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는 새해의 시작과 함께 시계 칼럼 워치 더 워치스(Watch the Watches)를 연재합니다. 남성 패션의 가장 럭셔리한 호사로 일컬어지는 하이엔드 워치,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면 지금부터 이 칼럼에 집중하셔도 좋습니다.

1801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최초로 개발한 투르비옹.
1801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최초로 개발한 투르비옹.
여성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원망(?)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시계, 아득히 멀어져가는 그 시계의 초침 소리에 한숨 한 번, 거울 볼 때마다 탄력을 잃고 아래로만 처져가는 피부를 보며 한숨 또 한 번.

혹자는 세월과 상관없이 매몰차게(?) 피부를 당겨 내리는 중력을 탓하기도 하지요. 과학적으로 얼마나 입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둥근 지구에 우리가 멀쩡히 서있을 수 있는 것이 중력 덕택인 걸 보면 중력이 피부를 당겨 내리는 데 일조를 한다는 말이 완전한 억측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 중력이 끌어당기는 것이 지구 위의 모든 물체다 보니 시계를 만드는 장인들에게도 중력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부품 하나까지 손으로 깎아 만드는 핸드메이드 시계는 그만큼 정교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겠죠.

배터리가 다 소모될 때까지 째깍째깍 오차 없이 가는 배터리 시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핸드메이드 시계의 복병이 있으니 바로 중력이란 힘입니다. 구조상 시계의 위치(정확히 밸런스의 위치)에 따라 변하는 중력이 밸런스의 속도를 빨라지게도, 느려지게도 하다 보니 시간에 오차가 생기더란 얘기죠. 전 세계를 무대로 뛰는 비즈니스맨이라면 보통 사람들보다 자주 겪는 귀찮은 경험일 겁니다. 매번 용두를 돌려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할 테니까요.

인류의 불편함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탄생시키듯 시간 오차를 발생시키는 중력 또한 인류(시계 장인)가 뒷짐 진 채 관망만하고 있지는 않았으니, 1801년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 Louis Breguet)가 개발한 투르비옹(tourbillon)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 하이엔드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하지요.

투르비옹(원어에 좀 더 가깝게 발음하자면 ‘뚜르비옹’)은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을 뜻하는 말로 브레게가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획득한 밸런스 이스케이프먼트(이번 칼럼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까지는 생략합니다) 시스템입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시계의 정확성을 통제하는 시계의 두뇌 정도가 되겠지요.

브레게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이기도 한데요, 지구중력으로 심하게 발생했던 시간의 오차를 획기적으로 극소화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까지 ‘투르비옹’ 하면 ‘브레게’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투르비옹 기술의 ‘조상’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1805년부터 1823년까지 그의 생전에 판매한 투르비옹이 35개에 불과했을 정도라니 한 개의 투르비옹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엄청난 노력과 정확성이 요구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쯤 되면 투르비옹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해지실 겁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시계 다이얼 위에 초침만큼이나 바쁘게 회전하며 움직이는 작은 원통을 찾는 것인데, 보통은 6시 방향에 있습니다.

조그만 케이지같이 생긴 원통 안을 들여다보면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 이스케이프먼트가 1분에 한 바퀴씩 돌고 있는데, 바로 이 부품들의 박진감 넘치는 자전이 중력으로 인한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것이죠. 투르비옹은 206개 정도의 부품을 각각 무게 0.3g 이하로 만들어야 하는 고난이도 기술로 전 세계 워치메이커 가운데 120여 명 정도만이 완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투르비옹 워치의 가치가 만만치 않은 이유입니다.

투르비옹은 어쩌면 중력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에 항변하는 인간의 도전정신이 탄생시킨 결과물이 아닐까요.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도전에 피부과 문턱을 오르내리는 일 외에 어떤 것이 있을지 해답을 아는 분 어디 안 계신가요.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