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순례와 중동 분쟁. 중동의 작은 거인으로 불릴 만큼 경제적·군사적·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나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면서도 많은 이들은 이 두 가지의 사실을 선입견인 양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동안 이 선입견을 깨기란 솔직히 힘들다. 여전히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는 긴장감이 돌고 한국에서 이스라엘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동안 만나는 여러 풍경들은 적어도 이 선입견을 누그러뜨릴 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유럽을 닮은 풍경과 생활 및 문화 수준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이 품은 독특한 지형들이 만든 경이로운 여행지들 때문이다. 강렬한 중동의 햇살 아래서 보낸 신비로운 자연으로 만난 이스라엘의 이면들.이스라엘 제2의 도시 텔아비브를 출발한 차는 이스라엘의 젖샘인 바니아스와 겨울이면 눈이 내려 스키를 탈 수 있는 헤르몬산(그 유명한 골란고원에 자리하고 있다)을 들른 뒤 남행을 시작했다. 이제 요르단 강과 나란히 가게 되는데, 그 여정이 사해까지 이어지는 동안 골란고원 사이의 계곡(중동의 건조한 계곡은 곧 교통로를 뜻한다)을 지나고 중동부의 비옥한 농업지대를 거쳐 유대 광야를 거쳤다. 창밖 좌우로 황량한 사막이 한참 이어지는 동안 대추야자와 여러 채소를 가꾸는 키부츠들이 마치 오아시스처럼 간간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웃한 나라들에 비해 농업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이스라엘의 치수 기술은 이 황량한 땅에 푸른 대추야자 잎을 싹틔운 것이다. 그 풍경만큼이나 유달라 보였던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과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였다. 골란고원 저편은 시리아, 요르단 강 너머가 바로 요르단인데, 도로는 이들과 이스라엘을 구분한 국경을 따라 놓였다. 요즘 강 건너 요르단에 이스라엘이 앞선 치수와 농업기술을 전수하며 평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단다.골란고원을 벗어나자 저 아래로 푸른 호수, 아니 바다라고 해도 좋을 물 기운이 위세를 뽐냈다. 기독교 신약성서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인 갈릴리호수. 비록 사방이 닫힌 호수이지만 규모로 봐서 공식적으로는 ‘바다(Sea)’라는 명칭을 얻은 곳이다. 염도가 바다에 비해서는 낮아 우리에게는 ‘호수’라는 명칭이 더 자연스럽다. 갈릴리호수는 호반에 주요 순례지를 두고 있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내에서 손꼽히는 휴양지로도 사랑받는다. 갈릴리 호수의 정취를 알기 위해 들른 갈릴리 호반에서 가장 번화하며 중요한 도시인 티베리아스(Tiberias)를 비롯해 근처 도시들에는 세계적인 유명 호텔들이 세워져 있고 사철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이스라엘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나라 전체가 경직되지나 않았을까 싶었는데 갈릴리호수에서 만난 이스라엘인들은 여느 유럽인들이 휴가를 즐기는 방식과 모습, 미소로 오후 한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갈릴리호수 일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수상 레포츠의 천국이자 지프 투어, 자전거 하이킹, 카누와 카약 등 여러 레저를 즐기는 곳이기도 해 많은 이스라엘인들과 유러피언들이 휴양 여행지로 찾는 곳이다. 우리는 그저 성지순례지로만 의미 있는 줄 알았으니 정말 이스라엘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싶다.갈릴리호수를 벗어나 남행을 계속했다. 풍경은 또 바뀌었다. 철조망이 이어지고 대추야자 농장이 드문드문 나타나 지루함을 덜어주었지만 주변 산세나 지형은 상당히 달라 있었다. 점점 사막의 분위기에 가까워진다고 할까. 쉽게 떠올리는 예의 모래사막은 아니지만 풀 몇 포기씩 나 있는 게 전부인 민둥산들은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듯 보기만 해도 메마르고 척박한 느낌이다. 이곳이 그 유명한 유대 광야였다.유대 광야가 네게브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 가운데 하나인 사해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마치 비가 온 뒤 흙탕길 곳곳에 푸른 물이 고인 듯 어지러운 해안선을 이루는 이곳은 갈릴리처럼 사방이 가로막힌 담수호다. 그런데 거리낌 없이 ‘바다’라 부르는 건 아마 이 호수 가득 밴 ‘짠내’ 때문일 것이다. 