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노하우를 무기로 발빠른 ‘비보팅(pivoting)’ 선택한 스타트업 눈길

게임회사서 대충 개발해 쓰던 ‘메신저’, 30조원에 팔렸다…'피보팅'으로 꽃길 걷는 스타트업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주력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중간에 바꾼다는 의미인 ‘피보팅(pivoting)’. 이 피보팅은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다. 지금의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들도 초기 창업 시절 무수히 많은 피보팅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 활발하게 서비스 중인 스타트업 중에서도 피보팅을 거쳐 새로운 서비스로 거듭난 곳들이 있다.

게임회사에서 메신저 서비스로 바뀐 ‘슬랙’
세계적인 협업 툴로 떠오른 슬랙의 시작은 2011년 온라인 게임 ‘글리치’를 개발할 때 여러 도시에서 일하는 개발자들끼리 빠르고 정확한 협업을 위해 만든 사내 메신저였다. 주력하던 게임이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지 못해 난항을 겪던 때, 그들은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 없어 이름조차 붙이지 않았던 사내 커뮤니케이션 기능으로 눈을 돌렸다. 내부 협업 툴이야말로 업무에 없으면 안 되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고 상품화에 돌입, 슬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탄생했다.

출시 직후부터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슬랙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 근무가 급증하면서 지난 2년 동안 265%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1위 클라우드 SaaS CRM 기업인 세일즈포스에 약 30조 원에 인수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슬랙을 유료로 이용 중인 기업은 16만 곳을 돌파했으며, 일간 이용자 수 또한 1000만 명을 훌쩍 넘겨 전 세계 협업툴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소상공인 매장 솔루션에서 식자재 시장 공략하는 ‘스포카’
소상공인 매장 솔루션 스타트업으로 알려진 스포카는 최근 사업 방향을 55조 규모의 식자재 시장으로 바꿨다. 올해 1월 태블릿 기반 고객 관리 서비스 ‘도도 포인트’ 사업 부문을 야놀자클라우드에 양도하고, 식자재 시장 첨단화라는 새로운 문제에 접근했다. 스포카는 도도 포인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기술력과 매장점주 대상 서비스 개발 노하우로 점주들의 식자재 수발주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포부다.

2020년 8월 론칭한 도도 카트는 외식업 종사자들이 앱에 식자재 명세서 사진을 등록하기만 하면 지출 비용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리포트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서비스다. 거래처 및 주요 품목의 변화를 쉽게 파악하고, 체계적인 식자재비 관리를 도와 원가절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덕분에 식당 사장님들 사이에 필수 앱으로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시장 저변을 파고들고 있다.

성과도 가파르다. 도도 카트는 2021년 12월말 기준 누적 거래액 1600억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출시 1년만인 2021년 9월 누적 1000억원을 넘어선지 불과 4개월 만에 60% 증가한 거래액을 달성했다. 도도 카트 앱 누적 이용자 수도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이뤄나가고 있다.


원격 협업 솔루션에서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바뀐 ’스페이셜’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 ‘스페이셜’은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기반으로 기업 간 원격 협업 솔루션을 개발해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전용기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온 스페이셜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던 중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웹과 앱 기반의 서비스를 새롭게 구축했다.

별도의 기기 없이도 컴퓨터와 모바일로 간편하게 가상공간에 접속할 수 있게 되자 스페이셜의 사용량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 새롭게 발견한 시장이 바로 ‘메타버스 갤러리’였다.

바로 스페이셜을 사용하는 이용자의 상당 수가 자신의 작품 전시를 위해 활용하는 개인 아티스트였던 것. 스페이셜은 이 점에 착안해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갤러리’로 사업을 전격 피보팅하게 됐고, 이후 두 달여 만에 사용량이 4배 이상 증가했다.

스페이셜을 통하면 클릭 몇 번에 자신의 작품을 메타버스 공간에 전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해당 공간에서 방문객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또한, 간편하게 링크 공유 한 번으로 홍보도 할 수 있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SNS에서 카메라 앱으로 Z세대 잡은 ’스노우’
스노우는 2015년 출시 당시 SNS 기능에 중점을 둔 앱이었다. 그러다 이용자들이 AR 기술을 활용해 얼굴을 인식하고, 스티커, 이미지 보정 등 다양한 카메라 기능을 활용해 셀카와 동영상 촬영을 즐기는 것에 착안해 피보팅에 도전했다.

스노우는 당시 소셜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삭제하고, 카메라 전용 앱으로 전환했다. 이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오히려 SNS에 활용할 만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스노우는 AR 기능과 얼굴 인식 기능 고도화에 힘을 쏟으면서, AR 카메라 기능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현재 스노우는 해외 이용자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월 이용자 수는 2억명을 돌파해 ‘Z세대 필수 카메라’으로 자리 잡았다.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