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까지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더불어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나 화려한 언변에 이어 그의 패션까지도 눈길을 끌게 됐다.

건강악화설로 복귀가 불투명했던 잡스는 지난 3월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단상에 올라 아이패드2를 직접 소개함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한 바 있다.

1998년 이후 10여 년 동안 한결같은 스타일을 보여준 그의 패션은 고집스러운 성격을 짐작케 하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지극히 심플하고, 지극히 평범한 잡스의 패션은 프로페셔널한 가치에 더해져 명실상부한 ‘정체성(Identity)’을 가진 ‘스티브 잡스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Fashion of Celeb] Steve Jobs, 심플한 블랙 티셔츠…애플의 철학을 닮다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잡스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약삭빠른 선택을 하기보다는 가치를 두고 우직하게 걸어온 인물이다. 애플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복귀하기까지, 그도 한때는 ‘배고픈 바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애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시작도 그쯤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심플하고 변함없는 패션 스타일과 아주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스마트보다는 바보의 뚝심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레알(real; 네이버에서 조사한 2010년도 최고의 신조어, ‘진실, 진심 능력’을 의미)’을 갖춘 그의 진정 심플하고 한결같은 패션이야말로 그는 물론 애플의 정체성 및 지속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스타일’로 우뚝 서다

‘르노’의 동그란 무테안경과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 티셔츠, ‘리바이스’의 청바지, ‘뉴발란스’의 운동화 등은 잡스가 10년 넘게 고수해온 아이템들이다. 오랜 시간 한 가지 스타일을 충성스럽게 지켜가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따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 티셔츠를 수백 벌 보유하고 있었으나,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아 생산이 중단된 같은 제품을 수백 벌 더 주문해서 구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지금 갖고 있는 티셔츠의 색과 촉감,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의 느낌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동일한 제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이러한 그의 열정과 고집은 애플의 제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애플의 제품은 라인업이 심플한 것이 특징이자 경쟁력이기도 하다. 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모든 제품은 디자인에 있어서도 심플함이 돋보이는 일체형으로 확실한 코드를 추구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사진 한국경제신문
스티브 잡스 & 애플

잡스는 특히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보다는 제품으로 시선을 유도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패션에 대해 “그저 편하고 좋아서,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라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여 왔으나 그가 진정 추구하고, 의도한 것이 편하고 심플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 스마트 시대를 리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휴머니즘과 무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열정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로 대중의 기대를 앞서가고 있다.

이는 곧 잡스의 정신이며, 애플의 정신인 동시에 가장 큰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잡스의 스타일은 트렌드하지도 다채롭지도 않다. 과도하다 싶을 만큼 평범하지만 그의 내공과 어우러져 이뤄낸 정체성의 가치와 영향력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잡스의 패션 스타일에서 우리는 그와 애플의 스토리를 함께 읽게 되는 것이다.

글 위미경 동덕여대·경북대·세명대 패션디자인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