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소프트웨어 ‘알집’개발한 이스트소프트 김장중 대표

스트소프트는 요즘 코스닥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수년간 대장주 역할을 하던 NHN이 지난해 코스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허전해 하는 코스닥 투자자들에게 이스트소프트는 새로운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자칫 이스트소프트라는 이름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업체가 개발한 알집, 알약, 알송, 알씨, 알FTP, 알패스는 대한민국 PC 사용자라면 누구나 하나 정도 보유한 프로그램이다. 그야말로 ‘국민 소프트웨어’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트소프트는 리니지와 함께 온라인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시장을 양분하는 카발(CABAL)을 제작한 업체다.이스트소프트는 최근 가파른 매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만 6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99%나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5억 원, 당기순이익은 1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9%, 198%씩 늘어났다. 불과 3년 전 연매출 53억 원, 영업이익 6억 원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상승세다. 당초 이스트소프트가 예상한 2008년 매출액은 191억 원, 영업이익 79억 원이다. 그러나 이미 3분기까지의 누적 실적이 매출액은 167억 원, 영업이익은 74억 원이다. 초과 달성이 가시화되자 이스트소프트는 지난해 10월 2008년 매출액(232억 원)과 영업이익(98억 원)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이스트소프트의 강점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에서 찾을 수 있다. 알집, 알씨, 알약 등이 패키지로 구성된 알툴즈는 인터넷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다운받는 프리웨어 소프트웨어로 지난해 말 현재 이용자 수가 2223만 명에 이른다. 2006년 선보인 백신프로그램 알약은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가 개발한 V3와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약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선두 추월은 시간문제다. V3와 달리 알약은 개인 고객들에 한해 지금도 무료 배포되고 있다.알툴즈가 이스트소프트의 지명도를 높인 소프트웨어라면 카발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둬들이는 캐시 카우다. 2006년 첫선을 보인 카발은 올해 16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 제품. 스토리지(데이터 저장) 소프트웨어인 인터넷디스크도 한 자릿수의 매출을 올리지만 매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이스트소프트는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로부터 ‘2008 아시아 태평양 고속성장 500대 기업’에 선정됐다.오늘날 이스트소프트의 영광에는 이 회사 김장중 대표의 공이 컸다. 김 대표는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1세대다. 한양대 수학과 출신인 김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현대전자(현 하이닉스)가 주관한 대학생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한글 워드프로세서 21세기’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21세기는 당시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아래아한글2.0을 기술적으로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탄력을 받은 그는 1993년 대학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설립한다. 이스트소프트는 이렇게 시작됐다.“개발한 프로그램을 PC 통신에 올려놓았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참에 아예 회사를 차려라’는 조언도 쏟아졌습니다. 귀가 솔깃해지더군요. 물론 자신도 있었습니다.”창업 당시 그에게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었다. 다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회사 문을 연 지 5개월 후 그의 책상에는 입영 통지서가 올라와 있었던 것. 비록 6개월의 단기 복무였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를 그는 군복무로 보냈다. 그가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왔을 때 회사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이후 그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건 혹독한 시련뿐. 결국 그는 1996년 한메소프트와의 합병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메소프트 대주주인 대농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합병은 결렬됐고 그는 2억 원의 빚만 지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주기 위해 신용카드 7장을 만들어 돌려 막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국민연금을 받으러 온 공단 직원을 피해 사무실 문을 잠그고 숨죽여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PC방 매니저 프로그램, 대기업 하청 프로그램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나갔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지독히 운이 없었다. 회사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다행히도 그 어렵다던 1998년 4월에 증자를 했습니다. 사실상 재창업이었죠.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만 힘든 게 아니더군요.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절, 우리는 비교적 넉넉한 현금(?) 덕분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힘든 시기를 통과한 덕분에 체질도 어느 정도 강화돼 있었다고 할까요. 오늘날 이스트소프트를 만든 알집이 탄생한 것도 이때입니다.”