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최고의 금융기관으로 인정받던 1980~1990년대 은행 지점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대개 10년 임기를 보장받았으며, 굳이 유치전을 펼치지 않아도 고객이 제 발로 찾아와 자금을 맡겼다.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로 출퇴근을 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요즘 은행 지점장의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1997년 외환위기 한파 속에서 은행들 간의 인수·합병(M&A)이 대거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은행 지점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 지점장의 역할도 그만큼 축소됐다. 여기다가 금융자동화기기(ATM)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점 창구 인력은 더욱 단출해졌으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당기 순이익마저 급감하면서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화려했던 과거를 마냥 그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금융소비자와의 최전선에서 지점, 나아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은행의 내일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 한다. 예전보다 권한도 줄어들고 실적 경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여전히 지점장은 행원으로 금융계에 첫 발을 내디딘 뱅커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영예로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은행의 꽃’ 지점장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SPECIAL REPORT] ‘은행의 꽃’ 지점장, 그들은 누구인가
지점장의 조건
50대 많지만 갈수록 나이·호봉 관계없이 실적에 좌우
금융위원회 및 업계에 따르면 2013년 6월 현재 전국 7671개의 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지점장 수는 약 1만여 명에 이른다. 지점 수와 지점장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 은행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기업과 개인, 여신과 수신 지점장을 각각 두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점장 중 여성 비중은 3~4%에 불과해 최근 금융권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이 득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점장의 연령대는 50대가 가장 많지만 40대도 적지 않다. 호봉에 따라 승진 기회가 주어지고, 승진 시험과 인사 평가를 거쳐 지점장에 오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조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젊고 추진력 강한 지점장을 발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때 은행권에 혁신 바람이 불면서 30대 지점장이 나오기도 했으니, 지점장 승진은 사실상 나이와 별개로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판가름이 난다”며 “승진 대상인 차장급부터는 실적이나 평판 관리에 들어가는 등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말했다.

지점장이 되는 과정은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행원-대리-차장-부장-본부장-임원의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 은행은 행원과 대리 사이에 계장, 차장과 부장 사이에 부부장 직급을 두는 곳도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차장을 거쳐 부부장, 부장으로 승진한다. 차장까지는 일반 조합원에 해당하며, 부부장부터는 관리자로 구분돼 비조합원­­­인 M(Manager)등급으로 접어든다. M등급은 M1에서 M6까지 있다. M6는 은행 부지점장에 해당하는 부부장이고, M5부터 M1까지는 지점장인 부장급이다. M6에서 M5로 올라가는 데 보통 4~5년 정도 걸린다. 부부장에서 지점장급으로 승진하는 지점이다. 물론 이 기간이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사고과에 따라 기간은 단축되거나 늘어난다. 정연웅 우리은행 일산 가좌지점장은 올 초 부부장으로 승진한 지 6개월 만에 또 한 번 지점장으로 파격 승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1985년 입행한 이후 매해 표창을 받은 ‘모범생’ 사례다.

신한은행은 부장직군만 MA, MB, SM 세 등급으로 나뉜다. MA급은 부지점장이나 소규모 지점의 지점장을, MB급은 일반 지점이나 소규모 프라이빗뱅크(PB)센터장, 가장 높은 SM급 부장은 대형 PB센터를 책임지는 센터장이다. 단계마다 평균 4~5년 정도 소요된다.

KB국민은행은 L1~L4의 승진 체계가 있는데 L3 부점장급이 되면 승진 자격을 갖췄다고 본다. 리더십 등의 인사 평가 과정을 거쳐 최소한 3~4년 부점장으로 일해야 지점장에 오를 수 있다. 은행마다 지점장 임용 직전 단계가 되면 예비 지점장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부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이 이토록 복잡해진 것은 공급에 비해 넘쳐나는 수요 때문이라는 게 은행권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은행들이 점포를 공격적으로 확장해나가던 시기에 대거 입행한 이들이 관리자가 되는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영업점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승진 대상자가 많다 보니 승진 체계를 세분화해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것. 한희승 KB국민은행 인사팀장은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에 자구책으로 부장 직급을 세분화해 엄격한 인사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 2만2000명 행원 가운데 지점장급은 1200명으로 전체의 5% 정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역시 해마다 물러나는 지점장이 100~150명 정도인 데 반해 승진 대상자인 M등급은 2000~3000명에 달한다. 결국 대다수의 지점장은 ‘선택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지역본부장, 본부 임원, 부행장, 행장 등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군에서 야전 지휘관을 거치지 않고 별을 달 수 없듯이 지점장을 거치지 않은 은행장이 나올 수 없다. 반대로 지점장을 달지 못하거나 승진 시험에 응하지 않으면 차장이나 부지점장으로 명예퇴직을 한다. 최근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은 “지점장은 눈썹을 휘날리며 뛰는데 ‘프리 라이드(free ride·무임승차)’하는 중간 직급이 있다”며 “지점장 승진을 기대하지 않는 포기자들이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지점장의 역할
실적은 인격…등급 낮으면 임기 보장 못해
은행 지점장의 임기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금융기관의 평균 정년이 58세임을 감안하면 지점장에 오르는 연령에 따라 임기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50세에 지점장으로 승진한다면 한 점포에 2년 정도씩 머무르며 2~3곳 정도를 옮긴 뒤에 명예롭게 퇴직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대부분 55세부터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지만 실적이 좋은 지점장에게는 이를 유예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반대로 임기가 끝나기 전에 후선으로 가 본부의 영업 지원을 맡기도 하는데, 이 경우 대부분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후선 관리부서에서 정년을 2~3년 남겨놓고 일선 영업점의 지점장으로 옮겨 정년퇴임하는 이도 있다.

