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생명의 물’ 위스키 음주법

잔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요모조모 살피는 버릇이 있다. 필자는 술의 색깔은 물론 술잔을 흔들어 잔 표면에 묻은 술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곤 한다. 그러다가 어떨 때는 성급한 친구에게서 “뭐하는 거야. 쭉 들이켜야지”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 맛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맛깔스럽게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는 많은 애주가들의 최대 관심거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술을 마시는 데는 그에 적합한 예법이 있다. 어떤 이는 술 마시는데 이것 저것 따지면 술 맛이 달아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포츠 게임을 보면서 규칙을 모르면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듯이, 술 마시는 데도 주법을 알아두면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필자는 위스키를 마시는 데 6가지 감각을 다 동원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육감이란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으며, 귀로 듣고, 혀로 맛보며, 목구멍으로 촉감을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시는 법을 말한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술과 술잔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스카치 위스키는 대부분 호박색을 띠고 있다. 오크 통에서 숙성될 때 통의 목질(木質)이 위스키에 우러나와 숙성 연도가 많을수록 색이 짙어진다. 잔으로 볼 때 호박색은 황금색보다 정감 있게 보인다. 위스키를 잔에 부어 회전시키면 유리잔 표면에 기포가 생기면서 위스키가 밑으로 내려온다. 그 부드러운 선들이 만드는 율동은 참으로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 때 원을 크게 그리며 서서히 흐르면 향과 맛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원을 좁고 빠르게 돌리면 향과 맛이 가볍게 느껴진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이것을 눈물(Tears) 또는 다리(Leg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험이 많은 마스터 블렌더들은 이 모양을 보고 품질을 평가하기도 한다. 스코틀랜드의 대표적 원액 생산지는 스페이 강 유역이다. 우연하게도 스페이 강물은 12년 숙성된 스카치 위스키 색깔과 같다. 스페이 강은 스코틀랜드 전역에 덮여 있는 이탄(Peat)층 밑으로 흘러 그 색깔이 마치 나무통에서 우러난 것과 비슷하다. 스페이 강 유역의 스카치 위스키 원액 증류소를 방문하면 위스키를 시음할 때 냇가의 물을 떠서 위스키와 섞어 마시기도 한다. 이때 물의 색깔이 위스키 색깔과 똑 같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위스키 색깔을 보면서 스코틀랜드 풍경을 그려 보는 것도 스카치위스키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다.사람들은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기쁨을 금치 못한다. 프랑스의 고급 향료는 동일한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것도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매력 중에서 향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잔을 코끝으로 가져가면 확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아마 꽃향기나 신선한 과일 향 또는 나무 탄내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이다. 이런 향기는 향긋한 향으로서 많은 소비자들이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 다음 숨을 들이쉬면 위스키로부터 올라오는 깊고 묵직한 향기가 느껴진다. 곶감이나 건조 무화과 같은 그윽한 과일 맛이나 묵직한 훈연 향이 바로 그 것이다. 이런 향기들을 음미하는 것은 참으로 고상한 취미다. 물론 사람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향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가 선호하는 향을 가진 위스키를 선택하고 확인하며 음미하는 것은 그냥 되는 대로 마시는 것에 비해 재미를 더한다. ‘마셔봐야 맛을 안다’ 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폭음 습관은 마셔 봐도 맛을 알지 못하게 한다. 너무 빠르게 마시기 때문이다.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우선 천천히 마시는 것부터 시작한다. 잔을 입에 대고 술을 혀에 조금 적시면 술이 입 속에 퍼지면서 혀와 입천장에서 단맛과 신맛 쓴맛 등이 어우러져 조화된 맛과 감촉이 느껴진다. 이때 맛은 자기가 경험한 복숭아 사과 바나나 등 과일이나 크림 꿀 스모크 등 음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음은 목으로 넘어가는 위스키의 감촉과 뒷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위스키 소비자들은 목에 넘길 때 부드러운 맛을 선호한다. 부드러운 맛을 가진 위스키는 대부분 뒤에 남는 여운이 짧다. 그런데 정통 스카치 위스키는 여운이 긴 것(Lingering Taste)이 특징이다. 한국의 위스키 애호가 들은 소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는 가급적이면 다양하게 마시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위스키를 온더록스(On the rocks)로 마시거나 칵테일로 마시면 위스키의 고유한 맛이 다른 형태로 느껴질 것이다. 그 위스키가 지닌 다양한 면모를 음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위스키 마시는 법에서 소리를 느낀다는 것은 건배할 때 잔 부딪히는 소리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주위의 환경을 즐기면 된다. 이는 다도를 논할 때 차 끓이는 소리나 바람소리를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컨대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마신다면 술 맛이 더 좋게 느껴질 것이다. 육감을 이용해 술 맛을 더욱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우리나라의 폭탄주 문화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다. 첫째, 폭탄주는 좋은 위스키가 가진 향과 맛 그리고 의미를 다른 술과 섞어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너무 빠르게 마셔 사람이 술을 마시는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지 모르게 하는 주법이라는 점이다. 셋째, 주량과 개성을 무시하고 누구나 같게 취급하는 획일성이 문제다.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 술에 관련된 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하면 술 맛이 좋아진다. 어떤 특정 위스키가 다른 위스키보다 좋게 느껴지는 요소를 꼽는다면 필자는 위스키는 브랜드마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브랜드에 얽힌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마시면 술 맛이 훨씬 좋다.시인 김춘수의 ‘꽃’ 이 생각난다.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의 무엇이 된다. 그 위스키의 이름이든, 맛이든, 향이든, 그 위스키를 마신 사람의 모습이든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재미있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요소를 다 활용하면서 마시면 술 맛이 저절로 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