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형 랩으로 증권가 돌풍

올해 증권 업계의 히트상품은 단연 ‘자문형 랩’이다. 상반기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서 맴도는 동안에도 자문형 랩은 가뿐히 두 자릿수 수익률을 올리자 갈 곳 없는 자금들이 자문형 랩으로 몰려들었다.

자문형 랩의 이런 인기는 직접 이 상품을 고안해내고 운용하는 투자자문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투자자들을 열광시킨 자문형 랩을 만들어낸 투자자문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양한 요구에 의해 탄생한 1·2·3세대 투자자문사

자문사의 탄생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가 코리아펀드와 투자자문 계약을 체결한 것이 투자자문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해도 투자자문을 해주는 곳은 증권사 경제연구소나 사설 투자 전문업자가 전부였다.

그러다 1986년 증시가 활황기에 접어들면서 전문적인 투자 조언과 일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투자자문 회사의 설립 및 규제 조항이 신설되자 현재의 자문사가 제도화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말 설립된 한셋투자자문과 대우투자자문 등이 공식적인 1세대 자문사에 속한다.

1990년대 말에는 본격적으로 자산운용사 출신 스타 펀드매니저들의 자문사 창업이 러시를 이룬다. 현재 업계 1위인 코스모투자자문이 현대투신운용(현 푸르덴셜자산운용) 펀드매니저 출신인 최권욱 전 대표에 의해 1999년 설립됐고, 한가람투자자문은 대우투자자문 펀드매니저 출신인 박경민 대표에 의해 2000년 문을 열었다.

이들 2세대 자문사들은 개인투자자보다는 연금이나 기관의 자금을 운용하며 자산규모를 빠르게 불렸다. 이때부터 자문사는 조직 생활에 지친 펀드매니저들에게 자신의 투자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한 자문사의 임원은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투자원칙과 기법을 배워도 국내 운용사에서는 대표에 의해 운용이 좌우되는 것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다”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운용을 해보고 싶어 창업하는 자문사에서 합류 제의가 들어오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 또 한 번의 자문사 설립 붐이 일어난다. 최근 나란히 ‘1조 원 클럽’에 가입한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이 각각 2003년과 2005년 설립된 것이다. 인피니티투자자문, 가치투자자문, 오크우드투자자문 등도 같은 시기에 문을 연 투자자문사다. 2세대 자문사와 달리 주로 개인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이들은 최근 자문형 랩 돌풍에 힘입어 빠르게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가 자문사 역사에 있어 또다시 한 획을 긋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문형 랩의 인기에 힘입어 자문사 창업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자문사 등록 요건이 완화되면서 자문사 창업을 꿈꾸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이 더욱 늘었다.

2008년까지는 투자자문사의 최소 자본금이 자문업은 5억 원, 일임업은 30억 원이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자문업 5억 원, 일임업 15억 원으로 완화됐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미래에셋디스커버리’를 운용했던 서재형 리서치본부장(전무)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문사 창업을 준비하는 등 운용 업계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이 자문사 창업의 꿈을 품고 있다.

한 대형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과거에는 자문사가 구멍가게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자문사의 인지도가 높아진 데다, 5000억 원으로 운용 규모가 같더라도 운용사보다 자문사의 보수가 많게는 10배 가까이 차이 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자문사 선호도가 높아졌다”며 “실제 최근 자문사를 차리려고 하거나 기존 자문사로 이직을 결심한 펀드매니저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Hot Trend in Stock Market] 스타 펀드매니저들 잇따라 창업, 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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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7년 89개, 2008년 92개, 2009년 말 108개로 완만하게 증가하던 전업 자문사 수는 올 들어 7월 말 현재 128개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산운용 규모는 2008년 말 11조9000억 원에서 지난 3월 말 14조8000억 원으로 15개월 만에 3조 원 가까이 늘었다.

자문사가 이처럼 급성장한 것은 자문사 펀드매니저들이 그동안 치열한 수익률 경쟁을 통해 뛰어난 운용성과를 다져왔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다수 자문사들은 코스피지수 대비 일정한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운용사와 달리 코스피지수와 상관없이 목표수익률을 달성하는 ‘절대수익’을 추구하면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박스권 장세에서 지지부진한 펀드 수익률에 지친 투자자들이 자문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증권사 강남PB센터 지점장은 “코스피지수는 연초 대비 1700선에서 제자리걸음인데 자문형 랩에선 올 들어 20~23% 수익이 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PB들은 투자자들에게 자문형 랩을 추천할 수밖에 없고, 펀드는 물론 직접투자를 하던 투자자들도 대부분 자문형 랩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자문사 중에서도 지난달 자문형 랩의 인기에 힘입어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케이원과 브레인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투신운용 출신 펀드매니저인 권남학 대표가 설립한 케이원의 대표 펀드는 2008년 10월 설정 이후 6월 말 현재 수익률이 무려 153.8%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36.8%)을 117%포인트 앞지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인디펜던스’ 등을 운용했던 박건영 대표가 설립한 브레인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자랑한다. 브레인의 대표 펀드는 2009년 4월 설정 이후 7월 말 현재 75.28%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33.81%)의 두 배 이상이다.

이기헌 하이투자증권 고객자산관리본부 상무는 “운용사들이 50~60개 종목에 분산투자를 해 코스피지수를 몇 퍼센트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반면 자문사들은 10개 이내의 종목에 집중 투자해서 코스피지수를 이기는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운용을 하고 있다”며 “자문사야말로 투자자들의 욕구에 가장 충실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