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도파민의 시대, 나는 귀농을 꿈꾼다

우리는 왜 네컷 사진을 찍을까?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식당을 가고, 카페를 가고, 취향에 따라 코인 노래방이나 피씨방을 들른다. 친구를 만나면 흔히 노는 코스다. 최근에는 이 사이에 ‘인생네컷’이 끼어들었다. ‘인생네컷’은 브랜드명이지만 시장을 선점했고 발음과 의미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대일밴드’ 같은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2019년 무렵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네컷’ 브랜드들은 현재 다양한 브랜드명으로 번화가와 주택가 구분할 것 없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유명한 브랜드로는 하루필름, 인생네컷, 포토시그니쳐, pic dot, 모노맨션 등등이 있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네컷 사진관은 4천 원에서 만 원 사이의 가격으로 네 컷에서 아홉컷으로 나뉜 사진 두 장을 얻을 수 있는 즉석 사진관이다. 사진을 촬영하기 전 프레임의 개수와 모양, 사진 장 수 등을 정할 수 있다. 종이로 인쇄되어 나오는 결과물뿐 아니라 디지털 사진, 사진을 촬영하면서 찍힌 동영상까지 QR코드를 활용해 간직할 수 있고, 브랜드에 따라 증명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아이돌이나 타 브랜드와의 콜래보레이션도 늘어나 셀럽과 함께 찍는 네컷 콘셉트의 프레임을 인증하는 것도 또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오늘의 내 모습’을 간단히 남기고 싶을 때나 시간이 비는데 밥이나 커피를 먹고 싶진 않을 때 네컷 사진관을 찾는다. 1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며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이 곳을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네컷 브랜드의 특징은 스튜디오가 번화가라면 어디에나 있고, 짧고 간결하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는 것과 달리 곧바로 결과물을 들고 스튜디오를 나올 수 있다. 물론 보정 등 사진의 완성도 문제는 논외로 한다. 한정적인 자원 안에서 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값이 저렴하고 곧바로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나 포만감, 각성 상태를 발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방법들로 우리의 여가가 채워지고 있다. ‘가성비’나 ‘플렉스’ 라는 이름을 통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을 정도다. 이 둘은 경제적인 규모에서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도파민의 시대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큰 흐름에 대응하는 다양한 반응들이 생기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은 도파민을 따라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쪽이다. 적은 돈으로 포만감이나 정서적 만족을 꾀하는 ‘가성비’, 많은 돈을 들여 그간의 노력이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플렉스’, 회사에서는 모니터를 쉴 틈 없이 보고 집에서는 핸드폰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블루라이트와 공존하는 삶 등등. 자의나 타의에 의해 쉴 새 없이 자극을 따라가는 큰 파도가 있다.

반대편에는 자극을 최대한 지양하고 모든 걸 ‘디톡스’하자는 쪽이 있다. 디지털, 몸의 독소, 인간관계, 불필요한 소통 등등. 도파민은 한 번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따라가게 되어있으므로 애초에 출발선에 서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농촌살이, 핸드폰 없이 살아보기 등 생활 습관을 바꾸는 챌린지 등을 통해 도파민 디톡스를 실천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성향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상황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게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나는 블루라이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모니터 앞에서 업무를 하는 사무직이고, 대부분의 정보나 여가 활동을 핸드폰을 통해 접하고 있다. 쉬는 날에는 운동을 할 때도 유튜브를 보고, 친구를 만나서도 사진을 찍거나 장소를 검색할 때 핸드폰을 손에 쥔다. 영화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OTT를 통해 감상한다.

자동으로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을 가진 눈으로 진화해야 할 것 같은 루틴을 가진 내 삶의 목표는 귀농이다. 중학생 때부터 55세에 은퇴해 여유로운 자연에서의 삶을 사는 게 꿈이었다. 귀농이나 농촌 일주일 살기 프로젝트의 SNS 계정 팔로워가 1만씩 되는 걸 보면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가 적지 않은 것도 같다. 문제는 여유가 없다. 돈이 없고 마음의 공간이 없고 부동산도 없다. 내가 50대가 되었을 때 그런 여유를 갖게 되리라는 미래 확신 또한 없다.

N포 세대, 플렉스, 욜로를 넘어 ‘거지방’에 가입해 돈 쓰면 참신하게 혼이 나는 세대까지 왔다. ‘미래가 없다’는 감정은 젊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주제가 되었고, 그 사이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생기고, 투자나 개인 사업을 통해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는 부자’로 거듭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평균이나 당위가 사라진 자리는 현재의 만족감이 들어찼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순간을 남기는’ 네컷 사진관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