김 대표는 “만약 호황기였다면 알집과 같은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외환위기는 우리에겐 도약의 시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도 이스트소프트는 전체 인력의 30%인 70여 명이 순수 프로그램 개발자다.대표 소프트웨어 ‘알집’은 우연한 기회에 개발됐다. 한 여직원이 거래처에서 보낸 압축 파일을 풀지 못하는 것을 보자 심심풀이 삼아 개발한 것이 아래아한글, V3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로 성장했다. 알집이라는 이름은 김 대표와 회사를 함께 설립한 민영환 본부장의 성 ‘민’의 영어자판인 ‘ALS’와 압축 프로그램 확장자 명 ‘ZIP’의 합성어다. 제품이 개발되자 그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21세기처럼 무료 배포를 결심했다. 알집 이후 이스트 소프트는 알송, 알씨, 알패스, 알약 등 ‘알’ 시리즈 제품을 연이어 발표했다.“외국 사람들은 알집을 올(All)집이라고 발음합니다. 모든 것을 푸는 압축 프로그램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계속 알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얼마 전 김 사장은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중동 지역 진출을 적극 검토해 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아랍어로 알(al)은 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다. 아무래도 친근감이 더해진다는 얘기다.“솔직히 이런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사라면 누가 구입하겠습니까.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에 올려놓았는데 예상외로 폭발적인 반응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2000년부터 전담 개발자를 고용해 제품의 질 향상에 주력하게 됐죠.”지금도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알집, 알약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왜 공짜로 주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때마다 그는 “소프트웨어 하나로 돈을 번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고 설명한다.“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솔직히 돈 받고 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부가 서비스에 더 신경을 쓰지 소프트웨어 자체에만 열을 올리면 한계에 이릅니다. 대신 알약의 경우 법인고객들에겐 유료로 판매합니다. 유료로 판매하는 만큼 제품 품질은 더 신경을 쓰면서 말입니다.”이 같은 프리웨어 방식으로 회사를 키운 것은 해외에선 흔한 일이다. 구글, 자바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에선 이스트소프트가 유일하다. 불황의 파고가 산업 전반에 들이치는 가운데 정보기술(IT) 업종도 예외일 수는 없다.“작년 4분기부터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우리도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알약만 해도 매출의 30%가 기업 고객입니다. 기업들이 어려워지면 우리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울상을 지을 정도는 아닙니다. 3분기 대비 20% 이상 성장하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정작 김 대표가 걱정하는 것은 경기 침체가 아니다. 경기 침체야 이스트소프트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전 업종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는 IT 산업 기반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현 상황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라고 진단했다.“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자본이 필요합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투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죠. 그러나 개발자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산업도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랩니다. 대학생으로 돌아가 다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전 미국에서 시작할 겁니다.”김 대표는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대한민국에서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빌 게이츠와 같은 인재는 나올 수 없다”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대한민국 IT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이스트소프트의 다음 목표는 해외시장 공략이다. 현재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해외 판매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1차적인 과제다. 그 첨병은 온라인게임 카발이 맡을 계획이다. 현재 카발은 9개 파트너사를 통해 전 세계 50여 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스트소프트는 지난해 12월 3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해외에서 벌어들인 금액은 400만 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255만 달러)과 비교해 볼 때 약 6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김 대표의 롤모델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 CEO인 빌 게이츠다. 전공을 수학과로 선택한 것도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더 나아가 김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이스트소프트의 벤치마킹 모델로도 삼고 있다.“경영자의 시각으로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는 태양이 아닙니다. 되레 단일 품목 하나로 급성장하고 있는 구글의 한계가 더 분명합니다. MS는 응용 소프트웨어(OS) 분야 외에도 익스플로러, 미디어, 오피스 소프트웨어, 게임팩까지 생산합니다. 우리가 범용 소프트웨어와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온라인 게임 등으로 사업 영역을 구분한 것도 MS를 참고로 했습니다.”이스트소프트 대표이사한양대 수학과한양대 경영대학원(MBA)2008 벤처코리아 벤처기업부문 대통령 표창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