이렇듯 지점장은 금융소비자와의 접점에서 은행원으로서의 역량을 평가받는 시험대다. 임기 안에 사활을 걸고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점장의 업무는 일선 점포의 책임자로 내외부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영업, 즉 고객의 자금을 유치하는 수신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시중 은행들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업장 규모와 예금고, 대출고, 고객 수 등을 묶어 그룹핑하고 그 안에서 상하반기 한 번씩 실적으로 종합 순위를 매긴다. 한 은행은 비공식적으로 지역본부장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 매일 지점장을 불러들여 실적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지점장의 영업 실적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토로다. 연간 실적 평가에서 연달아 낮은 등급을 받을 경우 임기를 못 채우고 후선으로 밀려나야 한다. 대도시의 점포 밀집 지역에서는 같은 은행끼리도 우량 고객을 두고 지점장들 간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정도로 과열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다.

내부적으로는 직원 교육, 업무 협의, 의사 결정 및 결재 등 일반 관리 업무를 총괄한다. 은행은 업무 특성상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부 고객(직원) 관리도 외부 고객 관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모든 행원들이 똘똘 뭉쳐 좋은 실적을 내도록 독려해야 한다. 성과에 따라 급여가 조정되는 은행원들에게 어떤 지점장을 만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지점장을 잘못 만나 월급이 깎였다”는 소리가 나오는 순간 지점 분위기는 곧바로 망가진다고 은행원들은 말한다. 이에 지점장들은 내부 관리에도 전력을 기울인다.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하는 데 힘쓴다.

취재 중 만난 지점장들은 대부분 바쁜 와중에도 직원들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가 하면, 체육 행사를 열고 맛집을 탐방하는 등 직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지점장 A씨는 “윗선의 압박을 받은 한 지점장이 직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가 노조에 투서가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며 “예전엔 지점장의 권위가 대단해 행원들이 감히 눈도 못 마주쳤는데, 그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하소연했다.


지점장의 애환
실적 하위 10% 대기발령

지점장들은 이렇게 정글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권한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지점장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행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 보니 권한은 축소되고 부담은 늘었다는 게 이들의 불평이다. 무엇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몸을 내던져 영업을 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KB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8개 시중은행이 몸집 줄이기에 들어가면서 올 들어서만 40개 이상 점포가 통폐합됐다. 여기에다 금융 당국이 적자 점포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면서 지점장들의 입지는 더욱 오그라들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부 지점장들은 “다가오는 11월 말 전국 지점의 실적 취합을 앞두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최근 은행 지점장들의 잦은 자살 사건이 남일 같지 않다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 실직한 은행원들이 간혹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지점장 자살 소식이 들리는 때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자택에서 자살한 B은행의 철원지점장은 대기발령을 받으면서 신변을 비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자살한 C은행 인천 연수동지점장 역시 실적 악화로 우울증 치료까지 받다가 운명을 달리했다.

‘업무추진역’으로 불리는 대기발령 제도는 실적 평가에서 좋지 않은 지점장을 지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개인별 영업 실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보통 실적이 하위 10%인 지점장들이 업무추진역으로 대기 발령을 받는다. KB국민은행은 매년 100명에 가까운 지점장이 업무추진역으로 발령 난다. 이 경우 연봉이 기존보다 20~30% 줄어든다. 한 지점장은 “영업 실적 스트레스에 금융사고가 터지기라도 하면 그 무거운 짐은 말로 다 못한다”며 “어떤 사고가 어떻게 날지 몰라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사는데 집에 가서 아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 끙끙대는 날이 많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지점장은 누구보다 외로운 자리다.

