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재테크


와인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빈티지(vintage)다. 같은 샤토에서 나온 와인이라 하더라도 빈티지가 다르면 전혀 다른 가격대를 형성한다. 탁월한 재배 조건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기념할 만한 빈티지를 소개한다.
[Wine] 역사에 기록될 탁월한 빈티지
와인을 투자 대상 또는 컬렉션 대상으로 삼는다면 아무래도 좋은 빈티지의 와인을 구하는 것이 좋다. 그럼 어떤 해가 좋은 해인가. 20세기 들어 가장 좋은 빈티지는 1945년이라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전쟁이 끝난 후에 지친 인류에게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1945년 빈티지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다행히도 프랑스 와인업자와 영국 와인상들은 기록을 보존하는 데 아주 신경을 많이 써서 관련된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 지역별로 그해 강수량이 어땠는지, 기온은 어땠는지, 수확은 언제 시작했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에 해당 빈티지별 시음 자료까지 누적돼 있어 좋은 빈티지에 대한 근거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 19세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별 다섯 개에 해당하는 빈티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지역별로 좋은 빈티지가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르도 지역의 레드 와인에 대해서만 다룬다.
[Wine] 역사에 기록될 탁월한 빈티지
19세기 이전, 기억할 만한 빈티지
Outstanding ★★★★★
1784, 1811, 1825, 1844, 1846, 1847, 1848, 1858, 1864, 1865, 1870,1875, 1899

Very Good ★★★★
1791, 1814, 1861, 1869, 1871, 1874, 1877, 1878, 1893, 1895, 1896

19세기 이전에 기억할 만한 많은 빈티지 중 1899년은 세기말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훌륭한 빈티지로 기억된다. 거의 완벽한 성장 시기와 절정에 달하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이 빈티지만큼 지고한 섬세함과 위대한 기교를 갖춘 와인을 또 찾아볼 수 있을까. 가격도 많이 올라 비싸게 거래됐다.
[Wine] 역사에 기록될 탁월한 빈티지
1900~50년, 최고의 빈티지
Outstanding ★★★★★
1900, 1920, 1926, 1928, 1929, 1945, 1947, 1949

Very Good ★★★★
1904, 1911, 1921, 1934

1900년은 1899년과 함께 쌍둥이를 이루는 빈티지다. 1899년이 위대한 기교를 갖추고 섬세한 여성적 매력이 있는 반면, 1900년은 구조감이 있고 균형 잡혀 있으면서도 매우 인상적인 와인이 생산됐다. 날씨도 좋았고, 포도도 어느 지역에서나 균질적으로 아주 훌륭해서 최상급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포도원 주인들은 별로 이득을 남기지 못했다. 1899년도에 훌륭한 와인이 생산돼 가격이 높아져 네고시앙들이 압력을 넣어 1900년도 와인 가격을 낮추도록 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 1920년대에는 훌륭한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된 시기다. 1920년은 그 시기를 시작하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7월과 8월의 날씨가 너무 추워 포도 열매가 영글기도 전에 썩어 들어가는 문제가 생겨 수확량이 줄어들었지만 9월의 강렬한 햇살로 만회할 수 있었다. 적게 생산했으나 품질은 매우 높았다.

1926년은 위대한 빈티지로 기억되는 해다. 길고 무더운 여름 덕에 적게 수확했으나 품질은 매우 좋았다. 1920년대의 경기 부흥기에 걸맞은 좋은 가격에 와인을 내놓아 포도 재배업자에게도 유리한 해였다.
[Wine] 역사에 기록될 탁월한 빈티지
1928년 빈티지도 훌륭하다. 1928년 여름에는 포도 껍질이 두꺼워져서 색이 진하고 타닌이 풍부한 와인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과숙성된 포도 열매에서 풍부한 알코올 볼륨을 얻을 수 있었다. 1920년대 빈티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빈티지다.

이어지는 1929년 빈티지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아하고 뛰어난 와인의 전형을 이루며 1920년대의 마지막을 훌륭하게 장식한 빈티지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빈티지를 낳지 못한 1930년대를 지나 1940년대는 20세기 들어 가장 훌륭한 빈티지라는 1945년이 있다. 1945년은 1961년과 항상 비교되는 빈티지인데 일반적으로 1945년을 한 수 위로 친다. 1945년은 일찍 포도를 수확했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오랫동안 남을 최고 품질의 와인이 생산됐다.

