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퍼링으로 선진국의 장점인 금융시장 안정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신흥국 자금 이탈에 따른 영향이 집중돼 달러 이외 이중통화 환율은 크게 불리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개혁)’ 논의가 재연되는 것에 잘 대응해야 한다.
[MARKET INSIGHT] 불거진 화폐개혁 움직임…한국 경제 ‘퀀텀 점프’될까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8% 내외로 추정되고, 경상수지 흑자는 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대로 안정되고 실업률은 3%대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았다.

정책당국(한국은행 포함)이 내놓은 올해 우리 경제 모습은 더 나아진다. 가히 ‘이상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하다. 성장률은 4%에 근접하고 실업률은 3% 내외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대로 오르고 경상수지 흑자는 500억 달러 내외로 줄어들어 각각 ‘D(디스인플레이션)’ 공포, 과다 논쟁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다.
[MARKET INSIGHT] 불거진 화폐개혁 움직임…한국 경제 ‘퀀텀 점프’될까
하지만 대다수 기업과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체감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세계 시장과 달리 우리만 안 좋은 ‘디커플링 현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흔히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꽃은 활짝 피어야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경제학에서 외부 경제를 설명할 때 꽃밭을 자주 예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꽃밭을 만들 때 드는 사적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지난해 세계 증시는 평균 15% 이상 올랐으나 코스피 지수는 2012년 말 수준보다 더 떨어졌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 증권인, 그리고 증시 관련 이해관계자가 죽어가는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과 함께 이제는 투자자마저 증시를 떠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고 있다.

올해 들어 부동산을 중심으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의미다. 성장률은 대표 지수 함정에 걸려 있다. 부가가치 체계상 우리 경제는 전형적인 ‘역피라미드형’이다. 상위 3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호조에 힘입어 성장률은 올라가지만 대다수 기업과 국민은 그 밑에 있다.

물가도 그렇다. 최근 1년 국내 성장률은 올라가는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 일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 민간에서 우려하는 총수요 부족이 아니라 원자재값 하락 등과 같은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준금리 변경과 관련해 이 논쟁은 아주 중요하다. 그 요인이 총수요 부족에 있다면 부동산 경기 등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 반대로 공급 측에 있다면 금리는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지금처럼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원자재값만 오르면 곧바로 물가가 올라갈 소지가 높기 때문에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업률에 대해 국민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보다 엄격한 의미의 국제노동기구(ILO) 개념을 적용해 국내 실업률을 재산출하면 현 수준의 4배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도 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네오러다이트(Neo-Luddite·첨단기술 수용을 거부하는 반기계 운동)’를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경상수지 흑자도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6%(GDP 대비)에 달해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제안했던 ‘4% 룰’에 스스로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는 경쟁국의 원화 절상 요구에 맞설 근거가 약해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는 적정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한 때가 됐다는 의미다.


소니 투기등급 강등, 애플 주가 경고가 시사하는 점
닭은 새벽에 울어야 한다. 한밤중에 울어 ‘가짜 새벽(false dawn)’을 알리면 잠을 설쳐 더 오래 자야 하거나 일어나더라도 몸이 개운치 않다.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냄비 속 개구리의 교훈(boiled frog syndrome)’을 계속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조짐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을 추진한 이후 모두가 신흥국 금융 불안에 관심이 몰려 있을 때 세계 산업계와 투자자들이 더 주목하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미국의 무디스사가 소니를 투기등급으로 강등시킨 것과 다른 하나는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다.

소니는 오랫동안 일본의 상징이자 지금은 아베노믹스가 추구하고 있는 전통 수출 기업 부활이라는 목표의 핵심이다. 1990년대 말까지 소니의 워커맨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다. 인기 면에서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의 스마트폰에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이번 투기등급 강등 조치를 세계 산업계에서는 ‘소니의 몰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르지만 지난해 9월 핀란드의 상징이었던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로 넘어갔던 일도 그 배경에 대해 아직까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가 ‘노키아를 배우자’라는 열풍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계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한때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글로벌 기업들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은 투자 관점에서는 ‘S자형 커브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S자형 커브’는 사람의 성장 곡선에서 유래됐다. 모든 신기술과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서서히 틈새시장을 파고든다. 일단 소비자 속에 10% 정도가 파급되면 급속히 퍼져나가다가 90%에 도달하면 정체 후 쇠퇴한다.

이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어떤 신기술과 제품의 보급률이 10%에 달하면 그 이후에는 구글의 조지 레이에스가 언급해 유명해진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매출이 100억 원이던 기업이 다음 해 150억 원이 되면 매출 증가율은 50%다. 그다음 해에 50% 성장하려면 75억 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가능하다는 것이 이 법칙의 핵심이다.

S자형 이론에 따른다면 어떤 기술과 제품이든 초기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단 보급률이 10%에 달하면 확신을 갖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해 놓을 경우 높은 수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펀드매니저들도 이 이론을 근거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짜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S자형 커브’의 한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누릴 수 있는 ‘블루오션’ 국면이 곧바로 ‘레드오션’으로 바뀐다. 특히 정보기술(IT) 업종일수록 그렇다. 이럴 때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사이클을 갈아타 블루오션 국면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라이프사이클을 갈아타려면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기대수준을 뛰어넘는 신기술이나 제품이 개발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곧바로 비용을 인식해 가격이 싼 후발업체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앞으로 떠오를 ‘알파라이징 업종’으로 이전된다.

