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제 49호 (2009년 06월)



“1승9패의 각오로 덤비면 어떤 일이든 성공”

기사입력 2009.06.15 오전 10:06

“1승9패의 각오로 덤비면 어떤 일이든 성공”
유니클로의 목표는 ‘옷을 바꾸고, 의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꿔 나간다’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등이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꿨듯이, 옷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이다.

지난 5월 2일 오후 도쿄의 번화가 긴자 한복판에 있는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 화창한 봄날을 맞아 입구부터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올봄 기획상품으로 나온 폴로 티셔츠와 면바지를 색상별로 2~3개씩 장바구니에 담는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브라탑(브래지어 패드가 붙은 여성용 웃옷)을 고르고 있는 주부, 여름철용 재킷을 입어보는 중년 신사까지 고객층도 다양하다. 중국 단체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경기침체로 썰렁해진 긴자에서 요즘 손님이 북적대는 곳은 유니클로 매장뿐이다. 프랑스의 루이비통은 작년 말 긴자점 신설 계획을 철회했다. 40년 역사의 일본 최대 보석점 미키 긴자점은 올 초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올 가을 긴자점을 1.5배로 확장할 예정이다.

불황을 모르는 유니클로의 성적표는 화려하다. ‘지난 5년간 매출 90% 증가, 점포 수 3배 확장, 평균 영업이익률 15%’. 오는 9월 2009회계연도 결산에서도 매출 6600억 엔(약 9조원) 영업이익 1010억 엔을 달성할 전망이다. 사상 최대 매출, 최대 이익이다. 최대 실적 기록 경신은 2006년부터 4년째다.

유니클로의 초고속 성장에 사람들은 말한다. ‘불황으로 싼 제품이 먹힌 것이다’라고. 일단 유니클로의 제품이 저렴하다는 말은 맞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긴자점에 남편과 쇼핑 나온 주부 야수자와 유키 씨(42)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 여성용 면바지 2개(개당 2990엔), 브라탑 3개(개당 1500엔)와 남성용 폴로 티 2개(개당 1990엔). 장바구니 가득 샀지만 총 가격은 1만4460엔, 한국 돈으로 약 19만5000원밖에 안 된다. 길 건너 미국 캐주얼 브랜드 ‘콜롬비아’의 폴로 티가 4500엔, 면바지가 4900엔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싼지 알 수 있다.
“1승9패의 각오로 덤비면 어떤 일이든 성공”
그러나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 겸 사장(60)은 “싼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유니클로보다 더 싸도 안 팔리는 브랜드들이 많다. 우린 고객의 잠재된 니즈(Needs)를 찾아내 그걸 충족시키는 가치(Value)를 제공해 성공한 것이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의 대표적 히트상품들이 이런 ‘가치 창출’에 의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보온성 신소재로 만든 내복 히트텍, 브래지어와 탑을 합친 브라탑은 기존 의류에 없던 가치를 창출한 옷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능과 패션을 겸비한 옷을 만들어 적정 가격에 판 게 주효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유니클로는 상품기획과 디자인은 도쿄와 뉴욕, 생산은 90% 이상을 중국에서 하는 글로벌 분업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유니클로야말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 시장을 개척한 가치혁신(Value Innovation)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유니클로는 단순한 외형 성장에 만족하지 않는다. 유니클로의 목표는 ‘옷을 바꾸고, 의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꿔 나간다’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등이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꿨듯이, 옷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이다. 그 꿈을 유니클로의 맨 앞에서 좇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야나이 회장이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 시내 구단시타의 야스쿠니 신사 건너편에 있는 유니클로 도쿄 본부를 찾았다. 6층 회의실에서 만난 야나이 회장의 첫인상은 선입견과 달리 ‘소년’ 같았다. 160㎝가 약간 넘는 작은 키에 스포츠형 짧은 머리, 위아래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천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과 향후 목표를 명쾌히 설명했다.

아버지로부터 양복점을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회사로 키울 자신이 있었나.