염도 200%로 지중해의 7배를 자랑(?)하는 소금기는 유입된 요르단 강물이 빠져나갈 곳도(사해 지역의 고도는 해저 412m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겨를도 없이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미생물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바다가 된 것이다.그렇지만 사해는 갈릴리와 더불어 이스라엘 최고의 아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휴양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금과 미네랄을 사용하는 스파를 즐기고 바다에 들어가 온몸이 둥둥 떠다니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해안은 물론 바다 밑바닥까지 하얀 소금 결정으로 뒤덮여 있는 신기한 광경도 사해를 더 특별하게 한다. 맨발로 들어가면 소금 결정들 때문에 발이 아플 정도지만 저 멀리 요르단을 바라보며 두둥실 떠다니는 경험은 세계 어디서도 할 수 없기에 사해 해안의 목 좋은 곳에는 크고 작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사해와 호텔 수영장을 드나들며 휴식을 만끽하는 이들의 모습은 성스러움, 혹은 혼란스러움으로만 다가왔던 이스라엘의 인상을 한층 누그러뜨려 줄 것이다. 아니 세계 어디서도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지가 돼 줄 것이 분명하다.사해에서 더 남행하면 네게브 사막에 이른다.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그 척박했던 불모지를 개척했던 역사로 이스라엘 인들의 남다른 의지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리고 사해의 남쪽, 그러니까 네게브 사막 북부에 형성된 독특한 지형은 태고의 모습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또 사막의 풍광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중요한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바로 마크테시 라몬이다.마크테시 라몬은 히브리어로 ‘로마로 가는 길’을 뜻하는데 영어 지명은 라몬 크레이터로 알려져 있다. 1억1000만 년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마크테시 라몬은 네게브 사막에 마치 함지박처럼 움푹 파인 천연 와디 지형이다. 그 길이가 80km에 이르고 폭이 가장 넓은 곳은 9km에 이를 만큼 거대한 규모다. 전망대에서 보면 좌우가 깎여 내려가 땅이 푹 꺼진 지형을 볼 수 있지만 막상 마크테시 라몬으로 들어서면 외계의 혹성에라도 온 듯 기괴한 산악 지형과 암석층으로 이뤄진 메마른 사막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을 두고 ‘크래터(Crater)’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화산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1억1000만 년 전 이곳이 바다였을 당시 해저가 솟아올랐고 상대적으로 무른 지층이 깎여 나가 지금의 ‘함지박’ 모양의 와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어인 ‘마크테시 라몬’이 공식 명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마크테시 라몬이 만들어지면서 함지박 둘레는 자연스레 절벽 지형으로 바뀌어 암벽 등반지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곳을 여행하는 가장 흥미진진한 방법은 사륜구동 지프에 올라 오프로딩을 즐기는 것이다. 거친 암석 지형과 황량한 사막을 종횡무진 오가며 독특한 지형과 지층, 식생 등을 직접 관찰해 보는 투어다.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는 지프에 올라 사막 이곳저곳을 다니며 마크테시 라몬의 광물층을 일일이 만져보기도 하고 1억 년 전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살펴보았다. 금쪽같은 비가 내리면 이 마크테시 라몬 곳곳은 물길이 생기는데 그 물길을 중심으로 자라는 관목들이 제법 있어 아예 풀 한 포기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 지대를 벗어나면 보이는 것은 암석 군락과 그 사이를 채운 모래가 전부였다.마크테시 라몬 사막 투어의 으뜸은 고원에서 만나는 풍광이다. 영화에서 묘사됐던 외계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마주하면 벌어진 입이 쉬 다물어지지 않는다. 숲과 나무, 풀이 없어 고스란히 벌거벗겨진 채 펼쳐지는 산세의 다이내믹한 풍경이 장관이다. 어떤 봉우리는 식탁처럼 평평하고 또 어떤 것은 우리네 마이산 돌탑들을 닮아 있다. 이 사막에서 사람들은 모터 바이킹과 사이클링을 즐기고 며칠씩 야영을 하기도 한단다. 