은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건 사고의 책임도 지점장이 져야 한다. 가령, 힘들게 뚫은 거래처가 부도를 맞아 대출을 갚지 못하면 지점의 수익 지표와 연체율 지표가 모두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여신을 지원한 기업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인 데다, 경기가 좋지 않아 고객이 맡긴 펀드 등의 수익률이 좋지 않을 때도 얼굴을 들 길이 없다고 한다. 시중은행 D지점장은 “워낙 경기가 좋지 않으니 어딜 가든 지점장이 환영받지 못 한다”며 “영업을 하러 갔다가 반 잡상인 취급도 받는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은행들이‘심리상담실 힐링카페(KB국민은행)’, ‘헬스케어 시스템(IBK기업은행)’, ‘건강주치의와 심리상담 치료(신한은행)’ 등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직원들의 정신 건강 챙기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점장 선호 지역
명동·효자동 지고 해외 지점 뜬다

지점장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어디일까. 예전에는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이나 명동, 종로 지역 지점장 자리를 놓고 내부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글로벌화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해외 지점장이 주목받는다. 특히 뉴욕지점장 자리는 임원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한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안동규 전 뉴욕지점장, 유석하 전 지점장, 임상현 전 지점장 등 뉴욕 지점장 출신들이 연이어 현직 부행장에 임명됐다. 하나은행 이현주 부행장과 김병호 부행장도 뉴욕지점장 출신이다. 우리은행에서는 이영태 현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이 뉴욕지점장 출신이고, 정운기 전 뉴욕지점장은 현재 국외사업부장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강남이나 압구정과 같이 자금이 몰리는 지역이 영업 면에서 수월하다는 목소리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도심 대신 떠오르는 외곽 지역이 유리하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금융 거래를 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대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중심부의 큰 점포나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지점을 맡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유치 액수는 물론 유력 인사들과 인맥을 쌓아두면 향후 승진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반면 지방과 도심의 지점을 두루 거친 E지점장은 “강남권은 점포가 너무 많아 출혈 경쟁도 심한 데다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며 “남양주나 동탄 등 신도시가 들어선 외곽의 은행은 가능성이 열려 있어 오히려 뚫기 좋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사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지점장들은 입행 당시 꿈꿨던 ‘은행의 꽃’ 지점장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예롭게 생각했다. 또 지금 비록 한파를 맞고 있지만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어렵다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럴수록 지점장을 구심점으로 끈끈하게 뭉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정서가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상당수의 지점장들은 연초에 사업 계획을 세우고 직원들과 단합해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경쟁 그룹 내에서 선두권을 차지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에 부실 지점이었던 곳을 정상화시켜 선두권을 탈환했을 때,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승진하고 좋은 부서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한 지점장은 “은행 지점은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체이기 때문에 지역민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며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일선 지점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적이 좋으면 두둑한 보너스도 기다리고 있다. 지점장들의 연봉은 억대로 알려졌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천차만별인데, 당연히 선두 그룹 지점장 연봉은 하위 그룹보다 훨씬 높다. 반면 성과가 나쁘면 아예 연봉 자체가 깎인다. 업계 관계자는 “일등과 꼴등의 연봉 차이는 40~5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경우에는 지점장이 차장이나 일반 행원보다 급여를 적게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이 내년 1월까지 은행권 최고경영자(CEO) 연봉을 최소 30% 삭감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해 지점장 연봉 역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정연웅 우리은행 일산 가좌지점장
국내 첫 청경 출신 28년 만에 지점장 발탁

우리은행 일산 가좌점을 찾은 지난 10월 6일. 정연웅 지점장(53)이 마침 고객과 미팅을 끝낸 직후였다. 지역 기업체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고객은 “이번에 우리은행 가좌지점에 ‘능력자’가 부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열심히 뛰는 걸로는 정평이 나있는데 만나 보니 정말 그렇다”고 말했다.

정 지점장은 1985년 청원경찰로 우리은행(당시 상업은행)에 첫 발을 디뎠다. 한빛은행 시절 외환위기가 터졌고, 그는 은행 간 합병 과정에서 근면 성실함을 인정받아 정식 행원으로 전환됐다. 은행권에서 청경 출신이 지점장으로 발탁된 것은 정 지점장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일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영업 실적 등을 고려해 지점장으로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나와 같은 서무 직원 160여 명이 전직했어요. 나를 잘 봐주셨던 지점장님의 추천으로 2005년 정식 은행원이 됐습니다. 파격적인 인사였지요.”

