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박상기 (주)헤르시아 대표는 1980, 90년대 ‘넥슨’ 브랜드로 중동 등지에 시계를 수출했다.

국내 시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던 박 대표는 8년 전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셀레오페’라는 브랜드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그를 서울 장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상기 (주)헤르시아 대표- 시계 수출 노하우, 화장품 사업에 접목 나서다
사무실 입구에 넥슨이라는 간판이 보이던데요, 시계 브랜드 아닌가요.

“맞습니다. 넥슨이라는 브랜드로 1985년 시계 사업을 했습니다. 제가 시계업계에서는 2세대에 해당합니다. 당시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할 때라 경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사업도 당연히 잘 됐어요. 넥슨은 시계 브랜드일 뿐 아니라 법인명이기도 했습니다.”

좀 외람된 말씀이지만, 당시는 어떤 사업을 해도 잘 될 때 아닌가요.

“그런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웃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사업에 성공한 건 아니죠. 시계업계에도 망한 사람 있고, 잘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국내 시계 산업을 보면 1세대가 국내 시장에만 국한했던 데 비해 저 같은 2세대는 해외 시장 개척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저도 1980년대 말 중동으로 진출했고, 그걸 발판으로 2차로 러시아 등 동유럽으로 나갔으니까요.”

가장 좋을 때 매출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1999년이 정점이었는데, 그때 연 매출이 500억 원 정도 됐습니다. 시계는 개당 매출 단가가 높아서 분위기만 타면 매출이 금방 오릅니다. 반면에 화장품은 소비자가는 높지만 회사에서 나가는 가격이 낮아서 매출 올리는 재미는 시계보다 덜합니다.”

2000년 이전에 500억 원 매출이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국내와 해외 비중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내수가 30%, 수출이 70%였습니다. 우리를 비롯해 당시 한국 시계가 중동에서 히트를 쳤습니다.”

중동에서 한국 시계가 먹힌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우선 제품이죠. 당시 국내 시계 제조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스위스, 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쳤으니까요. 지금 한국 화장품의 수준과 비슷합니다. 당시만 해도 고급 시계를 한국에서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외국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국내 시계업계는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외국 브랜드들은 중국 등에서 시계를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국내 시계 제조기술도 뒤떨어지기 시작했죠. 지금은 고급 기술이 사장돼 단순한 제품밖에 못 만듭니다.”

오랫동안 기업을 하신 분들 중에는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 대표님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습니까.

“환율 덕에 시계업체는 외환위기 때도 호황이었습니다. 물론 부채가 별로 없는 업체에 한해서죠. 국내 시계 산업이 쇄락한 데는 휴대전화의 영향이 컸습니다. 2001년 들어 휴대전화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시계 시장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시장규모는 커졌지만 커진 파이의 대부분을 외국 브랜드들이 차지했거든요. 그 여파로 많은 국내 시계업체들이 문을 닫았죠. 국내 1세대인 오리엔트시계도 문을 닫았으니까요.”

사업도 경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흐름이 있잖아요. 상승기가 있으면 하락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때를 대비해 많은 CEO들은 신성장 동력을 찾는 듯합니다.

“시계업계도 그랬습니다. 동종 업계 사장들 사이에 시계로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거든요.”

그래서 찾은 게 화장품 사업인가요. 시계와 화장품은 연계 고리가 없어 보이는데요.

“사업을 하다 보면 그 사업의 한계나 단점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시계는 사후관리(AS)를 해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 부품을 2년 정도 보관해야 합니다. AS뿐 아니라 그 부담도 큽니다. 거기다 한 번 사면 오래 쓰기 때문에 재구매율도 떨어지고요. 시계를 수출하면서 외국에 많이 다녔는데, 공항 면세점을 보니까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이 화장품점이더군요. 화장품은 AS 걱정도 없고, 재구매율도 높잖아요. 외환위기 이후 사업 다각화를 계획하면서 화장품도 고려하게 된 거죠.”

화장품 외 다른 사업은 생각 안 해보셨나요.

“다양한 모색을 했죠. 4년 전에는 자동차 선팅 필름을 수입해서 국내에 공급도 해보고, 위성항법장치(GPS) 사업에도 손을 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제 사업 스타일과 잘 안 맞았어요. 사업은 매출이 일정해야 지속 가능한데, 두 사업 모두 매출이 들쑥날쑥해서 데이터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화장품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화장품은 2005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계 수출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시계 사업은 완전히 접었죠. 시계 사업을 정리하고 그간 함께 했던 시계 바이어들과 함께 화장품 수출을 계획하게 됐습니다.”

