. 생긴 건 좀 무서울 수 있지만, 좁은 면적 안에서 상당히 많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사진은 1:1 수업을 받으며 행잉 백 자세를 취했던 20년도 1월의 어느 날.
△대부분 ‘저게 무슨 고문 기구냐'라고 말하는 기구 중 하나인 캐딜락/Cadillac.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의 재활을위해 침대를 개조한 기구다. 생긴 건 좀 무서울 수 있지만, 좁은 면적 안에서 상당히 많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사진은 1:1 수업을 받으며 행잉 백 자세를 취했던 20년도 1월의 어느 날.
필라테스는 이런 분들이 해보면 좋을 듯:
● 업무 중 몸이 자주 결리고 불편하지만, 운동으로 해소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

● 내 몸의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

필라테스 동작들을 눈으로 보면, 겉보기에는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동작들이 존재하지만 막상 제대로 수행하려면 무척이나 많은 근육이 개입되며 집중력 또한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데도 땀이 비 오듯 흐르기도 하며, 일상 중 거의 써본 적이 없는 근육을 사용한 날에는 그 다음날 휴가를 내고 싶을 정도로 근육통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운동이라고 본다.

필라테스를 시작하려는 직장인들에게 나름의 팁:
● 시설이 예쁘거나 깔끔하다고 ‘좋은 센터’라고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다.

● 운동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은 가급적 체험수업 1회, 또는 1:1 수업을 짧은 기간 동안 체험해보며 ‘필라테스와 내가 서로 차근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본다.

● 최근에는 원장님 1인이 운영하며 전문적인 1:1 수업만 진행하는 센터도 많아졌으므로, 비용을 조금 들여서라도 내 몸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얻고 싶다면, 투자를 한 번 해보자.

● 그룹 수업의 경우 강사님, 그날 수업에 참여한 회원들의 상태에 따라 내가 느끼는 수업 만족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하자. 만약 나랑 맞는 강사님이 있다면 그분 수업을 중심으로 참여해도 좋다.

필라테스 수업에 활용하는 기구들은 마치 고문 기구 같은 느낌이 들지만, 각자 설계된 목적이 뚜렷하며 매력도 다르다. 이런 기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며 낑낑대다보면 노력한 만큼 몸이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크로스핏, 생소한 만큼 삶의 활력이 되다
그렇게 약 1년 반 동안 필라테스에 전념하며 인생 최상의 컨디션을 누리던 중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잦은 휴관 및 이런저런 위험성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제대로 된 운동이라곤 없이 살며 홈트레이닝도 시도해보고, 그동안 필라테스에서 배운 것을 나름 시전 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운동의 맛(?)을 한 번 봤다가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너무 갑갑했다. 개를 넷이나 키우며 매일 산책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산책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활동’ 이지 운동이 되긴 쉽지 않았다.

확진자가 된 적은 없지만 서서히 ‘확찐자’가 되어가던 중, 바로 집 옆에 크로스핏이 생겼다. 운동은 집이랑 가까운 게 최고라던데… 이건 뭐 고민할 것이 있나, 바로 등록하자 싶었지만 너무나도 생소한 운동이라 많이 망설였었다. 세간에는 ‘핵인싸 운동’이라는 별명도 있어 뭔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소한 만큼 삶의 큰 활력이 되어줄 것 같기도 하여 용기 내 등록한 것이 벌써 6개월을 넘겼다.
△크로스핏에서 자주 하게 되는 월볼샷/Wallball shot 동작을 연습 중. 스쿼트를 하며 올라옴과 동시에 벽에 그려진 민트색 선까지 공을 던지고, 받는다. 힘들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자세가 망가져 공에 얼굴을 흠씬 맞으며 겨우 해내고 있다.
△크로스핏에서 자주 하게 되는 월볼샷/Wallball shot 동작을 연습 중. 스쿼트를 하며 올라옴과 동시에 벽에 그려진 민트색 선까지 공을 던지고, 받는다. 힘들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자세가 망가져 공에 얼굴을 흠씬 맞으며 겨우 해내고 있다.
내가 역도, 체조를 하다니
다행히 ‘생소한 만큼 활력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 성향상 딱 들어맞았다. 꽤나 재미를 느껴 약 반년을 하고 있는 초보자의 입장에서 크로스핏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 타인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나 역시 큰 자극을 받는다는 것에 있다.

크로스핏을 다니게 되면 매일매일 WOD(와드, Workout Of the Day)로 제시되는 강도 높은 운동을 하게 되는데, 평소에 해본 적도 없고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역도나 체조 동작까지 섞여있어 초반에는 겁이 많이 났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알 수 없는 영어 단어들, kg가 아닌 lb 단위가 적힌 각종 기구들,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는 에어 바이크도 생소했다.

