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 대신 이름으로 불러 줬으면
-20대가 나다움 찾고 잘 살고픈 의지 다지길


부모의 품 대신 보육원이나 그룹홈, 가정위탁 등의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 대상 아동으로 살다 만 18세에 퇴소해 ‘자립준비청년’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들이 있다. 20대는 부모와 가정의 품을 떠나 한 명의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나이다. 그러나 사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바로 자립할 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홀로 세상에 나와 ‘나다움’을 찾고 자립을 해 나가고 있는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박강빈, 허진이 캠페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22년 6월 아동복지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에 따라 자립준비청년은 본인이 원할 시 만 24세까지 보호 연장이 가능해졌다.
"자립준비청년 아닌 나로 살고 싶어요",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박강빈, 허진이 캠페이너
박강빈(위), 허진이(아래) 캠페이너 사진.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박강빈(위), 허진이(아래) 캠페이너 사진.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우리가 자립준비청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강빈(이하 박): 이전에는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을 홍보하거나 민간의 도움 없이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청년’과 ‘자립’의 범위를 넓혀야 할 단계라고 생각해요. 정보 접근성의 부족, 자립 의지의 결여, 경계성 지능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보며 자립 지원이 더욱 세밀히 사례별로 분석되고 다듬어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허진이(이하 허): 2023년 자립준비청년 자립 실태조사에 의하면 자립준비청년의 46.5%는 자살을 생각해 봤고 10%는 고립과 은둔 상태이며 삶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6점으로 나타났어요.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자립준비청년의 삶은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죠. ‘자립’은 하나의 문제만 해결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개개인이 가진 이야기와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ㆍ경제ㆍ심리적 지원이 지속해 골고루 갖춰져야 합니다.
박강빈, 허진이 캠페이너 사진.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박강빈, 허진이 캠페이너 사진.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자립을 준비하고 실제로 자립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박: 올해 1월부터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보육원 놀이 봉사를 시작했어요. 봉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 유년기가 생각났습니다. ‘아이였던 내가 참 예뻤겠구나’ ‘시간을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겠구나’하고 지금의 저를 통해 그때의 젊은 봉사자 어른들을 떠올렸어요.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있으니 마음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구나’ 싶어요.

허: 보육원 퇴소를 앞두고 “이젠 너답게 살아라”라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나요. 선생님은 제가 단체생활 안에서 남들보다 양보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아셨죠. 누군가는 희생하고 양보해야만 했던 생활에서 사실 아무도 이를 알아주지 않아 외로웠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말은 따뜻한 관심으로 느껴졌고 덕분에 그 가치를 새기며 자립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후원자님이 “진이 너는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 역시 기억 남아요. 이 말 한마디가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받은 사랑을 환원하는 사람이 되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단어로 인해 사회로 나아가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박: 오히려 제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어요. 사회공헌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당사자성이 전문성으로 인정받을 때도 있었어요. 이해와 공감이 기본 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런 측면이 컸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수식어를 저와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사자성과 전문성이 동일시되는 게 아니라 당사자성에 전문성이 더해져 더 유능한 실무자가 되고 싶어요.

허: ‘허진이’라는 사람은 밝고, 당차고, 다정하고 싶은 사람이나 ‘자립준비청년 허진이’는 의기소침하고 눈치 보고,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에요. 자립준비청년임을 드러냈을 때 받는 동정과 위로, 배경으로 인해 힘들고 버거웠던 일들이 절 변화시킨 듯해요. 이 둘의 차이는 절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솔직할 수 없게 만듭니다. 언젠가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라요.
"자립준비청년 아닌 나로 살고 싶어요",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박강빈, 허진이 캠페이너
인생의 불안정한 시기에 어려움을 잘 이겨낸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 격려보다는 조금 더 솔직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좋은 어른들이 곁에 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전에 좋은 어른들에게 상처 준 경험도 많아요.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했던 순간들, 기본적인 매너를 소홀히 했던 경험들이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허: ‘결국은 사람으로 해결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혼자라 생각해 막막했지만 사실, 관심 있게 제도를 살펴주는 정부와 서로 위로를 주고받은 청년들, 응원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죠. 지금 혼자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열여덟 어른의 나다움’ 사진전 촬영.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아름다운 재단 ‘열여덟 어른의 나다움’ 사진전 촬영.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본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자립준비청년을 대표해 앞장서게 된 계기는
박: 처음부터 강한 역할 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진 않았지만, 후배들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랐어요. 그래서 전국 보육원을 순회하며 다년간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며 만남에 시공간적인 제약을 느꼈어요. 이 시점에 캠페이너 제안이 들어왔죠. 이제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밝히고 제 이야기를 콘텐츠화하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아요. 이제는 모양새보다는 쓰임새, ‘어떻게 잘 쓰일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설령 소비되더라도 잘 소비되고, 잘 쓰이고 싶어요.

