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설득·협상·배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한동안 행정기관이 제 기능을 못한 사실에서 우리는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력 부족에 공분을 쌓은 적이 있었다.

비단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 협상력이 약하다. 이것은 협상에 대한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상력도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혀야 커진다. 요즈음은 좀 나아졌지만 민주주의 교육을 잘 받지 못한 나이든 세대들은 협상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는 여러 기술이 있을 수 있다. 먼저 다른 사람보다 힘이 월등히 셀 때는 ‘강압’에 의해 따라오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는 무시해버리면서 힘으로 자신의 의견대로만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등한 인간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원리에 맞지 않고 비민주적이어서 지배당하는 약자 쪽의 집단 반발을 일으켜 결국에는 실패하게 된다.

이에 비해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인정한 가운데 자신의 의견에 따라오게 하는 방법으로 ‘설득’과 ‘협상’이 있다. 여기서 설득은 상대방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잘 이해시켜 자신의 의도대로(적어도 절반 이상) 따라오게 하는 것을 말하고, 협상은 상대방의 의견을 잘 파악한 후 상대방의 의견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고 자신의 의견도 충족시켜 서로가 절충해 절반의 만족을 취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배려’는 자신의 의도를 다소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양보하는 의사 결정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남을 설득하는 여섯 가지 심리 법칙

남을 설득하는 심리적 원리를 설명한 책으로는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가 쓴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Science and Practice)’이 있다. 너무나 재미있게 잘 쓴 책으로 독자를 그야말로 설득해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치알디니 교수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여섯 가지 심리적 법칙이 작용된다고 한다. 그것은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이다.

그는 이 여섯 가지 법칙을 하나하나 수많은 사례와 실험 결과를 들면서 재미있게 설명해 독자를 설득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도 이러한 여섯 가지 원리쯤은 익히 알고 이것을 서로 서로 이용하려고 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상호성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베푼 호의를 그대로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에게 빚을 지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 가능한 한 빨리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해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거래도 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이용한 전략으로서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이란 것이 있다. 즉 먼저 무리하게 요구하고 뒤에 양보하는 척 하면서 상대방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양보하도록 해 본래의 목적한 바를 얻어내는 전략이다.

우리나라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가 이런 전법을 잘 아는 듯하다. 그래서 일단은 서로가 무리한 요구를 먼저 하고는 양보하는 척하면서 원래 목적한 바를 얻으려고 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또한 이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이래서는 원만한 타결이 될 수 없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설득의 원리가 상대방을 나의 의도대로 끌어오려는 방법인 데 비해서 ‘협상’은 상대방의 의도와 나의 의도가 균형적으로 의견을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방법은 매우 민주적이라 할 수 있어서 모두가 만족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협상 코스를 강의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Stuart Diamond) 교수가 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에서는 협상을 ‘상대방이 특별한 행동, 판단, 인식, 감정을 가지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민주적인 협상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이 책을 한 번쯤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좋은 협상을 위해서는 열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보면, 첫째, 목표에 집중하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협상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원래 의도했던 목표와는 거리가 먼 문제에 집착하며 협상을 엉뚱하게 이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설득과는 달리 협상에서는 먼저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제3자, 그리고 자신이 가장 중요성이 낮다고 생각하고 협상해야 성립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 경우 여당은 야당이 야당은 여당이 협상의 상대자로서 가장 중요하고, 제3자는 이를 지켜보는 국민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당의 이해를 가장 중요성이 낮게 보고 협상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협상에서 합의 도출의 계기를 만드는 것으로 인간적 요소가 5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절차적 요소로 37%, 그리고 전문적 지식은 8%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협상 당사자 간의 인간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협상 상대자가 신뢰를 잃어버리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매스컴의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웃으면서 악수하는 자세를 취하는 정치가들이 당리당략에만 골몰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최악의 협상 태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흔히 강한 모습을 보여야 협상에서 이기기 쉽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협상에서 질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다이아몬드 교수는 사실은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협상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정작 협상의 진정한 목표를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협상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감정을 절제하면서 충분히 인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나쁜 협상 방법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막말 접근이다. 이 말은 상대방을 흥분시킬 뿐 합의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하면 결국 상대방은 절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이익임에도 홧김에 떠나버려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못하고 감정만 상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양측 관계만 망칠 뿐 원하는 것을 누구도 얻지 못하고 만다.

협상에 비해 한 차원 더 높은 방법으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이 배려라 할 수 있다. 배려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면서 통찰력을 가지고 먼저 베푸는 것을 말한다. 한상복이 쓴 ‘배려’에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배려다. 배려는 가장 차원이 높은 인간관계의 해결법이다. 그것은 얼핏 보면 전적으로 남을 위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일러스트 허라미
전진문 (사)대구독서포럼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