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실태

난 2008년 12월 3일 금융위원회는 1조3000억 원 규모의 부실화된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 대출채권을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매입하겠다는 대책을 긴급히 발표했다. 정부가 PF에 사실상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전 주 금융감독원은 은행 보험 증권 등 모든 금융권의 PF 대출 사업장 2000여 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정부가 PF ‘대수술’에 나선 까닭은 PF 대출이 한국판 ‘서브프라임’으로 일컬어질 만큼 폭발성이 큰 ‘뇌관’이기 때문이다. 100조 원에 달하는 PF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이를 떠안고 있는 은행 저축은행 등의 부실로 이어져 자칫하면 뱅크 런이 발생하는 등 금융 위기가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PF에 보증 등을 제공한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도 부를 수 있다. 금융사와 건설사가 동시에 위기에 처할 경우 내수 경기의 급격한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그렇다면 PF란 어디서,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1997년 외환위기 전의 부동산 개발 사업은 건설사가 직접 빌린 돈으로 토지를 사들여 자체 분양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시행과 시공이 분리된 도급 형태로 사업 구조가 점차 변화했다.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면서 소규모 시행사들은 토지 매입 대금 등 개발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PF를 활용하기 시작했다.PF는 원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유전, 조선소, 발전소 등의 개발 사업에서 신용, 담보보다는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성과 현금흐름 등을 기초로 장기간 대출을 해주는 금융 기법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시행사가 아파트 오피스텔 등을 개발하면서 자기 돈으로 10∼20%에 달하는 용지를 확보한 뒤 사업성을 담보로 금융사에서 브리지론과 PF 대출을 받아 공사를 마무리하는 식으로 주로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활용됐다.시행사는 소규모이고 신용 등급이 낮은 곳이 많았지만 시공사와 협의되면 시공사 신용을 기초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재무 상태가 좋은 건설사가 보증하면 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PF 대출을 해줬다. PF의 폭발적인 성장은 시행사, 건설사, 시중은행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었기에 가능했다.이 같은 부동산 PF 대출은 2004년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금융사들이 대출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커졌다. 저축은행 등은 PF의 높은 리스크를 이유로 시행사에 연 10%대의 고금리를 부과해 떼돈을 벌었으며 시행사들은 이처럼 높은 조달비용을 손쉽게 분양가에 전가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PF 시장이 급성장하자 PF에도 유동화라는 금융공학이 접목됐다. 유동화는 먼저 자산유동화증권(Asset Backed Securities: ABS)의 형태로 나타났다. 2002년 부동산 PF ABS는 617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06년엔 5조9000억 원으로 성장했다.ABS의 증가세는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던 2006년 말부터 꺾였다. 2006년 9월부터 정부가 부동산 과열을 억누르기 위해 PF ABS를 토지 소유권 확보 등 개발 사업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된 후에야 발행할 수 있도록 바꾼 영향도 컸다. 이에 따라 2007년 3분기까지 PF ABS 발행 실적은 1조2126억 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76%나 감소했다.그때부터 ABS를 대체한 것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산담보부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ABCP)이다. ABCP는 ABS와 기업어음(CP)의 구조를 결합한 상품이다. 토지 등 유동화자산을 양도받은 유동화 전문 회사(SPC)가 유동화자산의 현금흐름에 기초해 90일 이내의 만기를 가진 단기 금융 상품인 CP를 발행하는 방식이다.투자자 입장에선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을 근거로 발행되는데다 3개월짜리 단기 상품이기 때문에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용도가 낮은 기업도 쉽게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시행사들은 차환 발행만 된다면 저금리인 단기 ABCP를 여러 번 발행해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장기 ABS 채권의 이자를 갚게 되므로 SPC가 금리 차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이를 반겼다. 이에 따라 2006년 1분기 전체 PF 유동화 시장에서 ABCP가 차지하는 비중은 44%였지만 2007년 1분기엔 85%로 높아졌다.그러나 ABCP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발행 금리가 CD 금리에 연동돼 있어 시중금리가 즉각 반영되는데다 만기가 짧아 공기가 2~3년씩 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적어도 8~10번가량을 차환 발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차환 발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시공사의 연대보증과 은행의 매입 보증 등 각종 신용 보강이 이뤄졌다.그러나 차환 발행은 프로젝트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자금시장 상황에 따라서도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금융 위기로 인해 자금시장이 얼어붙을 경우 아무리 사업성이 좋아도 연장이 불가능해 사업장 부도와 보증을 선 시공사와 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ABCP는 상법에 의해 발행되기 때문에 유동화 관련 통계에서 누락돼 금융 감독 당국이 제대로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했다.2008년 6월 말 현재 금융권의 PF 규모는 97조1000억 원에 달하며 이 중 대출이 78조9000억 원, ABCP가 15조300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업권별로는 △은행 47조9000억 원 △저축은행 12조2000억 원 △보험사 5조3000억 원 △증권사 3조 원 △카드·리스·캐피털사 4조3000억 원 등이다. 은행권의 PF 대출 연체율은 0.64%로 낮지만 저축은행은 14.3%에 달한다.이같이 폭증한 PF의 문제는 2006년 하반기부터 주택 건설 경기가 부진해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중소 지방 건설사부터 PF 상환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글로벌 금융 위기가 국내 자금시장을 덮치자 ABCP 차환 발행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중소 시행사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건설사와 은행들은 신용을 제공한 시행사의 부채를 대신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 건설사와 은행의 보증이 없는 ABCP 등도 수조 원에 달하고 있어 여기에 투자한 금융회사와 개인은 커다란 손실을 볼 수 있다.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부동산 값이 하락하고 금융시장의 자금이 원활히 움직이지 않자 PF발 위기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타격은 저축은행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사업 승인 이전의 사업 초기 단계(사업 부지 매입 계약, 잔금 납부 등) 대출에 집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엄밀한 대출 심사 없이 브리지론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상대적으로 큰 부실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실태조사 결과 저축은행이 대출한 899개 PF 사업장 중 정상은 절반(447개)에 불과하고 29%(263개)는 ‘주의’, 21%(189개)는 ‘악화 우려’ 사업장으로 분류될 정도다. 연체율도 2008년 9월 말 16.9%로 불과 3개월 사이에 2.6%포인트나 상승했다. 은행의 경우 대형 시공사를 지급보증인으로 세우고 있는데다 전문 평가 기관을 통해 사업성 검토가 이뤄져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낮지만 결코 안전지대는 아니다.이러한 PF 대출의 구조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와 비슷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신용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도 주택 가격의 90∼100%를 대출해 준데서 비롯됐다면 PF는 부동산 급등기에 수익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집행됐다. 둘 다 주택 가격의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금 조달을 위해 유동화증권으로 만들어 리스크를 확대한 점도 유사하다.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달리 대부분 유동화가 1차에 그치고 있고, 최근 급증한 ABCP의 경우에도 은행이 80% 가까이 매입 약정(지급보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축은행 등의 PF가 부실화되더라도 투자자들의 원금 회수에는 아직 문제가 없다. 또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이 대주단 협약을 만들어 여기에 가입하는 신용 등급 BBB- 이상 건설사에 대해 PF를 포함한 여신 만기를 1년 동안 연장해 주기로 한 상태여서 당분간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잠복할 가능성이 있다.김현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