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32호 (2008년 01월)

상대의 잠재된 두려움을 자극하라

기사입력 2008.01.16 오후 03:52

상대의 잠재된 두려움을  자극하라

악당을 등치는 사기꾼들 ‘오션스 13(Ocean’s Thirteen)’

할리우드의 미남 배우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앤디 가르시아, 맷 데이먼, 그리고 대부로 잘 알려진 알 파치노까지 악역으로 합세,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오션스 13’. 최고급 호텔과 카지노를 실제 영화 촬영지로 사용, 세계적 유명 호텔들의 화려한 시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 영화다.

호텔 업계의 야비한 미다스 윌리 뱅크(알 파치노 분). 영업이 시원찮은 호텔을 헐값에 구입한 후 완전히 뜯어고쳐 최신식 시설, 흠 잡을 데 없는 업계 최고의 서비스로 도박계의 큰손인 ‘고래(Whales)’들을 끌어들여 단 시간 내에 최고의 카지노 호텔로 탈바꿈시켜 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라스베이거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뱅크’란 호텔을 신축 오픈하는 윌리 뱅크. 그러나 사업 시작 단계에서 사기와 협박으로 루벤으로부터 호텔 경영권을 빼앗고 루벤은 이에 대한 충격으로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된다. 오션(조지 클루니 분) 일당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루벤에 대한 복수로 ‘뱅크’ 호텔을 파산하게 만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며 다시금 모이게 되는데….

지질학자로 변장해 호텔 안 뱅크의 사무실로 찾아간 오션 일당의 행동대장 러스티(브래드 피트 분). 라스베이거스를 둘러싼 모하비 사막의 지진 연구 보고서를 운운하며 그에게 접근한다. 강진으로 뱅크 호텔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실감나는 그래픽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호텔의 위치가 심각한 지진 발생 위험이 높은 곳에 있으니 당장 호텔을 폐쇄해야 한다고 겁을 준다.

뱅크: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며) 요점이 뭔가?

러스티: 호텔을 폐쇄하세요.

뱅크: 아직 개장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폐쇄라니? 절대 안돼.

러스티: 호텔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수밖엔 없군요.

(지진 감지기, 사실은 뱅크를 감시하기 위한 카메라 상자를 건네주며) 받으세요. 지진 감지기예요. 지진이 감지되면 사람들을 즉시 대피시켜야 합니다.

뱅크: 이따위는 원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어.

러스티: 그럼 당신이 진짜 원하지 않는 걸 말씀 드리죠. ‘타임’지 표지에 호텔 사진이 실리는 거죠. 강철 빔과 깨진 유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밑에 깔려 있는 당신과 수많은 투숙객들. 헤드라인은 ‘누구의 잘못인가?’쯤 되겠죠. 이런 사태야말로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거겠죠(가슴을 쓸어내리는 뱅크. 비서가 지진 감지기를 뱅크의 책상 뒤 선반에 조심스레 올려 놓는다).

이제 뱅크의 일거수일투족은 훤하게 꿰뚫게 됐다.

1.러스티의 협상 전략 분석: 강력한 상대(Formidable Opponent)일수록 논리와 심리의 총체적 자극을 통해 두려움을 일깨워라(Integrated Logical and Psychological Stimuli)

상대의 잠재의식 속에 꼭꼭 숨어 있는 두려움을 일깨운다는 것, 게다가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만만한 상대를 겁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재력이 막강하면 할수록, 명성이 높거나 화려할수록 더욱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런 완벽하게 보이는 상대일수록 그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논리와 감정을 동시에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두려움을 치밀하게 준비하라. 권위를 느끼게 하는 잘 꾸며진 서류와 자료, 그리고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는 시청각 자료의 적극적 활용은 상대의 오감을 통해 그의 심리 밑바닥까지 당신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할 것이다. 논리와 심리의 총체적 자극(Integrated Logical and Psychological Stimuli)을 통해 상대의 뼛속까지 두려움을 심어주라.

대형 굴삭기를 이용해 지진을 가장하려던 계획이 굴삭기 고장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굴삭기를 가져 오는 것. 그러나 이미 자금이 바닥난 오션 일당에겐 새 굴삭기를 구입할 3600만 달러가 없다. 어쩔 도리 없이 전편에서 자신들과 한판 대결을 펼친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 분)에게 돈을 빌린다. 베네딕트는 돈을 빌려 주는 대신 의무 조항을 나열한다.

