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8th

겨울이 클래식 음악계의 성수기라면, 여름은 바야흐로 축제 시즌이다. 온통 신록이 우거진 눈부신 이 계절은 클래식 음악 축제와 만나 화려함을 더한다.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고, 그 선율에 몸을 내맡긴 사람들은 감동과 흥분으로 들뜬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에서도,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축제의 향연이 펼쳐지니 그야말로 축복받은 계절이다.
[CLASSIC ODYSSEY] 눈부신 여름, 클래식 축제 속으로
축제의 계절이 왔다. 각자에게 여름이란 계절은 서로 다른 의미로 기억되겠지만, 필자에게 여름은 단연코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이 되면 유럽은 클래식 음악으로 물든다. 세계적인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자, 성악가들이 축제의 현장으로 모여들고, 공연장은 물론 거리거리마다 음악 꽃이 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대관령 국제 음악제, 수원화성 국제 음악제 등 수준 높은 음악제가 열려 신록의 계절 여름을 수놓는다. 축제 기간 어디를 가나 음악의 물결이 넘실대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행복 그 자체다. 그것도 소나타에서 교향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를 망라한 음악제라니,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모차르트의 도시’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음악축제들이 열리지만, 그중에서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등은 유럽 3대 음악축제로 손꼽힌다. 그러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클래식을 넘어 공연예술 전반에 걸친 대규모 예술축제 성격을 띠고 있어, 정통 클래식 음악제 성격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의미가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뒤에 논하기로 하고 먼저 가장 전통적 클래식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오스트리아에서 수도 빈에 이어 둘째로 큰 도시이자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잘츠부르크는 굳이 축제가 아니라도 1년 내내 음악회가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음악 거장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잘츠부르크는 특히 모차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나고 자라고 음악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날린 ‘모차르트의 도시’이고, 페스티벌의 유래가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이니 그 태생부터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중심으로 페스티벌이 이뤄지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 있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지만 초기에만 해도 페스티벌은 대부분 모차르트의 레퍼토리로 채워졌으며, 지금도 모차르트 오페라가 여전히 중심에 있는 건 사실이다.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모차르트가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곡들을 남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7~8월에 걸쳐 5주 동안 펼쳐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에 시작돼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작곡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페스티벌을 기획한 그는 이후 지휘자로서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서막을 올렸다면, 지휘자 토스카니니와 브루노 발터는 축제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빛을 바랬다. 파시스트와 무솔리니를 반대했던 토스카니니와 브루노 발터 같은 유대계 음악가들이 페스티벌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축제 자체가 축소되거나 열리지 않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음악제로 다시 일어서게 된 데는 역시 잘츠부르크 태생인 폰 카라얀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지휘자로 축제와 인연을 맺은 그는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고, 메인 극장인 대축제극장을 완성하는 등 페스티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통해 카라얀의 마케팅 능력이 또 한 번 입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눈부신 성과는 아마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대한 카라얀의 남다른 애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198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될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서 생을 시작해 결국 잘츠부르크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 해 여름,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대한 기억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비슷한 시기인 7~8월, 독일 바이에른 주 바이로이트에서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열린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시작은 1876년 바그너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의 오페라를 선보일 공연장을 원했던 바그너는 직접 설계한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극장을 바이로이트에 세웠고, 개관 기념 공연으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초연했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여름 페스티벌이 열리게 됐다. 바그너 사후에는 리스트의 딸이자 그의 부인인 코지마 바그너를 비롯해 아들, 며느리, 손자와 증손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페스티벌을 이끌어 왔다.

코지마 바그너와 아들인 지크프리트 바그너, 며느리인 비니프레트 바그너의 손을 거치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절정의 시대를 맞았다. 특히 비니프레트가 축제 운영을 맡은 이후 바그너 마니아였던 히틀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 비판과 유명세를 동시에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 연합군이 일대를 점령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너 오페라의 명성에 힘입어 다시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부활했다.

축제의 역사 자체도 드라마틱하지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너 오페라만을 전적으로 공연하는 음악제라는 점에서 음악 애호가들이 한번쯤 경험해 봐야 할 축제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바그너 오페라는 대작이 많은 데다 내용 또한 어렵고 신화적인 요소들이 많아 일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기가 쉽지 않다. 바그너 오페라의 가수들도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 이유로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된 장소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전문으로 하는 교향악단과 가수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의미가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네리언’이라고 불리는 바그너 음악 애호가들에게 힘입어 유럽의 대표 음악제로 자리 잡아 왔는데, 사실 필자는 그 독특함 때문에 바그너 오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3대 음악제 중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함께 직접 경험해 본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아트 페스티벌이다. 메트로폴리탄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루돌프 빙이 주축이 돼 기획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그 규모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세계 최대다. 물론 여러 장르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클래식의 새로운 조류 또는 현대음악과 무용 등 새로운 예술을 발굴하는 차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 규모나 화려함 등에 있어서는 앞에서 논한 3대 음악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미국의 탱글우드 페스티벌은 마음 속 최고의 음악제로 기억돼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버크셔 지방에 위치한 소도시인 탱글우드는 지명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숲이 우거진 곳으로, 나무 사이사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클래식 음악의 감미로움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감동을 짐작할 수 없다.

매년 6월에서 8월 사이에 열리는 탱글우드 페스티벌은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창설한 뉴잉글랜드 지방 최대의 음악제다. 쿠세비츠키는 미국 태생의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의 상징적인 선생으로 지금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 중이던 6년 동안 네 번의 여름을 탱글우드에서 보낸 필자는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당시 들었던 음악 하나하나, 숲과 잔디가 주던 기운까지 생생할 정도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보스턴에서 무려 5시간을 가야 하는 시골 중의 시골이고, 그런 까닭에 다른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서머캠프에 온 학생들의 연주만으로도 한 달 이상의 축제는 늘 성황을 이뤘다. 야외에서도 음악회가 열렸지만, 실내 공연장조차 음악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도록 지어진 덕분에 사실 축제 기간 동안 24시간 내내 탱글우드 숲은 음악으로 채워지곤 했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는 필자의 꿈은 한 가지다. 딸아이를 데리고 다시 탱글우드 숲속 축제를 찾아가 마음껏 클래식 선율에 취해 보는 것. 올여름은 그렇게 축제의 기억만으로 이미 행복하다.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