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칠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은 접어두시길. ‘안티 스트레스’를 표방하는 어른용 색칠 북이 대세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다면,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Trend] 색칠, 아이들만 하란 법 있나요
KBS2 TV 드라마 ‘프로듀사’의 한 장면. 백승찬 PD(김수현 분)를 짝사랑 중인 신디(아이유 분)는 어지러운 마음을 수습하기 위해 색연필을 하나 곱게 손에 쥐고, 색칠 북에 색칠을 한다. PPL인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단 드라마 맥락상 색칠 북이 등장한 시점은 적절했다. ‘잡념’을 없애는 데 탁월하다는 게 색칠 북 마니아들의 자평이니까.

막상 책을 펼쳐보면 ‘이게 책인가’ 싶을 정도인 일명 ‘컬러링 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밑그림만 있고, 그 밑그림을 독자가 채워서 완성하는 형태. 사실 작년 말 컬러링 북이 처음 이슈화되고, 올 초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후속작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도서의 한 종류로 자리 잡을 만큼 대중화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중에 나와 있는 컬러링 북은 약 300여 종. 그 종류와 콘셉트도 어찌나 다양한지 꽃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소재에서부터 푸드, 패션, 뷰티, 인테리어, 여행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세요”
국내에 컬러링 북이 소개된 건 작년이다. 2013년 봄 영국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가 쓴 ‘비밀의 정원’이 영국은 물론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열풍을 일으킨 후 국내에 출간된 것. 22개 언어로 번역된 ‘비밀의 정원’은 전 세계적으로 140만 권 이상 팔려 나가며 아트테라피 붐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만 43만 부 이상이 팔리며 뜨거운 열풍을 예고했다. 같은 작가가 올 초에 펴낸 신작 ‘신비의 숲’ 역시 초판만 22만6000부를 인쇄했을 정도니 그 인기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밀의 정원’ 이후 국내 작가들의 책들도 봇물 터지듯 이어져, 해외로까지 전파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간의 정원’ 시리즈로 무명작가 송지혜 씨가 저자인 이 책은 선인세 20만 달러에 북미 지역에 수출됐다.

‘색칠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른들이 열광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디지털 기기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아날로그적으로 풀고자 하는 욕구’를 꼽는다. 어린이를 위한 색칠 북이 놀이이자 교육용인 반면, 어른을 위한 컬러링 북들이 ‘안티 스트레스’ 혹은 ‘힐링’을 표방하고 있는 이유다. 컬러링 북 열풍의 시작인 ‘비밀의 정원’ 첫 장에 쓰인 글은 색칠 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자, 색연필을 들고 책을 펼치세요.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세요.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감성으로 정원의 꽃과 나무를 나만의 색들로 칠하고 나만의 그림을 이어서 그려보세요. 모니터와 키보드가 아닌 손과 종이를 이용해 정신을 집중해서 색칠을 하면 할수록, 자꾸 생각나는 화나고 짜증스러운 일들, 일상의 자잘한 걱정과 긴장은 서서히 지워집니다.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그래도 의심 가는 마음을 지울 길 없어 실제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일단 첫 장을 펼치고 복잡한 패턴을 본 순간,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살짝 스트레스를 받긴 하는데 막상 색연필로 칠하기 시작하니 머릿속이 단순해지는 건 사실. 이 색 저 색 골라 가며 차차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에 은근 성취감도 생긴다. 다만, 보통 1만2000원 안팎인 책값에 대해서는 객관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바, 어떤 네티즌의 말처럼 ‘갖고는 싶지만 막상 내 돈 주고 선뜻 구입할 것 같지는 않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남자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구매한다는 출판사 측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