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위스키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의 대명사다. 초창기의 스카치위스키도 알코올 도수 높은 단순한 증류액에 불과했다. 이러한 스카치위스키가 오늘날 어떻게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사랑 받을 만큼 최고의 품질과 맛을 갖게 됐을까.
[LIQUEUR STORY] 스카치위스키는 왜, 어떻게 전 세계로 전파됐을까
밀주의 탄생

15세기 이후 스카치위스키는 점차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삶의 일부가 됐다. 여분의 곡물을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고, 만든 위스키로 집세를 지불하거나 음식과 바꾸기도 했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하고, 특히 스코틀랜드의 길고 추운 겨울날에는 고단했던 삶의 안식이 돼 주었다.
하일랜드 밀수꾼 모습을 담은 에드윈 랜시어의 작품.
하일랜드 밀수꾼 모습을 담은 에드윈 랜시어의 작품.
이렇게 위스키가 생활의 일부가 돼가면서 생산이 일반화되자, 1644년 스코틀랜드 정부는 최초로 위스키에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그때 당시 세금은 1파인트에 ‘2s8d(13펜스)’로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11.44파운드(약 2만 원)의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으나 정작 세금을 제대로 지불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정적으로 강력하게 세금을 부과한 계기는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합병하면서 대영제국(Great Britain)이 탄생하면서부터였다.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이후 영국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고, 세금 징수관(gauger)을 고용해 위스키 제조자들이 세금을 정확히 지불하도록 감시했다.

차츰 위스키 제조자들은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북부지방(Highland)의 깊은 산 속에 숨어들어가 몰래 위스키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밀조한 위스키를 몰래 마을로 내려가 팔았다. 이들을 ‘밀수꾼(smuggler)’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들은 달빛 아래 숨어 위스키를 밀조했다고 해 ‘달빛치기(moon shiner)’라는 별명도 얻었다.
오크통 제작 과거.
오크통 제작 과거.
오크통 제작 현재.
오크통 제작 현재.
오크통은 밀주를 숨기기 위한 창고

몰래 숨어서 만들어진 술이 많이 누적되자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당시 많이 마시던 셰리 와인(sherry wine)을 보관하던 오크통(cask)에 밀조한 술을 담아 동굴 깊은 곳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술을 팔기 위해 술통을 열어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투명했던 위스키가 고운 호박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짙은 향취까지 더해져 아주 부드러운 맛의 술이 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숙성법으로 그 이후 지금까지 오크통에서의 숙성은 위스키를 제조하는 데 있어서 빠져선 안 되는 과정이 됐다. 현재 스카치위스키협회(SWA) 규정으로 스카치위스키는 반드시 오크통에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는 법규가 정해져 있다.

150년 가까이 징수관과 밀수꾼들의 심리전은 계속됐다. 밀수꾼들은 더욱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위스키를 만들게 되고, 징수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심지어 교회 설교단 밑에 공간을 만들어 숨기기도 하며, 필요 시 관을 이용해 위스키를 옮기기도 했다. 또한 밀수꾼들끼리 비밀리에 징수관이 도착하면 알리는 자신들만의 신호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악순환 끝에 영국 정부는 1823년 주세법 개정으로 합법적 증류소가 늘어나게 되면서 밀수꾼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런 사연으로 오래전부터 밀수꾼들에 의해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 위스키를 제조하면서 계곡 옆에 증류소를 설립하게 됐다. 오늘날 스카치위스키 이름에 ‘글렌(gl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데, 이것은 현지 전통어인 게일어로 계곡,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스카치위스키 이름을 보면 글렌피딕(Glenfiddich)은 사슴이 있는 계곡, 글렌리벳(Glenlivet)은 리벳강의 계곡, 그리고 글렌모렌지(Glenmorange)는 고요의 계곡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몰트위스키(malt whisky: 보리를 싹 틔운 맥아를 사용해 만든 위스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1831년 아네스 코피(Aeneas Coffey)에 의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연속식 증류기가 발명됐다. 연속식 증류기의 발명을 계기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가벼운 맛의 그레인위스키(grain whisky: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만든 위스키)를 생산하게 됐다. 기존의 강한 맛의 몰트위스키와 가벼운 맛의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좀 더 부드럽고 쉽게 마실 수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를 대량으로 만들면서 위스키 시장은 점차 넓어졌다. 이렇게 블렌디드 위스키가 만들어지면서 지금도 전체 스카치위스키 판매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연속식 증류기.
연속식 증류기.
프랑스 와인의 역할

스코틀랜드의 민속주였던 스카치위스키를 가장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바로 프랑스 와인 덕분이었다.

1880년,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 일종의 진딧물로 1mm 크기로 아주 작으며 주로 포도뿌리를 손상시켜 병들게 함)라는 벌레가 프랑스 포도밭을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이 발전하고 유럽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포도나무를 미국으로 가져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고, 다시 역으로 미국에서 자란 포도나무를 뽑아서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가져가서 심게 됐다.
스카치위스키 라벨.
스카치위스키 라벨.
이때 필록세라가 미국에서 포도나무와 같이 프랑스로 이동하게 되면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포도밭을 20여 년 동안 황폐화시키면서 술의 역사를 뒤바꾸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렇게 19세기 후반 필록세라 때문에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바닥을 밑돌면서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 역시 품귀현상을 나타냈고, 프랑스인들조차 코냑을 대신해 스카치위스키를 브랜디 대용으로 찾게 되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오늘날도 스카치위스키 한 달 판매량은 프랑스 코냑 1년 판매량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금주령, 세계대전, 경제공황 등 세계적인 크고 작은 사건에서 살아남으면서 오늘날 영국풍의 기품 있고 매혹적인 세계적인 술로 자리 잡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카치위스키는 1초에 40병씩 전 세계로 판매되고 있으며, 영국은 스카치위스키 수출만으로 1초에 134파운드(약 24만 원)를 벌고, 연간 1억4000만 상자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강윤수 글렌피딕 브랜드 엠버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