베네딕트: 첫 번째, 날 물 먹였다간 너흰 전부 죽어. 두 번째, 투자금 3600만 달러의 2배 수익 보장. 그리고 뱅크가 호텔이라고 부르는 그 육중한 괴물을 완전히 망가뜨려 줘. 뱅크를 파멸시켜 줘. 뱅크가 개장한 호텔은 한 번도 파이브 다이아몬드 상을 놓친 적이 없어. 그리고 수상 기념으로 매번 진짜 다이아몬드 5개를 아내에게 사줬지. 세 번째, 그 다이아몬드를 훔쳐.

오션: 불가능해. 우린 사람도 모자라고. 시간도 없고 게다가 잡히면 종신형이야.

베네딕트: 내가 갖겠다는 게 아냐.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뱅크에게 맛보게 해 주려는 것뿐이야. 훔치기 싫으면 다른 투자가를 찾아봐. 2 협상기법 제안

2.러스티의 협상 전략 분석:싫으면 관두고(Take it or leave)

만약 상대가 당신이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는 확신이 서면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협상 순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Take it or leave’ 기법이다. 물론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조건을 요구하는 건 당연지사다. 더 이상 대안도 없고, 시간도 없으며, 자칫 당신마저 우물쭈물하다 놓치기라도 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되거나 혹은 큰 이익이나 기회를 놓쳐 버리는 상대에게 걸어보는 꿀맛 같은 협상 기법이다. 사실 협상의 막바지까지 이르렀다면 양측 모두 깊이 발이 빠져 별다른 대안 없이 서로 상대의 처분만 기다리는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누가 더 상대의 발을 깊게 빠뜨리고, 누가 더 자신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포장하는가가 관건이다. 상대의 약점과 두려움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상대의 니즈(Needs)와 열망(Aspiration)을 얼마나 자극하는가에 따라 당신이 이 꿀맛 같은 기법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개인적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Relationship-focused culture) 우리나라나 아시아 국가보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혹한 비즈니스 성과 중심(Deal-focused Culture)의 미국 등 서구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협상 기법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듣던 오션은 뱅크가 망하는 꼴을 보는 것이 베네딕트의 최대 숙원임을 알아챈다. 영화 후반, 뱅크의 호텔과 카지노는 오션 일당이 조작한 지진으로 카지노의 도박 관리 컴퓨터가 손상돼 돈을 걸기만 하면 따도록 승부가 조작돼 개장 행사는 엉망진창이 되고 뱅크 호텔과 카지노는 복구 불능으로 망가져 버린다. 한편, 베네딕트가 요구한 2배의 수익금은 오션이 베네딕트의 이름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자선기금으로 기부해 베네딕트는 거액의 기부자로서 어쩔 수 없이 오프라 쇼에 초대돼 TV에 출연한다.

3.오션의 협상 원칙 분석: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 보고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라(Listen, listen and listen)

상대가 제시한 조건들을 잘 듣다 보면, 상대가 이번 협상에서 절실히 원하는 궁극적 목표(Primary Goal)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 궁극적 목표는 심리적 집착이 다른 조건들보다 훨씬 강해 이것만 달성된다면 다른 조건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양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 장면에서 오션은 상대의 진짜 목표가 뱅크 호텔이 망하는 것이지 투자 수익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란 것을 눈치 챈다. 말을 아껴라. 대신 귀를 기울여라. 상대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라. 그러면 당신에겐 비용은 줄이고 이익은 늘릴 수 있는 절묘한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협상 상황이 언제나 당신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벅찬 힘겨운 상대와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에서 성공보다 패색이 더 짙은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만약 당신이 이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고, 그렇다고 놓쳐 버릴 수 없는 협상을 앞두고 있다면 이 영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당신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점을 찾아보라. 치밀한 상황 분석과 철저한 협상 시나리오, 그리고 완벽한 준비. 카지노를 둘러싼 오션 일당의 통쾌한 한판 승부, ‘오션스 13’이었다.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위스콘신 매디슨 MBA졸
전경련 국제경영대학원 협상교수
역서: 협상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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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1-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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