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PEOPLE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은 경영자이자 수준급 요리사다. 또 재벌 2세이자 전직 유명 푸드 트위터리안이다. 그의 혀끝에서 숨은 맛집들이 속속 알려지며, 우리가 먹는 마트표 식품들이 줄줄이 개발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어쩌면 최고경영자(CEO)이기 이전에 식신(食神)일는지 모른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컵라면도, 스테이크도 즐거운 남자
“신라면 블랙 시식 중^^ 사골 국물 맛이 나서 국물 맛이 좋네요. 밥 말아 먹으면 더 맛있겠어요.”, “여름철 안줏거리 개발 중이랍니다. 야채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다시 개발한 해파리냉채. 굿!”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은 한때 재계 최고의 트위터리안으로 꼽혔다. 지금은 문을 닫은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면면은 화려했는데, 그중에서도 음식은 단연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맛집 순례기는 물론 새로 나온 식품의 품평, 자신이 만든 음식 소개까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먹방’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신세계 계열사의 식품 개발자들이 부회장님의 단골 맛집을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일부러 찾아가 먹어보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이제 오픈한 지 1년 된 프리미엄 식품관 신세계 SSG푸드마켓이 국내 식문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것 역시 그의 절대 미각에 기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공식품 가운데 ‘농심 신라면 블랙’이 정 부회장의 수혜를 입었다면, 외식 분야에서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정용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는 몇 년 전 트위터로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이사벨더부처’를 소개하며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유행시켰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컵라면도, 스테이크도 즐거운 남자
드라이에이징이란 공기 중에 고기를 노출한 채 수분을 증발시키는 육류 숙성법이다. 습도, 통풍, 온도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한 상태에서 평균 21일 동안 건조, 숙성시켜 육질을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방식인데, 미식가들 사이에서 ‘최상의 고기 맛’이라는 극찬을 받는다. 특히 덩어리째 서비스되는 포터하우스는 티본을 중심으로 등심과 안심이 좌우에 붙어 있어 상반된 고기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최상급 프라임 한우를 드라이에이징 방식으로 건조, 숙성시켜 사용하는 이사벨더부처는 재계 2, 3세들의 모임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사벨더부처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많이 먹기보다는 그날 그날 상태가 좋은 부위의 고기를 추천받아 주문하는 편”이라며 “육즙 풍부한 스테이크를 와인이나 샴페인과 곁들여 식사하곤 한다”고 전했다.

와인 역시 그의 SNS에 자주 등장했던 단골손님. 20세기 최고의 와인으로 불리는 ‘그랑 뱅 드 샤토 라투르 1961년’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샤토 라투르는 프랑스 보르드의 5대 샤토 중 하나로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고가를 자랑한다. 정 부회장은 시음 후 식도락가답게 ‘혀의 재부팅’이라는 함축적인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다. 재벌이지만 비싼 와인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가격 대비 저렴하면서도 맛 좋은 5만 원대 와인도 두루 섭렵하고 있으며 이를 적재적소에 알맞게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도 정 부회장의 SNS를 기억하고 그의 깨알 같은 음식 멘션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인기의 비결은 ‘있는 자’의 허세가 아닌 컵라면부터 최고급 스테이크, 저가 와인부터 ‘신의 물방울’까지 때론 소탈하고 때론 럭셔리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솔직하게 공개한 때문은 아닐까. 그 매개체가 ‘정(情)’의 아이콘 음식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한국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