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의 ‘멀티’ 기능을 논함에 있어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은 ‘아주 좋은 예’다. 스튜디오와 임대 주택, 그리고 독립된 거주 공간까지 포함한 이 건축물이야말로 지금 트렌드에 맞는 도시 건축의 표본인지도 모른다. 사진 진효숙·이애오건축 제공
[예술이 된 주택 3_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복합 기능을 갖춘 새로운 주거의 실험
‘다양한 요구들이 퍼즐같이 얽혀 있는 작지만 까다로운 설계.’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건축에 대한 설계자의 한 줄 평은 그렇다. 부지가 위치한 청담동 블록은 최소의 도로 면적 외에 빈 곳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강남의 고밀저층 주거 블록. 이러한 도시 블록의 밀도 문제에다 근린생활공간과 다가구주택이라는 건물의 복합적 기능, 그리고 층별 면적의 문제와 주택의 공공성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 프로젝트는 ‘전략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를 담당한 임지택 한양대 교수는 세 가지 면에서 접근했다. 도시 블록에서의 주택의 공공성, 복합적 기능성과 주거의 프라이버시, 이웃 형성을 위한 공간적 장치로서의 커뮤니티 스페이스가 그것이다.
[예술이 된 주택 3_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복합 기능을 갖춘 새로운 주거의 실험
주거 형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다
우선 도시 블록에서 주택의 공공성 문제를 풀기 위해 주차장 필로티(기둥을 세워 공간을 비운 구조)와 연계해 지상층은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부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차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좁고 어두운 길에서 시선을 확보해줌으로써 ‘다가구주택’임에도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부지를 통과하는 동선은 브리지로 연결, 주민들이 이곳을 지름길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건물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주변으로 열려 있는 개방적 구조가 됐다.

이 개방성은 각각 다른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의 ‘원칙’이 됐다. 지하에 위치한, 광고 사진을 찍는 건축주의 스튜디오는 선큰을 만들어 충분한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게 했고, 두 개 층 높이에 달하는 주 스튜디오는 외부 데크에까지 직접 연결되도록 하는 등 좁은 밀도 때문에 생기기 쉬운, 닫힌 공간을 지양했다. 이는 임대주택이 들어선 2~3층도 마찬가지다. 입구의 홀에서 바라보면 동네가 다 보이는 열린 구조로 돼 있어 작은 평형대이지만 누추함이 들지 않는, 집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공간적 퀄리티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예술이 된 주택 3_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복합 기능을 갖춘 새로운 주거의 실험
[예술이 된 주택 3_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복합 기능을 갖춘 새로운 주거의 실험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대지 면적: 380.16㎡연면적: 995.14㎡규모: 지하 2층, 지상 4층외부 마감: 현무암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대지 면적: 380.16㎡연면적: 995.14㎡규모: 지하 2층, 지상 4층외부 마감: 현무암
청담동 주택의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복합적 기능의 해결은 동선의 방향과 시각적 소통 장치를 통해 해소했다. 서측에는 주거의 계단실을 배치하고 남측에는 그와 분리된 외부 동선을 별도로 두어 건물의 다중적 기능을 담아냈다. 청담동 주택에서 계단실은 동선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프라이버시와 소통이라는 상반되는 개념을 한번에 해결하는 장치인 것. 프라이버시를 위해 벽 전체를 막고 빛이 들어오는 효과를 위해 작은 창들을 냄으로써 경쾌하고 즐거운 길로 승화됐다. 계단을 기능적인 것보다 더 크게 배치한 것도 이웃들이 오가다 만나서 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의도였다.

건축주 가족의 독립적 공간인 4층은 또 전혀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한옥처럼 주방과 거실에 단 차이를 둠으로써 마치 마당 같은 거실 느낌이 나도록 한 것이 특징. 중정을 포기한 대신 거실을 중정처럼 만들고, 외부 테라스에 마련된 정원과 연결되게 해 안과 밖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대지에 비해 엄청나게 넓은 면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각각의 개별적 공간이 갖는 서로 다른 기능성까지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은 도시형 주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 임지택
한양대 공학대학 건축학부 교수
[예술이 된 주택 3_청담동 스튜디오 주택] 복합 기능을 갖춘 새로운 주거의 실험
“키포인트는 도시와 호흡하는 겁니다”

이번 건축 설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도심에 들어서는 다가구주택이라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조건이었죠. 다가구의 부동산적 가치 또는 임대율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도시 속에서의 공공성을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고, 임대와 근린생활공간, 독립된 주거 등 다양한 공간의 배치라는 문제도 있었어요. 결국 도시 법규를 따르면서 건축적 질을 만드는 것과 도시 법규가 원하지 않더라도 도시와 호흡하게 하는 것, 그게 키포인트였죠.”

청담동 주택은 특히 공공성이 부각된 측면이 있습니다.
“건축의 기본적인 성격 중 하나가 공공이에요. 유럽만 봐도 공공의 간섭이 엄청납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공공’도 거기서 온 것이죠. 사유 재산은 개인 것이지만 도심은 개인의 것이 아니죠. 도심과 주거가 영향을 주고받으니까요. 공공성은 건축가의 의무 중 하나예요.”

건축주와 설계자의 ‘관계’가 결과물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합니다. 이번 청담동 스튜디오 주택만 해도 제가 생각한 몇 가지 원칙에 대해 건축주가 동의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죠. 다만 중요한 건 건축주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 희생으로 인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인식시키는 게 중요해요. 건축을 하다 보면 한 발 양보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창과 계단이 인상적인데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빛입니다. 빛은 항상 공간을 만들죠. 그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공간, 시선이 이동하는 공간, 그 외 다양한 공간들이 있죠. 공간 자체를 만드는 건 콘크리트지만, 공간을 채우는 건 빛이에요. 그 빛을 이용해 사람이 만나는 공간, 쉬는 공간 등을 만들려고 합니다. 설령 전기가 끊겨도 빛으로 인해 당분간은 살 수 있는 집이 좋다고 생각해 숨 쉴 틈을 많이 만들어두는 편이에요.”

이번 건축의 성공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문을 열면 남의 집인,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주거 환경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공공의 화두나 빛, 개방성의 극대화 등 작은 시도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파트가 아닌 도시에서 살 수 있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고요.”

현재와 미래 주택 건축의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건축물의 유지관리가 건축주에겐 가장 중요해요. 그러면서도 멋진 집이라면 더없이 좋은데, 이 두 가지는 충돌하는 경우가 많죠. 문제는 쉽게 양분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자동차들이 이미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가 됐듯 건축도 효율성을 따지는 건 이제 필수입니다. 멋은 효율이 좋을 때 나는 부차적인 요소이고요. 또 하나는 지역 문화를 담을 수 있어야 해요. 세상은 비즈니스맨이 만드는 것이지만 사회는 문화가 주도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