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강북을 오가던 맛집 기행의 일상적인 패턴에 커다란 쉼표 하나를 찍었다. 남양주 금남리 살아 있는 수채화 같은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한우구이 집으로 발걸음이 향한 것은 아마도 불쾌지수 높은 도시 생활에 지쳤기 때문이리라.
한우의 최상 등급인 1++ 등심. 한우구이의 가격은 정말 한우가 맞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을 만큼 경쟁력을 자랑한다.
한우의 최상 등급인 1++ 등심. 한우구이의 가격은 정말 한우가 맞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을 만큼 경쟁력을 자랑한다.
경기도 남양주 금남리에 자리한 한우구이 집인 ‘한우구이’는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마냥 손님을 맞이했다. 강남에서 40여 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목적지 인근에서 우회전을 하자마자 내리막길 끝에 펼쳐진 짙푸른 녹음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옥은 시각을 일깨운다. 이어 코끝을 자극하는 구수한 고기 냄새는 후각을,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와 조화를 이루는 가야금 산조 소리는 청각적 호사(豪奢)를 선사했다.
[Gourmet Report] 남양주 ‘한우구이’, 시처럼 미려한 자연 속에서 즐기는 한우
명창의 소리가 더해진 녹음 속 고깃집

56년 된 한옥을 개조한 ‘한우구이’는 자연 그대로가 인테리어요, 아웃테리어다. 주차장과 테라스를 합해 990㎡ (300평)에 이르는 공간은 전원주택에 살고 싶었다는 주인장의 꿈만큼이나 넓다.

고기도 고기지만 운이 좋으면 들을 수 있는 주인장이자 국립창극단 단원인 왕기철 명창의 소리 한 구절까지 더하면 하수상한 시절도 저만치 밀쳐놓고 싶어질 것만 같다.

16세에 시작해 35년째 소리 한 길을 걸어온 왕 명창은 2001년 전국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심청가’ 가운데 심봉사가 눈뜨는 대목으로 장원을 차지하며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인물.
한우구이는 유기농 채소와 전라도 시골식 밑반찬만을 고집하여 건강 밥상을 지향한다.
한우구이는 유기농 채소와 전라도 시골식 밑반찬만을 고집하여 건강 밥상을 지향한다.
동편제와 서편제를 넘나드는 그는 형인 고(故) 왕기창, 현재 활동중인 동생인 왕기석 씨와 함께 ‘판소리 삼형제’ 가운데 한 명으로, 영화 <서편제>에서 김명곤 씨가 불렀던 ‘사철가’의 실제 목소리 주인공이기도 하다.

왕 명창은 3년 전 아내와 함께 평생의 꿈이었던 자연 속 전원주택을 보러 다니다 지금의 한우구이 한옥을 발견하게 됐고, 56년 된 한옥을 개조해 ‘우리 고기’ 한우구이 집을 열었다.

아내 유정숙 씨의 음식 솜씨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절묘한 만남이랄 수 있는데, 전라도 시어머니가 전수한 레시피에 충청도 손맛을 가했기 때문.

마블링 ‘꽃’이 가득 핀 한우 육질도 칭찬받는 대목이지만 여름에도 뜨겁게 먹으면 육수의 시원함이 ‘인당수’만큼이나 깊다는 잔치국수는 3000원만 내기엔 미안할 지경이다.
전라도식과 충청도식 레시피의 절묘한 만남인 잔치국수와 냉면
전라도식과 충청도식 레시피의 절묘한 만남인 잔치국수와 냉면
타령처럼 구수하게 넘어가는 등심 한 점

한우구이 메뉴판에서 특기할 점은 ‘가격’이다. 최상급 한우 등급인 1++ 등심 1인분(200g) 가격이 2만6000원. 이 가격에 파는 고기가 정말 한우가 맞느냐는 질문은 필자 이전에도 수천 번 받았을 터. 한우 경매를 하는 지인 덕에 최상급 한우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하는 주인장의 손가락이 방마다 걸린 액자 하나를 가리킨다.

액자 속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에서 인증한 한우 원산지 검정결과 통지문이 들어 있다. 가격을 보고 의심한 손님들이 몇 차례 신고를 해 해당기관의 기습 조사를 받은 해프닝 이후 붙여놓게 됐단다.
56년 된 한옥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우구이는 주말에는 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이 찾는 외식 장소다.
56년 된 한옥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우구이는 주말에는 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이 찾는 외식 장소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으니 한우 고기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일단 마블링 ‘꽃’부터 확인한 뒤 서서히 달군 불판 위에 1++ 등심을 얹고 기다렸다. 여기서 고기 마니아를 위한 팁 하나.

한우는 한 쪽 면이 적당히 익었을 때 뒤집어 육즙이 순간적으로 배어나올 때 잘라 먹어야 최상의 맛을 볼 수 있다. 풍부한 육즙을 확인한 후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전라도에서 공수해 온 천일염을 살짝 찍어 씹어봤다. 부드러운 육질과 육즙이 어우러진 맛이 ‘얼씨구’ 타령 가락만큼이나 구수하게 잘 넘어간다.

전라도 시골식 밑반찬과 싱싱한 유기농 채소로 꾸려진 한 상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와중에도 필자는 안주인의 손맛이 ‘끝내준다’는 잔치국수를 위해 위 한쪽을 비워뒀다. 멸치, 새우, 대파, 양파, 마늘, 파뿌리, 다시마를 넣고 1시간 30분을 끓여야 완성된다는 국물 맛은 듣던 대로 심해처럼 깊다.

잔치국수는 한여름 비오는 날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메뉴. 가족과 함께 원 없이 한우를 즐기기엔 조금 부담스럽다면 고기는 적당히 먹고 한우국밥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양지와 목살 등 국밥 속 고깃덩어리가 어찌나 큰지 또다시 이렇게 팔고도 남느냐는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747-1

문의 031-592-7772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연중무휴)
가격 한우 1++ 등심 1인분(200g) 2만6000원, 한우 특수부위 1인분(200g)
2만6000원, 한우 모둠 1인분(300g) 2만 원, 한우 차돌박이 1인분(200g)
2만1000원, 한우 육회(400g) 4만 원, 한우국밥 7000원, 잔치국수 3000원
기타 4개 룸 예약 가능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