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second act]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장 “인생 2막이 즐겁네요”
“은퇴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다면, 은퇴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불혹의 나이에 10년 후 은퇴를 미리 준비했다는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장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다소 단순한 이유지만, 나름의 철학으로 인생 2막을 즐기는 그를 만났다.

“미국의 국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노인과 어른이 되는 길에서 어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노인보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돼 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어른 주위엔 사람이 모여 듭니다.”

억지로 웃는 표정은 쉽게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배어 있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챌 정도로 환하게 웃는 백만기(64) 아름다운인생학교장은 그렇게 본인의 미래 모습을 간단히 그렸다.

금융맨으로 시작했지만, 그리 오래하진 않았다. 은퇴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고민 또한 컸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한 제2의 인생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는 그다.

백 교장은 1977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투자금융에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회사가 문을 닫자 금강그룹 계열 저축은행으로 옮기면서 5년간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2003년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제일은행 계열인 제일창업투자에서 2년여 고문으로 있다가 2005년 완전히 퇴직을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3세. 퇴직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은 60세가 채 되지 않았죠. 나이 40이 됐을 때 직장생활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이렇게 일만 하다가 인생을 끝마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50세에 은퇴하기로 일단 목표를 정하고 10년간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50세가 됐을 때 계획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스스로 은퇴 준비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3년 후 사표를 제출했다. 지금으로써는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은 그랬다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인생 2막 방향은 ‘의미 있는 일’

인생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늘 고민해 왔다는 그는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의미 있는 일’이란 이정표를 따라 인생 2막의 길을 걷기로 한 셈이다.

인생 2막의 시작은 은퇴 전부터 관심 있던 미술과 음악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었다. 퇴직금으로 보증금을 충당해 경기도 분당시에 ‘필하모니’라는 공간을 만들어 미술 전시회를 열고, 음악회도 개최했다.

미술과 음악에 관심이 있는 지역주민이나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음악회를 열고, 그림과 곡에 대한 해설을 들려주기도 했다. 진행 순서 마지막에는 다과회를 열고 교류의 장을 갖기도 했다.

그가 미술과 음악에 관심을 둔 계기는 인생 전반(前半)의 영향이 크다. 금융맨 시절, 비서 업무를 맡으면서 영업점 내 고객을 위해 그림을 비치하는 일이 많아진 그는 주말마다 화랑을 찾아다녔다.

“그림 보는 안목이 생기면서 미술 이론과 미술사도 공부하게 됐죠. 한때 은퇴 후 화랑을 운영해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거든요. 제가 운영한 ‘필하모니’도 직장생활 당시 음악을 감상하러 자주 들른 명동 ‘필하모니’에서 따왔죠.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요.”

그렇게 2년간 ‘필하모니’를 운영해 온 그는 비용을 대지 못해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됐다. 그는 “그간 사람들이 전시하고 싶은데 공간이 없었고, 연주회도 마찬가지였다”며 “‘필하모니’가 문을 닫을 때 ‘이런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는 한 연주자의 말은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그는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3개월간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고, 그간 쌓아온 미술지식을 활용해 도슨트(docent)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때 그곳 직원이 성남, 분당에 3000개의 동호인 클럽이 있는데 하나의 연합회로 조직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저도 동감을 표하고 ‘사랑방문화클럽’을 만들어 초대 위원장에 추대됐죠. 이 클럽은 지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지역문화 브랜드사업 부문에서 대상인 국무총리 상을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해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며 위문공연을 갖기도 했다. 그는 팀에서 현재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분당FM방송에서 4년 동안 동호인 클럽과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낭독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방송을 그만두고 서울 개포동 하상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눈이 불편한 분들에게 책을 읽어드리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국립암센터에서 일반인들은 신청할 수 없는 ‘호스피스(hospice)’ 과정을 배울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은퇴 준비,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렇게 장장 7년이란 시간을 보내던 중 그는 영국에 시니어대학인 U3A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U3A는 재취업 강좌부터 취미생활 강좌까지 180여 과목을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다.

그는 2013년 분당에서 한국식 U3A인 ‘아름다운인생학교’를 개교해 현재 운영 중이다. 이곳은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없다. 어떤 과목에서는 선생이 됐다가 다른 과목에서 학생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고, 내가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운다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원리로 운영되고 있다.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많다는 것이죠. 그분들은 그런 지혜를 나눠 주고 싶어 해요. 이곳은 그러한 지혜를 서로 나누는 공간입니다. 개교 이후 자신의 경력을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는 분들이 점차 모이고 있어요.”

백 교장은 ‘아름다운인생학교’가 불씨가 돼 이런 활동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길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기타와 몸 펴기, 중국어, 가치투자 등의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운영비는 오가는 차비 수준의 수강료가 전부다.

백 교장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가 많이 받아 왔는데, 이제는 제가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것일 뿐이다”라고 쑥스러워했다.

이런 그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백 교장은 “은퇴를 준비할 때는 스스로에게 ‘내가 뭘 좋아할까’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삶을 준비하지만, 정작 스스로 좋아하는 걸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란 지적이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면 이미 반은 이룬 셈이죠. 반대로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는데 은퇴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 전반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한 것이라면 후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 은퇴 후 걸어온 길에 후회가 없습니다.”

이런 그의 주요 수입원이 궁금했다. ‘아름다운인생학교’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백 교장은 “은퇴를 하면서 친구 네 명이서 투자클럽을 결성했다”고 웃으며 귀띔했다.

“친구 모두 현업에 있을 때 오랫동안 자금 운용을 관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클럽을 결성하며 3가지 원칙을 세웠죠. 첫째는 이 모임을 통해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우정을 도모한다는 것이에요. 셋째로는 돈도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우리 클럽의 운용 실적은 괜찮은 수준입니다.”

나원재 기자 nwj@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