화장품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화장품업계는 보기보다 굉장히 배타적입니다. 매장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중도에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당시까지 많은 자금이 투자돼서 포기하기 어려웠거든요.(웃음) 화장품에 문외한이다 보니까 처방전과 내용물에 대해 몰라서 공부도 많이 했고요. 샘플을 가져오면 직접 발라 보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화장품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만들죠.

“네. 국내 화장품 기술은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우리는 OEM 업체 중에서도 1위 업체와 거래하고, 지속적으로 품질 관리를 합니다. 시계를 하면서 가장 기본이 품질이라는 걸 배웠거든요.”
박상기 (주)헤르시아 대표- 시계 수출 노하우, 화장품 사업에 접목 나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제 되겠구나’ 하고 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박 대표의 경우에는 언제 그랬습니까.

“재작년 즈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중저가 화장품으로 국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린 겁니다. 오랫동안 무역을 한 사람답게 해외 바이어 섭외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거든요. 바이어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죠. 그래서 ‘셀레오페(Selleope)’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현재 셀레오페는 수출과 백화점, 그리고 자체 쇼핑몰에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시계 수출의 경험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기도 하겠습니다.

“국내에서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오히려 해외에 기회가 있겠다고 판단한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수출이 더 쉽습니다. 오랫동안 쌓은 인맥이 있으니까요. 바이어들을 오로지 비즈니스 상대로 대하면 수명이 짧아요. 저는 바이어들을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은 인맥이 화장품 사업에 동원된 거죠.”

셀레오페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시계 사업을 하면서 브랜드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브랜드는 초기 개척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셀레오페도 브랜드 론칭까지 약 10억 원이 투자됐습니다. 현재 비용 커버는 하고 있고 내년이면 흑자 전환을 할 것으로 봅니다. 셀레오페는 그리스 여신들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밤의 여신인 셀레나와 낮의 여신 헬리우스, 미의 여신 카시오페아를 섞은 거죠. 제품 콘셉트는 발효입니다. 셀레오페는 3년 전에 기획한 제품인데, 최근 트렌드인 발효와 잘 맞는 듯합니다. 셀레오페는 베트남에 최초로 수출을 시작했고, 현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 중국 등으로 나갑니다.”

현지 반응이 궁금합니다.

“베트남만 해도 많은 한국 브랜드들이 진출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웬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셀레오페는 베트남에서도 중산층이 타깃이기 때문에 품질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화장품은 여자들이 많이 쓰는 제품이라 품질이 나쁘면 바로 폐기해야 합니다. 시계는 다른 판매 루트를 찾으면 되지만 화장품은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베트남은 어떤 계기로 수출하게 된 겁니까.

“현재 베트남 바이어는 항공사 기장입니다. 5년 전쯤 동대문을 지나다 통역을 해주면서 알게 됐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그랬는데, 베트남 승무원들이 외국에서 물건 사다가 팔기도 합니다. 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통역이 인연이 돼 사귀면서 그가 베트남 시장에 대한 정보를 줬어요. 그래서 개발한 게 홍삼 화장품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건강을 엄청 챙깁니다.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골드 마이진은 거기서 착안한 화장품입니다. 한국인들 같으면 인삼 냄새 때문에 싫어할 테지만 베트남인들은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국가별로 선호하는 화장품이 다를 텐데요, 나라별로 제품 구성을 달리하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표준 제품을 만들어 베이스로 하죠. 거기에 국가별로 선호하는 제품을 추가하죠. 예를 들어 터키는 노화 방지, 미백 등 기능성 제품에 주력합니다. 동남아는 미백 기능이 기본이고요.”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은 위생 허가를 받아야 통관이 가능합니다. 밀수 통제를 워낙 철저히 하기 때문에 허가받지 못한 제품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덕에 허가받은 제품은 아주 잘 팔립니다. 우리도 허가를 받고 들어가기 때문에 판매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일본에도 우리 제품이 나갑니다. 얼마 전 CC크림 5000개를 보냈는데, 소비자 반응이 좋았습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걸 잘 활용하면 품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어요. 품질은 한국 화장품이 일본과 동등한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걸 잘 활용하면 품질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걸 잘 활용하면 품질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올해 매출은 어느 정도 예상하십니까.

“지난해 약 60억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00억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중은 해외가 60%, 국내가 40%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는 중저가 브랜드인 다보, 리블레스 등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사실 저가 제품이든, 고가 제품이든 한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요. 그래서 해외 시장을 먼저 개척한 후 국내로 유턴하려고 하는 겁니다. 해외 시장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아는 시장이니까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 전략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해외 시장에서 알려진 다음 한국으로 돌아온다. 둘째, 최고급 패키지와 내용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시계를 통해 성공한 경험이 있으니까 가능하리라고 봐요. 어느 날 외국에서 저를 ‘박상기 사장’이 아니라 ‘셀레오페 사장’이라고 부르게 되면 제 전략이 성공한 거겠죠.”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