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현실 앞에서는 감정이 북받친 눈물도 사치스러운 걸까. 굶주림이 일상인 사람들,

쓰레기더미에서 찾아낸 썩은 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그는 이성적이 됐노라 했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주어야 할까.’ 아프리카 말라위, 배우 윤유선의 희망 동행기.
배우 윤유선, 눈물 대신 웃음으로
먼저, 저의 이야기가 아무리 생생한들 현실의 절반, 아니 절반의 절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그 처참함이란, 암담함이란 가서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안타깝다는 말로는,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을 말로 하자니 그야말로 표현의 한계를 느낍니다.

2012년 10월 4일 저는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갔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이 진행하는 ‘스톱 헝거(Stop Hunger)’ 식량 캠페인의 일환으로,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봉사 활동을 떠난 거였죠.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말라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부족 국가를 가진 대륙인 아프리카에서도 식량난이 극심한 곳입니다. 정부가 국가 재난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한 굶주림에 처해 있는 곳이죠. 가난과 굶주림, 그로 인한 각종 질병과 에이즈, 말라리아 등으로 국민 평균 나이가 39세에 불과할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객관적’인 정보들이 말라위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순 없습니다.

사실 제가 말라위행을 제안받고 흔쾌히 수락했던 데는 ‘설마’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TV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끝낸 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고, 무엇보다 오래전 가보았던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죠. 중학교 시절,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차 케냐에 갔었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그러니 아프리카에 대해 전혀 두려울 게 없었던 겁니다. 제가 보았던 그 아프리카는 지극히 일부, 아주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했다는 것을 첫날부터 아주 절실히 깨달았지요.
배우 윤유선, 눈물 대신 웃음으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비행기와 차를 번갈아 갈아타며 꼬박 24시간이 걸려 도착한 말라위. 오랜 여정의 피로를 느낄 새도 없이 아프리카의 현실이 덮쳐 왔습니다. 그나마 그곳에서 가장 형편이 나은 편이라는 숙소마저 전기도 끊기고 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러나 그런 불편쯤은 말라위가 처한 현실에 비하면 투정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방문한 곳은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 시에서 2시간 30분 남짓 떨어진 오지 마을 살리마 치포카 지역이었습니다. 이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은 옥수수, 담배, 면화 농사를 짓지만 그 수입이 극히 미미해서 3~4개월을 연명할 옥수수밖에 얻지 못할 형편입니다. 1년 중 나머지 8~9개월은 남의 집 일을 대신하거나 일용직으로 일을 하는데, 그나마도 하루에 한 끼 죽을 쑤어 먹을 정도의 수입밖에 되지 못합니다.

한 끼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 형편이니 그 나머지 삶이야 말할 것도 없죠. 걸레처럼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얼굴에서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은 이미 수확이 끝난 땅콩 밭에서 끊임없이 흙을 파고 있었습니다. 흙 속에 혹여 묻혀있을지도 모를 땅콩 알을 찾기 위해서였죠. 어쩌다 한두 알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리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

굶주림과 더불어 에이즈(AIDS)는 또 다른 고통입니다. 우리가 마을을 찾은 날도 에이즈로 삶을 마감한 어떤 주민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지요. 에이즈에 걸린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먹일 게 없어 감염될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유를 먹이는 현실, 그런 일이 숱하게 반복되는 곳이 바로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무방비로 에이즈에 노출된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요.

두 번째로 방문한 수도 릴롱궤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1만 평 이상의 쓰레기장, 핀녜 지역의 참담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2012년 4월 필리핀의 쓰레기 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거대한 쓰레기 더미 위에 판자로 집을 짓고 쓰레기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지만, 그곳은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쓰레기 봉지를 뒤져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음식 쓰레기와 상한 먹거리들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치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어릴 때, 그런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잖아요. 지옥에 가면 살아서 본인이 남긴 음식물들을 다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은 쓰레기 봉지에서 감자라도 발견하면 ‘포테이토’를 외치며 좋아했습니다. 인근 축사에서 내다버린 병든 닭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좋아서 춤을 춥니다. 이 쓰레기 마을의 사람들은 버려진 상한 닭을 씻어서 말린 후 삶아 먹거나, 헐값에 내다 팔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음식 쓰레기로 끼니 연명…여기가 바로 ‘지옥’
배우 윤유선, 눈물 대신 웃음으로
병든 닭을 그렇게 내다버리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배탈과 질병을 감수하면서 눈앞의 배고픔을 먼저 채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이곳에 과연 희망이 있기는 할까, 당장의 ‘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감정에 치우친 눈물 대신 이성이 먼저 발동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핀녜 마을에서 열 살짜리 남자 아이 패트릭 챠로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부모와 아이들 모두 에이즈에 걸려 있었는데 먹지 못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가족 역시 썩은 닭과 쌀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패트릭은 상하지 않은 신선한 쌀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 이 아이에겐 소원이라니…. 자기 자식에게 어쩔 수 없이 상한 음식이라도 먹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떨지, 저 역시 두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마음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평생 동안 달걀 하나 먹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인 거죠.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차고 넘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풍족하진 않아도 이들이 제대로 된 끼니만이라도 챙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비참한 현실을 지켜보는 내내 저는 눈물보다 웃음을 앞세웠습니다. 고단한 삶에 찌들어 표정까지 잃어버린 사람들과 최소한의 배고픔도 해결하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제 웃음이 어떤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배우 윤유선, 눈물 대신 웃음으로
말라위에서 보낸 시간들은 제 삶의 가치관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나누고 함께 하는 삶에 앞으로는 저의 가족들도 동행할 생각입니다. 말라위에서 돌아와 지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이 좋은 활동에 뜻을 모아보자는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세상엔 아직 따뜻한 마음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말라위 아이들의 미래에도 조금씩 빛이 들겠지요.
※이 글은 윤유선 씨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