경찰복을 벗고 은행원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첫 발령지였던 여의도 북지점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우수했던 당시 전세금 대출 실적이 전국적으로 가장 우수했던 정 지점장은 여의도에서 유명 인사였다. 그 해 은행장 표창을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크고 작은 상을 받아왔다.

“저를 믿고 기회를 주었기에 그만두는 날까지 은행에 보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습니다. 한 번 뛰어들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해냈죠.”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뛰어다녔다”며 “지점장이 된 지금도 시골 논길을 가르며 부지런히 영업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지점 근무 당시 장애우 단체와 유대관계를 맺은 일화도 유명하다. 1년 정도 꾸준히 봉사 활동을 다니며 장애우들의 마음을 열어 30개 단체에 소속된 200여 고객의 통장 개설을 이끌어냈다. 성실성과 진정성이 낳은 결과였다. 이후 성공 사례를 발표하러 본부에 갔는데 부지점장 특별 승진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8년의 은행원 생활 끝에 부지점장으로 승진한 그는 올 7월 또 한 번 6개월 만에 지점장 발령을 받았다. 평균 3~5년이 걸리는 코스를 그는 6개월 만에 밟은 것이다. 정 지점장은 “개인적으로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다른 지점장들에게 허탈감을 주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며 “그래서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은행 일산 가좌지점은 그의 리더십에 힘입어 하반기 그룹 내 실적 평가에서 선두권을 달리고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1위를 목표로 전진하고 있다. 나약한 은행원의 이미지를 탈피하게 위해 마라톤에 도전했다가 지금은 철인 3종 경기 마니아가 됐다는 정 지점장은 “요즘 은행권이 모두 힘들어 스트레스도 적지 않지만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며 “비장하게 칼을 갈고 나가면 어떤 영업이 안 되겠는가”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동윤 KDB산업은행 이수지점장
금융 관련 자격증 10여 개 ‘독한 승부’로 뚫은 유리천장

금융권에 여풍(女風)이 거세다지만 여전히 간부급 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4대 은행의 여성 임원 비중이 5%가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지점장급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들도 버티기 어렵다는 정글 같은 은행 지점장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얼마나 강인한 리더십의 소유자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10월 16일 KDB산업은행 이수지점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은 지난해까지 여직원으로만 구성된 지점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얼마 전 남자 신입 직원이 들어오며 ‘기록’이 깨졌다. 김동윤 지점장(54)은 예상과 달리 감성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지점 인테리어부터 마케팅 활동, 영업 및 고객관리까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하고 있었다. 가령 어버이날 카네이션 볼펜을 돌린다거나 하루 두 번 지점에서 구운 빵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꼬마 손님들에게는 고소한 팝콘을 튀겨 나눠주기도 하고, TV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브라우니(개) 인형을 매장에 비치해 사진 찍기 이벤트도 벌인다. 날씨가 좋을 땐 지점 ­테라스에서 야외 다과회도 열었다. 환하게 밝힌 매장과 아기자기한 꽃 장식들도 모두 김 지점장의 감각이다. “남성들이 쑥스러워서 하길 꺼려하는 부분을 아줌마의 뻔뻔함과 친근함으로 접근했지요. 근처에 저축은행까지 합쳐 모두 10개 점포가 있어요.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차별화가 필수입니다.”

그 덕분에 KDB산업은행 이수지점은 동네 주민의 쉼터이자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그는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이 남성의 특징이라면 여성들은 뒤도 돌아보고 옆도 챙기며 함께 가려는 성향이 있다”며 “주변 지점장들과도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1977년에 입행, 35년간 한 우물을 파 지점 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입사 초기만 해도 여성은 ‘결혼하면 그만두겠다’는 각서까지 써야 했다.

이 제도는 폐지됐지만 그만큼 은행에서 여직원을 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지점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4급 승진 시험을 치루면서부터 욕심이 생겼다. 퇴근 후 집안일을 하고 가족이 모두 잠들면 12시부터 공부를 했다. 그 덕분에 펀드 투자상담사 등 금융 관련 자격증만 10여 개를 땄다.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따뜻한 지점장이 되기 위한 인문학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성실성과 적극성을 눈여겨본 회사에서는 3급 6년 차인 그를 지점장에 앉혔다. 보통은 1~2급이 점포 책임자가 된다. ‘우먼파워’는 통했다. 이수지점은 현재 10여 개 지점 그룹 내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

“저처럼 평범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돼 기쁩니다. 함께 입사했던 여자 동기 39명 가운데 현재까지 남은 사람은 4명이거든요. 힘든 여정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성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큰언니’이자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