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길을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삶을 꾸려가기 때문이다. 그 길은 걸어가기도 하고 낙타를 타고 가기고 하고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빌려가기도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느린, 길 가는 방식은 걷기다. 여름휴가는 길을 걸으며 내가 누구인가 돌아보고 자신을 찾는 여행으로 정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번 호에는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도서’를 선정해 보았다. 남해 바래길, 강화 둘레길 등 우리의 아름다운 길 12곳을 소개하며, 소설 ‘미실’의 저자 김별아 작가가 46일간 총 750km에 이르는 남측 백두대간을 완주한 산행기를 전한다. ‘상실의 시대’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서른일곱에서 마흔까지의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체류 여행기와,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창의력의 원천인 14세 때부터 기록한 비밀노트를 공개한다. 최근 논어 열풍 속에서 역사학자 이덕일이 바라본 역사 속 인물 공자와 고전 ‘논어’를 우리 역사 사례와 대비해 살펴본다.

여행기, 산행기는 의미와 가치 있는 휴가를 설계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르베르의 저서는 따로 목차가 없으니 아무 곳, 어느 때나 마음 가는 대로 펼쳐 보는 맛이 있고, 이덕일의 공자와 고전 ‘논어’를 다룬 도서는 여행의 여정에서 나를 찾고 본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영혼을 치유하는 우리 땅 소울로드 12선

아스팔트를 달리는 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더욱 고도화되고 빨라졌는데, 일부 사람들은 걷는 것에 더욱 매료돼 간다. 빠른 것은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시야도 좁힌다. 그리고 마주치는 인연과도 많은 단절을 준다. 그래서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느림에 대한 재고찰을 시도하고 그 느림을 스스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울로드(신정일 외 지음·청어람미디어)’는 북한산 둘레길, 춘천 봄내길, 강화 둘레길, 남해 바래길, 소백산 자락길, 내포 문화숲길 등 걷기를 사랑하는 열두 사람이 영혼을 울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길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왜 나에게 이 길이 의미가 있는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접고, 생각의 끝을 본다”는 이도 있고, 걷기 시작하면 마음속의 먼지가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필자도 있다.

‘강화 둘레길’에서는 강화 갯바다를 거닐며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 어린 바다를 반추하고, ‘소백산 자락길’에서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통해 역사와 자연의 어우러짐을 돌아본다. ‘홍천 용소계곡길’에서는 원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첩첩산골 홍천 계곡의 숲 내음을 전해준다. ‘철원길’에서는 한국 분단의 비극적 운명을 내포한 철원 금강산 가는 길을 걸으며 전쟁과 분단의 상흔이 평화와 통일의 여정으로 나아가길 기원하는 저자의 가슴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걷기는 창의력과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왼발, 오른발, 왼팔, 오른팔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가운데 발바닥의 신경이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자극해 논리와 직관의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니 아이디어는 번뜩이고 추상은 구체화된다.

요즘 일고 있는 걷기 붐은 건강을 위한 걷기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잃어가고 있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행위를 회복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가 김별아의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그 길을 갔던 기억이 걸음마다 새록새록 합니다. 그때는 옆도 뒤도 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끝없이 이어진 길과 사람의 꽁무니뿐이었습니다. 동네 뒷산도 오르기를 꺼려했던 ‘평지형 인간’으로 마흔 해를 살아낸 몸은 하루 평균 9시간 동안 16km의 산길을 걸으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김별아 지음·해냄)’는 진입로와 탈출로를 합쳐 약 750km에 이르는 남측 백두대간을 완주한 저자가 1차부터 16차까지의 기록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 이어 17차에서 39차까지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천왕봉에서 성삼재, 추풍령에서 큰재, 한계령에서 마등령, 대간령에서 진부령까지 산행을 통해 온몸으로 깨달은 것과 함께 도종환, 안도현, 곽재구 등의 시편들도 함께 들려준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소설 ‘미실’의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움츠리며 걷고 또 걷다 보니 언젠가부터 조금씩 산이 자신을 맞아주기 시작했고, 저자가 다가가는 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길섶의 꽃과 풀이 눈에 들어오고,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이들의 노래와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산이라는, 자연이라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스승 앞에 엎드려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백두대간 산행을 통해 심신이 더욱 탄탄해지고 글도 전보다 여유로워졌다고 고백한다.

“누군가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구도 산을 대신 타줄 수 없습니다. 길 위에서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고,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산이라는, 자연이라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스승 앞에서 나부죽이 엎드려 내가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가 자복했습니다.”

