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양정원 기자] S.T.듀퐁은 1872년 파리에서 시몽 티소 듀퐁(Simon Tissot Dupont)에 의해 탄생했다. 당시 25세에 불과했던 그는 여행용 트렁크와 가죽 제품을 제작하는 공방을 설립하고 외교관과 사업가, 법률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특별한 서류가방을 만들었고, 황제 나폴레옹 3세와 유제니 황후를 고객으로 맞으며 상류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그의 두 아들 루시앙(Lucian)과 앙드레(Andre)는 귀금속이 적게 드는 대신 수공예로 아름다움을 살린 석유 연료의 라이터를 제작했다. 군수물자로 인해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고, 구매력이 있는 사람이 적어지자 내놓은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가 됐고, 일부 특권층에 국한됐던 브랜드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S.T.듀퐁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는 서막이었던 것이다.
S.T.듀퐁은 이후에도 완벽한 금은 세공술을 가진 장인들을 속속 영입해 라이터를 예술품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 특히 1960년대 초 처음으로 시도된 라이터 표면의 래커 기술은 고급 여행용품을 제작할 때 사용했던 기술을 중국 전문가들로부터 완벽하게 전수받은 것이다. S.T.듀퐁은 이에 그치지 않고 래커 기술을 독창적인 기법으로 발전시켜 오늘날의 명성을 유지하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듀퐁] 장인정신이 빚어낸 실용 예술품, S.T.Dupont
사실 S.T.듀퐁은 그 자신을 유명하게 한 금속세공술과 차이니스 래커 기술을 사용하기 전인 20세기 초부터 이미 여행 가방 제작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호화로운 여행과 휴양을 즐겼던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S.T.듀퐁의 여행 가방들이 품질 좋은 가죽을 사용하고 섬세한 수공 작업을 거치기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초, S.T.듀퐁은 금속세공 장인, 크리스털 메이커, 도금공, 가죽 장인과 차이니스 래커 장인들과의 공동 작업을 기획하고 파베지(Faverges)에 공장을 오픈했다. 파베지는 프랑스 사보이 지방에 위치한 듀퐁 가문의 고향으로, 파베지 공장은 현재도 S.T.듀퐁만이 지닌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들을 충실히 지켜오고 있다. 특히 금속에 차이니스 래커를 접목시키는 기술을 비롯한 핵심 노하우는 현재까지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다. 이토록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과 계승,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섬세한 장인정신은 가방 브랜드로 시작한 S.T.듀퐁이 지속적으로 진보된 제품들을 출시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필기구와 액세서리, 심지어 기성복 시장으로 진출해 전무후무한 통합 브랜드로서 성장하는 큰 밑거름이 됐다.
[듀퐁] 장인정신이 빚어낸 실용 예술품, S.T.Dupont
2012년 11월, S.T.듀퐁은 프랑스 기업 중 뛰어난 기술력과 전통,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에 제공되는 EPV (Entreprise du Patrimoine Vivant) 마크를 획득했다. 2013년부터는 더욱 뛰어나고 유니크한 제품을 창조하기 위해 오로지 주문을 통해 100% 수작업으로 한정 수량 제작되는 ‘오뜨 크리에이션(haute creation)’을 선보였다. 이는 강렬하고 독창적인 영감과 진귀한 소재, 완벽한 기술력이 결합된 새로운 컬렉션이다. 따라서 고난이도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전문 장인들이 필요했다. S.T.듀퐁 하우스는 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최고의 숙련된 장인들을 모았다. 장인과의 협업은 제품에 특별한 영감을 주었으며, 진귀한 재료와 과거로부터 비밀리에 전해오는 노하우를 통해 독특하며 정교한 오뜨 크리에이션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랜 역사와 끊임없는 진화 속에서 프랑스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완벽하고 독창적인 새로운 아이템과 혁신적인 기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