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49호 (2009년 06월)

루이 마조렐

기사입력 2009.06.15 오후 01:42

최근 ‘여름의 조각들(Summer Hours, L’Heure D’ete)’이라는 프랑스 영화 한 편이 상영됐다. 여름의 조각들은 오르세 박물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2007년 개봉됐던 ‘빨간풍선’이라는 영화도 오르세 박물관을 비추고 있다.

이 두 영화는 그러나 우리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컬렉션 문화와 전통이 척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정서가 담겨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생소한 점도 또 다른 요인이다. 이 영화에는 고흐 등 유명 화가 대신 가구 디자이너나 유리병 디자이너의 이름이 등장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르세 박물관은 파리 여행자들의 기본 코스로 유명한 곳으로 인상파의 그림들을 골고루 소장하고 있다.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외관도 무척 아름답다. 이 오르세 박물관에서 얼마 전 리스팔 기념전시회가 열렸다. 앤티크 딜러였던 ‘앙투안 리스팔(Antoine Rispal)’이 유산으로 기증한 3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것. 앙투완 리스팔은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르 누보(Art Nouveau) 가구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는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다가 앤티크 딜러가 된 사람이다. 남다른 안목으로 작품을 모은 그의 소장품 중에는 에밀 갈레(Emile Galle 1846~1904), 루이 마조렐(Louis Majorelle 1859~1926) 등 아르누보 양식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오르세 박물관은 박물관 예산으로는 더 이상 인상파 그림들을 수집하기 어려웠을 때 리스팔의 기증으로 풍요한 컬렉션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가구 디자이너 루이 마조렐

여름의 조각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가의 예술품들 중에는 장식적인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알려진 가구 디자이너 루이 마조렐의 작품이 있다. 루이 마조렐의 아버지 오귀스트 마조렐은 1851년 뚜루에서 낭시(Nancy)로 옮겨온 가구와 파이앙스 도기 공장을 운영하는 장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낭시로 오게 된 것은 시대적인 여러 요인과 어울려 마치 운명처럼 아르 누보로의 길이 됐다. 그림을 배우고자 했던 루이 마조렐은 파리로 유학을 떠나 에꼴 드 보자르에 입학했고, 2년간 바르비종파의 선봉장이던 장 프랑수아 밀레에게 수학한다. 그러나 187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낭시로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는다. 파이앙스와 가구를 제조하는 공장을 승계한 루이 마조렐은 본격적으로 가구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낭시는 아르 누보의 양대 산맥인 파리학파와 함께 낭시학파를 형성하며 일약 예술의 도시로 떠올랐다. 갈레와 돔, 마조렐 등의 창조적인 도전자들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아르 누보가 매우 활발하게 발흥했지만, 낭시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가구와 유리 예술로 당대를 풍미한 갈레의 역할이 중요했다. 마조렐은 그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프랑스 인들은 마조렐을 재발견하고 있다. 오르세 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거니와 최근 들어 마조렐의 가구는 갈레나 헥타 기마르의 명성을 추월할 만큼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통과 아르누보 양식의 접목

마조렐은 예술사에 큰 공헌을 한 낭시학파의 지도자가 됐다. 수공예의 특성을 고수하면서 사람과 기계의 합동작인 목제품·상감세공품·청동제품·가구·조각 등을 현대적인 작업장에서 만들어냈다. 생산량 증대와 저렴한 가격이라는 조화로운 경영으로 비즈니스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00년에서 1914년 사이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각 공간에 맞춰진 가구들과 예술양식이 장식된 가구들로 호평을 들었다. 예를 들면 낭시 예술학교의 특징인 식물무늬 양식을 이용한 주문제작 가구와 부드러운 선과 윤기 나는 마호가니를 조화시키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로코코시대의 가구 정신을 절묘하게 재해석해 아르누보에 접목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디자이너들도 전통을 접목시키기는 했지만, 마조렐은 특히 목재 가구에 화려한 장식을 사용함으로써 루이 15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연출했다.

프랑스의 가구 장인은 전통적으로 길드 조직에 의해 확실하게 분업화했기에 목재를 다루는 이를 에베니스트(Ebenistes)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르 누보 시대에는 예전과 같은 분업화된 형태가 거의 사라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마조렐의 경우 메탈을 매우 잘 다뤘으며, 램프나 꽃병을 다른 디자인 분야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마조렐은 1차 대전 중 독일군이 로렌 지방을 침략하자 파리로 피신한 후 1918년 낭시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물결인 아르 데코(Art Deco)양식을 따를 때에도 꾸준히 아르 누보 양식을 응용하고 변화시킨 가구를 제작함으로서 아르 누보 양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예술가였음을 보여준 인물이기도하다.

그의 사후 작업장은 제자 알프레드 레비가 운영했으며, 그의 아들 쟈크 마조렐은 화가로서 모로코에서 정원을 꾸미고 가꾸면서 일생을 살았다. 쟈크 마조렐이 디자인하고 가꾼 정원 ‘마조렐 가든’은 후에 이브생 로랑이 구입해 더욱 유명해졌다. 마치 여름의 조각처럼 프랑스적인 요소로 충만하게 살아온 마조렐 가족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게 될 많은 유산을 남기고 갔다.

루이 마조렐
1 한 쌍의 이 암체어는 아르누보를 상징하는 곡선과 마졸레 특유의 마르케트리의 조화로움이 의자 전체가 유기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끼게한다. 호두나무, 로즈우드와 오크로 꽃무늬를 그려넣었다.

루이 마조렐
2 루이 마조렐 만년의 모습. 3 갈레의 영향을 받은 듯 상당히 비슷한 양태를 보여주는 의자.

루이 마조렐
4 마조렐 정원의 풍광.

루이 마조렐
5 마조렐 스타일의 테이블로 곡면 처리와 금색 오물로 된 장식이 조화를 이룬다.

루이 마조렐
6 철과 유리로 만든 꽃병.

루이 마조렐
7 밝은 목재를 곡선으로 구성해 만든 탁자.

루이 마조렐
8 빌라 마조렐의 입구로 철 구조물과 함께 유기적인 아르누보가 느껴진다. 9 연한 색조의 베르제르 디자인으로 안락한 요소를 중시한 의자.

루이 마조렐
10 앙피르 양식과 비슷한 황금색 표장으로 장식된 사이드 테이블.

루이 마조렐
11 빌라 마조렐의 외형으로 아르누보 건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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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6-1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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