‘알파라이징(α-rising)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점에서 ‘알파(α)’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여진 용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경제 질서와 중심국 등에서 실로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주력 산업에서 변화가 가장 빨라 글로벌 선도 기업일수록 알파라이징 업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소니의 몰락 이상으로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발표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부합했다 하더라도 라이프사이클을 바꿔 탈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나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벌써부터 ‘제2의 노키아’로 애플을 지목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소비자의 기대수준을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이나 신제품이 계속해서 뒷받침해준다면 최근 사태가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의 문제다. 수출이나 부가가치 면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MARKET INSIGHT] 불거진 화폐개혁 움직임…한국 경제 ‘퀀텀 점프’될까
월가를 중심으로 후자를 우려하는 시각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소니의 몰락’과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책당국자와 투자자들은 이 점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테이퍼링 이후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
대외적으로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는 테이퍼링을 첫 단추로 시작된 Fed의 출구전략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양적완화(QE)로 풀린 돈이 약 3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증시를 비롯한 각 분야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미국의 시장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월 말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출구전략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이후 미국의 시장금리는 일제히 올랐다. 기준금리를 올리기 이전이라도 출구전략만 시작되면 대표 금리인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명목성장률 수준(현재 4% 내외)만큼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이 각국 간 금리 차에 의한 캐리자금의 성격이 짙은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강세가 예상된다. 출구전략이 처음 언급된 이후 신흥국 환율은 급등했다. 출구전략 추진만으로는 원·달러 환율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하락 요인도 만만치 않아 그 폭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달러화를 제외한 이종통화 환율은 사정이 다르다. Fed가 테이퍼링을 추진할 때에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오히려 추가 양적완화 계획을 밝혀 엔화, 유로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의외로 크게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과 일본 간 시장금리 차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1분기(혹은 상반기)가 우려된다.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그렇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를 토대로 신흥국의 위기 가능성을 점검하면 ‘고위기 위험국’으로 외환보유고가 적고 경상과 재정 적자가 심한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필리핀, 태국 등이 속한다. 반면에 경상과 재정 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히 쌓아 놓고 있는 한국, 중국, 대만 등은 ‘저위기 위험국’이다.

남은 신흥국들은 ‘중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된다. 외환보유고는 적정수준 이상 쌓아 놓고 있지만 경상과 재정 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중남미, 중동, 선발 동남아 국가들이 해당된다. 재정 환율 성격상 분자인 원·달러 환율보다 분모인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환율이 더 오른다면 원화 가치는 절상된다.

준선진국 위치에 있는 한국은 신흥국과 다른 통로로 영향을 미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테이퍼링으로 선진국의 장점인 금융시장 안정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신흥국 자금 이탈에 따른 영향이 집중돼 달러 이외 이중통화 환율은 크게 불리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는 것에 잘 대응해야 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가치에는 변동을 주지 않으면서 거래 단위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현재 달러당 네 자리대의 원화 환율을 세 자리대나 두 자리대로 변경하는 것이다. 2005년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추진했던 리디노미네이션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특정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거래 편의 제고, 회계 기장 처리 간소화, 물가 기대심리 억제, 대외 위상 제고,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화폐 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 주조 비용 증가, 각종 교환 비용 등 단점도 만만치 않다.

테이퍼링 추진 이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는 것은 국내 경제 위상에 맞지 않는 원화 거래 단위로 충격을 더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화폐 단위로 본다면 1달러에 네 자리대 환율을 유지하고 있어 우리보다 경제발전 단계나 국제 위상이 훨씬 떨어지는 국가에 비해 많다. 한 마디로 달러에 붙는 원화의 ‘0’ 개수가 너무 많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같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준선진국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최근처럼 대전환기에는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좋을 때에는 선진국 대우를 받아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되다가 나쁠 때에는 신흥국으로 전락해 들어왔던 돈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이른바 ‘샌드위치 쏠림현상’이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는 것도 외형상 선진국 지위에 맞게 부패를 척결하고 화폐 거래 단위를 변경해 쏠림현상을 줄이자는 목적에서다. 비슷한 목적으로 2000년 이후 각국은 신권을 발생했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 신권을 새롭게 도안했고, 일본은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했다. 신흥국들도 앞다퉈 신권을 내놓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신권을 발행해 목적을 달성한 국가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단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해당한다.
[MARKET INSIGHT] 불거진 화폐개혁 움직임…한국 경제 ‘퀀텀 점프’될까
하지만 신흥국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들이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거세게 불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그랬고 2009년에 단행했던 북한도 실패했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 있어서 신권을 발행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에는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의 비중이 놓은 부자들과 대기업들의 저항이 크다. 따라서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신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의 목적을 거둘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 전제조건의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들은 위조지폐가 발견되거나 부정부패가 심하고 최근처럼 대규모 자금 이탈이 심한 긴박한 상황에서 그것도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까지 병행해 단행했다.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 논리에 밀려 논의되고 추진됐다는 의미다. 바로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우리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은 경제규모가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 단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업회계에선 조(兆) 원, 금융시장에선 경(京) 원까지 심심찮게 나온다. 원화 거래 단위도 달러화의 1000분의 1로 여겨지는 등 경제 위상과도 맞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처럼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고 테이퍼링 추진에 따른 금융 불안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화폐개혁에 해당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거나 논의하는 그 자체도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히 성숙될 때 논의되고 추진해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