“처음엔 점포 30개 정도에 연매출 20억 엔 정도로 키우면 할 만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욕구는 컸다. 그걸 위해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양복가게를 물려받은 야나이는 캐주얼 의류에 관심을 돌려 1984년 6월 히로시마 시내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라는 이름의 캐주얼웨어 매장을 오픈했다. 미국에서 본 ‘창고형 매장’에 착안해 ‘저렴한 캐주얼웨어를 주간지처럼 부담 없이 셀프서비스로 파는 가게’로 콘셉트를 잡았다. 당시로선 신선했던 아이디어에 개장 첫날부터 수천 명의 손님이 몰려 줄을 섰다. 이것이 ‘유니클로 1호점’이다.>
“1승9패의 각오로 덤비면 어떤 일이든 성공”
지금 같은 불황에도 고속성장을 지속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어느 책에선가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이 ‘세계 전체가 시장’이라고 한 말을 읽은 적이 있다. 크게 공감했다. 그 말대로 글로벌화를 추진했던 게 지금 같은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이건희 전 회장의 말처럼 전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다. 의류는 전통적으로 내수산업이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가 내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모든 고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옷을 만들려고 노력한 게 성공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유니클로 제품은 싸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가격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싸더라도 기능이 좋지 않고, 패션이 떨어지면 옷은 팔리지 않는다. 유니클로보다 더 싸게 판 기업도 많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유니클로 제품이 싸기만 해서 팔렸다고 보면 오산이다.”

유니클로의 브라탑이나 히트텍(보온성 신소재로 만든 내복)처럼 고객의 숨은 니즈(Needs)를 찾아낸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그런 히트상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다만 절실하게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못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몇 년간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2020년 매출 5조 엔, 영업이익 1조 엔’을 중장기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매년 20% 이상씩 성장해야 한다. 너무 높은 목표 아닌가.

“모두들 그렇게 얘기한다. 그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의미가 없다. 시골 양복점 하나로 시작할 때 이 정도 회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그만큼 성장할 수 없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게 성장의 원동력이다.”

사내 대학을 만들어 200명의 간부 후보를 키울 계획이라고 들었다. 동기는 무엇인가.

“내가 늙었기 때문이다. (웃음) 난 사장을 65세가 되기 전에 그만두고 싶다. 경영자는 체력이 중요한데, 65세가 넘으면 무리다. 그에 대비해 유니클로를 더 큰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 인재 200명 정도를 키우려는 것이다.”

일본 기업엔 70대 사장도 많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 체력이 약해지고, 판단력도 떨어진다. 경영은 미래를 향해 회사를 키우는 것이다. 그건 나이든 사람보다 젊은이가 더 잘 할 수 있다.”

일본 최고의 부호인데, 은퇴하면 무얼 할 생각인가.
“회장직만 맡아 오전 10시쯤 출근했다가 오후 3시쯤 퇴근하고, 매주 수요일엔 골프를 치는 게 내 꿈이다.(웃음)”

tip = 미국의 포브스지가 지난 2월 발표한 ‘일본 40대 부자’에 따르면 그는 재산이 1년 전보다 14억 달러 불어난 61억 달러(약 8조2400억 원)를 기록해 갑부 순위 6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전년 1위였던 게임기업체 닌텐도의 창업자 야먀우치 히로시 상담역(45억 달러)은 3위로 밀렸다.

사장 후계자는 고려 중인가.

“사장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후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자녀들에게 기업을 물려줄 생각은 없나.

“두 아들이 있지만 물려줄 생각이 없다. 아이들에겐 회사 지분을 각각 10% 정도씩 줬다. 자식들은 대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역할만 시키고 싶다. 사장은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으로 뽑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오너가 아닌 사원도 노력하면 나중에 사장까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좋은 인재가 모이지 않겠나.”

아버지가 양복점 말고, 건설업도 했던 것으로 안다. 건설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었나.

“건설업은 싫었다. 담합이 많은 건설업은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사업이다. 그런 세계는 싫다. 세상 모든 사람이 고객인 사업이 더 좋았다. 더구나 지방의 작은 건설회사들은 대기업 하청이 많다. 남이 시킨 일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1승9패의 각오로 덤비면 어떤 일이든 성공”
도쿄=차병석 한국경제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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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6-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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