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BUCKET LIST

인도 서남부 해안, 아라비아 해와 마주하며 자리한 케랄라(Kerala). 우리가 상상하던 인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과 예쁜 리조트,

열대의 야자나무 숲이 우거진 호수와 수로를 따라 유유히 떠다니는 하우스보트(house boat), 거대한 산 능선을 따라서는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 그리스도교 등 각기 다른 종교 문화가 조화를 이룬 유적과 문화는 케랄라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향신료’다.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인도 케랄라 kerala
인도가 아닌 인도의 풍경, 코친

케랄라 공항에 비치된 케랄라 안내 책자에는 케랄라가 인도에서 가장 깨끗한 지역으로 소개돼 있다. 문맹률 0%, 인도에서 유아사망률이 가장 낮고 평균 수명이 가장 긴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안내 책자의 설명처럼 아수라 같은 뭄바이 공항을 거쳐 케랄라에 도착해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이곳이 인도일까’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풍경은 한없이 평온했다.

케랄라 여행의 시작은 항구 도시 코친(Cochin)이다. 아라비아 해와 인도 최대의 벰바나드(Vembanad) 호수(1512㎢)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처음 마주하는 코친의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이질적이다. 포구를 따라서는 독특한 생김새의 중국식 어망이 해변에 펼쳐져 있고 거리에는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코친은 인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항구. 예로부터 케랄라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카더몬(cardamon), 후추, 너트메그(nutmeg·육두구) 같은 값비싼 향료들이 코친을 통해 중동과 유럽으로 실려 나갔다. 중국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이 몰려들어 각축을 벌였다.

코친을 찾은 여행자들은 포구부터 달려간다. 고깃배가 드나드는 넓은 포구에는 집채만한 어망 20여 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포구에 서자마자 비릿한 냄새가 콧속으로 끼쳐온다.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중국식 어망의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20m가 족히 넘을 법한 기다란 나무 5개에 그물을 엮어 펼치고 커다란 나무로 지지대를 만든다. 기중기 형태로 그물을 내렸다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이 어업 방법은 원래 중국 광둥(廣東)성의 어부들이 하던 것으로 1400년대 몽골군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전파했다고 한다.
테카디 야생동물 보호구역.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며 야생동물과 눈을 맞춘다.
테카디 야생동물 보호구역.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며 야생동물과 눈을 맞춘다.
코친의 포구에는 중국식 어망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코친의 포구에는 중국식 어망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흔적은 포구에서 10분 거리인 마탄체리(Mattancherry) 지구에서 엿볼 수 있다. 이곳에는 인도 최초의 유럽형 교회인 성 프란시스 성당이 있는데 여기는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 가마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인도양 개척 항해에 나선 다 가마는 1524년 포르투갈의 인도 무역 책임자로 부임했다가 과로로 숨지고 성 프란시스 성당에 묻혔다. 성당 한쪽에는 포르투갈 항해사의 모습을 담은 액자와 그의 무덤을 덮었을 묘석이 놓여있는데, 그의 유해는 12년간 이곳에 있다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마탄체리 궁전도 꼭 둘러봐야 할 유적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건설해 1555년에 코친의 지배자인 비라 케랄라 바르마에게 선사한 건축물로 1663년에 네덜란드가 증축한 후 ‘네덜란드 궁전(Dutch Palace)’으로 불리게 됐다.
테카디 향신료 농원의 풍경.
테카디 향신료 농원의 풍경.
인도 최초의 유럽형 교회인 성 프란시스 성당.
인도 최초의 유럽형 교회인 성 프란시스 성당.
마탄체리 궁전에서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향신료와 그림, 탈, 인형, 목공예품 등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을 지나 유대인 회당에 닿는다. 향신료 무역을 위해 자리 잡았던 유대인들은 다 가마가 상륙하기 이전까지 이곳 상권을 주도했다.

한때 꽤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지만 20세기 중엽 이스라엘 건국 이후 모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딱 9명만 남았다. 긴 바지를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이곳 내부에는 중국 광둥성에서 왔다는 대리석 바닥과 벨기에에서 수입한 촛대가 있다.

코친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이 카타칼리(Kathakali) 관람이다. 인도의 5대 고전 무용 가운데 하나로 ‘카타’는 이야기, ‘칼리’는 연극을 뜻한다. 어두침침한 무대 한쪽에 악사가 자리를 잡고 앉아 북을 두드리고, 두 명의 배우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한다. 잔뜩 부풀린 치마를 입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배우는 모두 남자다.
인도의 5대 고전 무용 중 하나인 카타칼리 공연.
인도의 5대 고전 무용 중 하나인 카타칼리 공연.
테카디의 거리 풍경.
테카디의 거리 풍경.
남인도의 야생과 만나다, 테카디

코친을 나온 여정은 동쪽으로 190km 떨어진 테카디(Thekkady)로 향한다. 인도 서부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웨스턴 가츠 산맥을 넘어야 한다. 버스를 타고 산을 넘다 보면 거대한 차밭과 만난다. 사방을 둘러봐도 차나무밖에 안 보일 정도로 거대한 차 재배지는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테카디는 향신료로 유명한 지역이다. 여행자들은 향신료 농원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각종 향신료를 구입하기도 한다. 늘 가루 상태로만 봐왔던 후추나무 덩굴,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리는 카더몬, 향긋한 레몬그라스,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올스파이스, 계피 등을 재배하는 농장을 샅샅이 훑어보는 일이 흥미롭다.