넘어온 산만큼 넘어갈 삶 앞에서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인다는 저자는 산처럼 높은 만큼 더욱 깊게 삶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산을 타는 일은 높은 만큼 깊고, 깊은 만큼 높은 이치를 깨닫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내리막길을 달려가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오르막길을 기어오르면서도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상과 심연은 하나’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흔 살 유럽 여행기

“마흔 살이란 전환점 그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뭔가 한 가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고 싶었다.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진짜 이유처럼 생각된다.”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문학사상사)’는 저자가 1986년 서른일곱에서 1989년 마흔 나이까지 3년에 걸쳐 그리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쓴 여행기다. 하루키는 이 기간 동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했다. 하루키는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에서 실시한 ‘지난 1000년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생존하는 문인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저자는 만약 이 작품들을 일본에서 썼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색채를 띠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수직적으로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질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고립된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의 근원을 파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친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일관된 시점이나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주하는 여행자의 시점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곳에 갔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다는 식으로 마음 가는 대로 썼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클래식 애호가인 박종호 원장은 하루키의 여정과 감성에 대한 찬사를 전한다. “나는 하루키처럼 그리스에서 한때를 보냈다. 그가 갔던 식당과 그가 보았던 고양이들과 그가 겪었던 촌부들과 놀았다. 행복했다. 만약 이 책에 감동하지 못하는 이라면 자신의 감성이 무디어졌음을 탓해도 좋으리라.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글쟁이가 쓴 가장 자유롭고 가장 멋진 일기임은 분명하다. 여행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의 시각을 배워볼 일이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창의력 비밀 노트 엿보기

“수피즘 철학에 따르면,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은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에 속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함께 있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열린책들)’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이름으로 소개됐던 지식백과에 230개 이상의 새로운 항목들을 대폭 추가한 개정 확장판이다. 베르베르가 열네 살 때부터 자신의 상상과 흥미를 끈 새로운 사실들,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역설적인 지식들을 기록한 노트가 바탕이 됐다. 그의 비밀 노트에 적힌 지식, 잠언, 일화, 단상 383편을 엿보며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발원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 책은 문학, 과학, 인류학, 심리학, 전설, 신화, 연금술, 처세 등 온갖 분야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은 따로 목차가 없다. 아무 쪽이나 편하게 펼치고 읽으면 된다. 인간은 왜 자신을 도와준 사람보다 자신이 도와준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되는지(페리숑 씨의 콤플렉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억지 주장을 상대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지(중국 용), 검투사들은 왜 날렵하기보다는 대개 뚱보였는지(검투사) 등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발상을 전환하게 만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본문 중에서 단문 몇 편을 소개한다. ‘장미 한 송이가 제가 지닌 향기를 다 표출하는 데에는 12시간이 필요하다(장미)’,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믿기)’, ‘사랑을 검으로 삼고, 유머를 방패로 삼아라(무기)’.



역사학자 이덕일의 우리 역사로 읽는 ‘논어’

공자는 사실상 두 사람이다. 한 명은 역사상 실존했던 인간 공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공자, 즉 성인(聖人) 공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는 역사상 존재했던 공자라기보다는 이미지의 공자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이덕일 지음·옥당)’는 공자의 일생과 춘추시대 역사를 따라가며 ‘논어’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역사가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 왔는지 설명한다. 또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공자의 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논어’의 이해를 돕고,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인문학적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두 가지 방식의 접근을 통해 ‘논어’의 세계로 안내한다. 첫째는 공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읽는 ‘논어’다. 이를 위해 ‘사기’, ‘공자가어’, ‘춘추좌전’ 등의 방대한 사료를 두루 섭렵해 인간 공자의 일생을 복원했다. 둘째, 동양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논어’의 핵심 사상이 우리 선조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고 역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양한 역사 사례로 살펴본다.
[이달의 책] 일상을 떠나 낯선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 책에서 공자는 천하에 통용되는 원칙을 제시한다. 인간은 출신이나 계급으로 나뉘지 않는다. 도(道)에 나아간 경지에 따라 군자와 소인으로 나뉜다. 자신을 닦는 수기(修己)와 천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치인(治人)이 결합된 인물이 군자다. 끊임없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군자가 천하 평화 실현을 위해 나서야 한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잘 사는 길, 안으로는 인격 완성에 힘쓰고 밖으로는 천하의 평화를 갈구하는 것이 21세기 군자의 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자는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양극화로 고통받는 21세기에 다시 살아난다.

자신을 닦는 수신(修身)과 타인을 위하는 위인(爲人). 공자의 제자들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을 ‘논어’의 가장 앞에 배치한 의도일 것이다. 수기이인(修己利人)이야말로 유학에서 말하는 배움(學)의 시작이자 끝이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ktkang21@han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