황무지로 버려진 땅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모습의 자연을 체험하는 곳으로 이미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있는 마크테시 라몬은 그 옛날 이집트에서 출발한 대상 행렬이 레바논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 가야 했던 교통로였다면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활동적인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다.네게브 사막의 중앙에 있는 아브다트는 마크테시 라몬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의미 있는 고도(古都)다. 이집트에서 출발한 대상들이 향신료를 싣고 요르단을 거쳐 레바논의 트리폴리로 가던 길목에 자리한, 그야말로 ‘사막의 배’들의 중간 기항지였던 것. ‘향신료의 길’이라고 하는 이 대상로에 자리해 번성했던 사막 도시였는데, 네게브 사막의 거대한 와디인 마크테시 라몬 역시 이 길의 일부였다. 기원전 7세기부터 500년 가까이 아라비아반도 북동부에 왕조를 세웠던 나바티안들이 주로 이 길을 이용해 이들의 손에 도시가 조성됐다. 타고난 대상들이었던 이들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가 바로 요르단의 페트라이다.고대 아랍인의 기원으로 알려진 나바티안들은 낙타로 사막을 오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막을 건너는 긴 여행을 해야 하는 습성상 사막 곳곳에 신전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곡식과 물 저장소 등을 두었는데 그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가문을 이어오는 이 비밀은 곧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이 되었는데 흔히 ‘사막의 항해사’ 베드윈족의 기원으로 알려진 부족이기도 하다.아브다트 유적은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아브다트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보존, 개방하고 있다. 중요한 무역 거점이 되면서 나바티아 왕조 멸망 후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이 번갈아 이곳을 지배하게 되면서 도시를 발전시켰다. 유적은 나바티안 스타일의 주거지와 그들의 신전, 로마 지배 당시의 주거지와 공중목욕탕, 비잔틴 양식의 교회, 막사, 성곽 등으로 이뤄져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음을 알려준다. 이 아브다트 아크로폴리스는 세계 문화 유적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대상들의 옛 생활상을 알려주는 주요한 지역으로 대접받고 있다. 뜨거운 사막의 날씨를 피하기 위해 지어진 집이다.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데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스팀을 이용해 사우나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니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 사랑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다.이곳의 나바티안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향신료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정착했는데 훗날 역사는 이 ‘머무름’이 나바티안들을 쇠락하게 했다고 평하고 있다. 외부의 문명이 흘러들어오기 전까지 그들은 이 사막의 지배자였으나 이곳에 번듯한 유럽식 도시가 세워진 뒤 그 문명의 편리함에 스스로 빠져든 탓에 자신들의 자리와 사막을 고스란히 내어준 것이다. 여러 아랍 국가들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한 이스라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역사와 문명의 충돌을 이곳 아브다트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가려면 : 이스라엘을 가는 방법이 훨씬 쉬워졌다. 지난 9월 22일부터 인천~텔아비브 간 직항편이 놓인 것. 대한항공은 매주 목·토요일 혹은 화·토요일이나 화·목·토요일 등 주 2~3회의 직항편을 운항한다. 출발 시간은 저녁 10시 께인데, 날짜에 따라 출발 요일에 변동이 있으니 잘 확인해야 한다. 운항 시간은 약 11시간.● 이스라엘 여행정보 얻는 곳 : 이스라엘관광청 한국사무소에서 이스라엘 성지 순례와 일반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www.israel.co.kr글·사진 남기환 비틀맵 트레블 편집장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isra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