테카디의 또 다른 즐거움은 야생동물과 눈을 맞추는 일이다. 테카디에는 남인도에 10여 개 흩어진 야생동물 서식지 가운데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페리야르 야생동물 보호구역(Periyar Wildlife Sanctuary)이 있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나무 사이에는 긴꼬리원숭이가 뛰어다니고, 물속에서 빠져 나온 나뭇가지에는 물총새와 가마우지 같은 야생 조류가 교태를 부리며 앉아 있다. 투어 프로그램은 아침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간단한 음식이 제공되며 망원경도 빌릴 수 있다.
쿠마라콤의 어린아이들.
쿠마라콤의 어린아이들.
테카디 향신료 농원에서 여행자들은 각종 향신료를 구입하기도 한다.쿠마라콤에서 하우스보트를 타고 비밀스럽게 들어가 만나는 고급 리조트의 풍경.
테카디 향신료 농원에서 여행자들은 각종 향신료를 구입하기도 한다.쿠마라콤에서 하우스보트를 타고 비밀스럽게 들어가 만나는 고급 리조트의 풍경.
드넓은 호수에서 즐기는 이국의 휴식, 쿠마라콤

아라비아 해로 흘러드는 44개의 강이 서로 얽혀 있는 케랄라 주의 내륙수로(backwater)는 길이가 무려 900km에 이른다. 열대우림 사이로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강물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처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쿠마라콤(Kumarakom)은 케랄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자 내륙수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쿠마라콤은 인도 내에서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한데, 아탈 베하리 바즈파이 전 인도 수상은 2000년 이곳에서 휴가를 보낸 뒤 “이제 과거의 문제를 풀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해 갈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성명 ‘쿠마라콤의 사색’을 발표하기도 했다.

쿠마라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하우스보트 ‘케투발롬’을 타고 벰바나드 호수와 수로를 여행하는 것이다. 하우스보트는 대나무 틀에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을 얹은 목선. 원래 쌀을 싣던 화물선인 라이스보트를 관광용으로 바꾼 것이다. 보트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침대가 딸린 객실은 기본. 회의실에 부엌과 라운지까지 갖추고 있어 호텔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선장과 요리사, 선원이 함께 탑승한다.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인도 케랄라 kerala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인도 케랄라 kerala
하우스보트를 타는 여정은 말 그대로 유유자적이다. 물길 좌우로는 높다란 야자수들이 이국의 정취를 뽐내며 서 있고 보트는 그 사이를 느린 속도로 흘러간다. 모든 것이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낭만적이다.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수문이 열리더니 하우스보트가 좁은 수로를 따라 들어간다. 보트가 정박한 곳은 고급 리조트. 호수 곳곳에는 이처럼 고급 리조트가 숨어있다. 요가와 낚시는 물론 카누 타기에서 선셋 크루즈까지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인도에 다녀온 이들의 반응은 “꼭 다시 오고 싶다”와 “두 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로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남인도를 여행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인도를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으로 꼽는다. 여행 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케랄라를 ‘꼭 가봐야 할 세계의 50곳’ 가운데 하나, 그것도 지상낙원(paradise found) 분류로 꼽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인도 케랄라 kerala
케랄라 info.

서울에서 출발하는 직항은 없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가서 제트에어웨이즈(9W)로 환승하는 것이 가장 좋다. 9W를 이용하면 서울(또는 부산)에서 케랄라 주까지 가는 항공권을 한번에 발권할 수 있다.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며 인도대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티티서비스코리아 인도비자접수센터(02-790-5672). 통화는 루피화. 1루피는 약 21원. 신용카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9월부터 6월까지가 방문하기 좋다. 7~8월은 몬순(열대우기) 기간이라 기상 조건이 좋지 않다.

연중 기온은 섭씨 22~30도. 케랄라는 인도의 전통 치료법인 아유르베다가 시작된 곳이다. 기원전 600년경 탄생한 아유르베다는 각종 약초와 향신료, 오일을 이용한 인도 전통 의학이다. 케랄라 주에는 아유르베다 치료센터가 많은데 약재에서 추출한 오일로 1~2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는다.

문의 인도정부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02-2265-2235

최갑수 시인·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