허: 책임감과 미안함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제한된 지원이었지만 그래도 보육원 안에서 비교적 많은 지원을 받고 대학을 갈 수 있었어요. 공평하게 누리지 못한 자원의 현실로 인해 친구들에게 느낀 미안함을 활동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먼저 자립한 선배로서 개인의 탓으로 자립 실패의 책임을 묻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죠.

자립준비청년이 아닌 나로서 어떤 삶을 영위해 나가고 싶은가
박: 대한민국 남성의 기대수명이 약 80세 정도라고 하네요. 이를 삼등분해 보면 지금 저는 첫 번째 구간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듯합니다. 두 번째 구간에서는 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주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성숙기를 보내고 싶어요. 마지막 구간에는 자선활동에 집중하고 누군가에게 인복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 ‘부모에게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부부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사랑받지 않은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보니 앞으로도 쭉 가정을 잘 지키고 싶습니다. 또 젊은 나이에 결혼 후 직장 생활을 많이 하지 못해서 직업인으로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요.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지원을 환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개인과 사회가 자립준비청년에게 행해야 할 노력에는 무엇이 있는가
박: 취약계층 전환기 청소년들을 사례 단위로 나열해 보면, 사실 그들이 맞닿아 있거나 교집합을 이룬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자립은 모든 청년이 겪게 되는 과정이니 말이에요. 그래서 자립 기반의 부족함은 메꿔주되, 특정 프레임으로 청년을 명명하거나 구분 짓는 일은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청년이 사회적 지원에 적절히 의존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나다움과 자존의 단계를 돕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해요.

허: 자립준비청년의 말을 투정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귀담아듣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무엇보다 대중들이 실제 자립준비청년과 오해하는 자립준비청년의 간극을 좁힐 수 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해요.
‘열여덟 어른의 나다움’ 사진전. 사진 사진=손승현 기자
‘열여덟 어른의 나다움’ 사진전. 사진 사진=손승현 기자
나다움이란 무엇인가
박: 모든 사람은 고유한 서사와 배경을 갖고 있지만 이를 분리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해 보는 것이 나다움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수식어들과 내가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죠. ‘나다움’은 나를 설명하는 직업이나 성격일 수도 있지만, 그건 삶에서 마주하는 장면이나 사람들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허: 내가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의 고민 없이 출발한 자립은 그저 생계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생활의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자립의 과정은 모두 나를 찾는 과정이었죠. 선택과 책임의 연속에서 나다움을 고민하지 않으면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하달까요. 나다움을 아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 같아요.

나다움을 찾아가고 있는 자립준비청년을 포함한 20대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박: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고 해주고 싶어요. 이 사회는 우리가 멈추면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쪼개서 조금이라도 도전해 보는 청년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선명해질수록 나다움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허: 어떤 상황이든 ‘잘’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 삶을 내가 포기한다면 많은 지원이 무용지물 되기 마련이에요. 제게 잘살고 싶다는 것은 ‘그럼에도 해내자’는 것입니다. 현실은 좌절하고 포기할 일투성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의지를 가진다면 그 끝에는 더욱 풍성하고 충만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이진호 기자/손승현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