하지만 ‘내가 저걸 할 수 있으려나’ 싶은 순간들을 이겨내고 그날의 WOD를 마치는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붙고 체력 또한 빠르게 좋아짐을 느꼈다. 체력이 좋아지니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연차나 반차를 내는 일이 확연히 줄기도 했다.
△(좌)역도 동작인 파워 스내치 연습 중 (우)요즘 연습 중인 밴드 풀업이다. 크로스핏 갔을 때나 조금씩 연습하는 정도라 잘 늘진 않지만, 그래도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좌)역도 동작인 파워 스내치 연습 중 (우)요즘 연습 중인 밴드 풀업이다. 크로스핏 갔을 때나 조금씩 연습하는 정도라 잘 늘진 않지만, 그래도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라테스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운동이지만, 필라테스를 하면서 알게 된 내 몸의 특징이나 취약점을 알고 있으니 WOD를 할 때 나름의 판단으로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어 뿌듯함도 있었다. 아직 오랜 기간 동안 크로스핏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 싶다.

크로스핏은 이런 분들이 해보면 좋을 듯:
● 기초체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 크로스핏 자체가 다양한 운동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면서 전신 발달을 목표하기에 체력 키우는 데에 아주 좋다.

●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잘 받는 편이라면, 그룹 수업을 위주로 진행되는 크로스핏과 잘 맞을 확률이 높을 듯

● 소위 말하는 ‘화이팅 넘치는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운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

여러 장점이 있지만 운동 강도 자체가 높고, 초보자에게는 생소한 동작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거나 욕심을 내면 부상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떤 운동이든 조심해야 하지만, 크로스핏처럼 옆에 있는 모든 이가 죽어라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 혼자 그만둘 수 없어 조금씩 무리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만잘 인지하고 다치지 않는 한에서 꾸준히만 한다면, 정말 좋은 운동이 아닌가 싶다.

크로스핏을 하려는 분들에게 나름의 팁: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미 좋은 정보들이 많지만, 직장인으로서 짬 내어 열심히 크로스핏을 해 본 입장에서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 운동을 전혀 안 해본 경우, 스쿼트나 런지 같이 홈트레이닝 영상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동작 정도는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즉 홈트라도 조금 해보고, 운동을 하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진 뒤 가는 게 낫겠다. 크로스핏은 워밍업부터 힘들기 때문이다.

● 초보자라면 기록이나 경쟁에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서 꾸준히 운동한다는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게 좋아 보인다(어차피 경쟁도 안 된다). WOD를 하는 동안 내가 조금씩 성장한다는 믿음을 갖고, 욕심 금물, 부상을 피하자.

스스로를 위해 뭐든 하자
△이제 크로스핏 박스는 그냥 ‘운동하러 가는 곳’ 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주는 뭔가 정신 수련의 장처럼 느껴진다.
△이제 크로스핏 박스는 그냥 ‘운동하러 가는 곳’ 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주는 뭔가 정신 수련의 장처럼 느껴진다.
운동을 하면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은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의 강도 높은 업무 상황에 치이면서, 또 팀장으로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이 갑갑할 때가 많은데, 적당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한 꺼풀 털어내는 습관을 만들어 낸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습관을 만드는 데에 대략 2년이 넘게 걸린 듯한데, 현 직장인 그렙의 전사 원격근무 체제를 통해 이 습관을 계속 강화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일과 중 우리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를 매일매일 살아가게 해주는 몸 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적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그 시간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은 아니더라.

이 글에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운동에 중심을 두었지만, 모든 직장인들이 ‘회사에서의 나'가 아닌 자기 자신이 즐거워하고 충만함을 느끼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에너지를 소모한 만큼 수시로 잘 채워주고, 마음과 몸이 조금씩 더 건강해질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슬기 씨는 피아노 전공이지만 컴퓨터를 좋아해 직업을 IT분야로 선택했다. 현재 프로그래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렙 교육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영원히 원격 근무를 지향하는 그렙을 좋아한다.

<한경잡앤조이에서 '텍스트 브이로거'를 추가 모집합니다>

코로나19로 단절된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人, 스타트업人들의 직무와 일상에 연관된 글을 쓰실 텍스트 브이로거를 모십니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사한 하루’,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의 치열한 몸부림’, ‘코로나19 격리일지’, ‘솔로 탈출기’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직접 경험한 사례나 공유하고픈 소소한 일상을 글로 풀어내시면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텍스트 브이로거 자세한 사항은 여기 클릭!>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