이 해는 수확량이 적었는데, 5월에 서리가 내려 꽃봉오리가 얼어버린 탓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포도송이는 적게 열린 반면, 너무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보낸 덕에 더할 나위 없이 농축된 포도를 얻을 수 있었다. 전쟁 기간 중이라 포도나무들을 재배치하는 일도 없었기에 오래된 나무 또는 잘 성숙한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었고, 양조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새 오크통을 사용했다.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좋은 와인을 좋은 통에 잘 보관해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47년은 전후 3개의 위대한 빈티지(1945·1947·1949)중 두 번째 해다. 여름 내내 뜨거웠고, 수확기에도 거의 열대기후나 다름없었기에 포도 열매의 당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숙성 시에도 기온이 높아 문제가 있었다. 산도가 좀 높아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풍만하고 육감적인 와인이 생산됐으나 약간 위험한 와인도 있다.

1949년은 전후 3개 훌륭한 빈티지 중 마지막 빈티지가 나온 해다. 1949년 빈티지는 농축된 1945년 빈티지, 숙성되고 풍부한 1947년 빈티지와는 스타일이 다르다. 1949년 1월, 2월은 아주 건조했고 꽃이 피는 시기에 춥고 비가 많이 내렸다. 낙과도 많아 수확량이 급감했다. 그러나 여름에는 기록적인 고온으로 메도크에서는 7월 2일 영상 43도까지 올라갔다. 이후에 강풍도 이어졌으나 수확기에는 날씨가 좋았다. 품질은 훌륭했지만 가격은 매주 합리적이어서 네고시앙들이 이 해의 와인을 매우 좋아했다.
[Wine] 역사에 기록될 탁월한 빈티지
1950년~현재, 와인의 역사를 바꾼 빈티지
Outstanding ★★★★★
1953, 1959, 1961, 1982, 1985, 1989, 1990

Very Good ★★★★
1952, 1955, 1962, 1964, 1966, 1970, 1971, 1975, 1986, 1988, 1995,1996, 1999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항상 좋은 와인이 나온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도 예외는 아니다. 1953년은 복합적인 향과 기교 있고 매력적인 보르도 레드 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빈티지다. 열매가 익어가는 내내 좋은 기후는 아니었다. 여름이 대체적으로 뜨겁고 건조하기는 했지만 가끔 강한 비바람으로 성장이 정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확기 동안 날씨가 좋아 전형적인 보르도 레드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59년은 영국 와인상들이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빈티지’라고 칭한 해다. 보르도 와인상들도 위대한 와인으로 불렀다. 혹자는 산도가 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이에 대해 와인 전문가인 페이노 교수는 와인의 모든 것 즉, 알코올, 추출물, 과육, 타닌이 모두 균질적으로 훌륭하다면 산도는 조금 부족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1961년은 1945년과 자주 비교되는 위대한 빈티지다. 1961년은 1945년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하늘이 알아서 가지치기를 해주었다는 점이다. 1945년에 서리가 심해 꽃봉오리들이 얼어버렸고, 비바람이 심해 꽃가루가 다 날아가 버렸다. 7월에는 지겹게 비가 내렸고, 8월에는 가뭄이 이어졌지만 9월에는 아주 햇볕이 좋았다.

이런 이유로 수확은 적었지만 껍질이 두껍고, 양분이 풍부한 포도 열매를 얻어 색깔이 아주 진하고, 잘 숙성되고, 농축되고, 타닌이 풍부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61년의 훌륭한 와인들은 1945년의 와인을 능가하는 것들도 있다. 약간의 위험요소는 타닌이 두드러져 신선한 과일의 질감을 가려버릴 수 있다는 점 정도다.

1982년은 와인 역사에 이정표가 된 해다. 이 해의 와인 생산으로 와인 시장은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었다. 풍부한 수확량과 좋은 품질이 경제적인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기후도 위대한 빈티지를 만들어내는 데 처음부터 일조해 포도가 성숙하는 데 이상적이었다. 일찍 개화했고 균일했다. 뜨겁고 건조한 여름, 9월 14일부터 먼저 익은 메를로를 수확했는데 이때도 매우 더웠다. 수확기에 이틀 동안 심한 비가 내렸는데 다행히도 그 이후 일기가 좋아 카베르네 소비뇽도 평균적인 품질을 얻을 수 있었다. 타닌은 아주 풍부했다.

1985년은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을 지나면서 포도나무들이 휴면상태를 지속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심한 한파를 입기도 했다. 일찍 개화하고 잘 수분이 돼 포도송이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여름은 길고도 뜨거웠다. 수확도 아주 이상적인 기후에서 마칠 수 있었다.

1989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대한 빈티지다. 1980년대를 훌륭하게 마무리하는 빈티지이기도 하다. 1988, 1989, 1990 세 해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삼총사 빈티지다. 1899년과 1900년 쌍둥이 빈티지에 비견될 만한 좋은 빈티지들이다. 우선 기후가 아주 좋았다. 5월에 벌써 예년보다 3주나 성숙이 빨랐다. 일찍 개화해 완벽한 조건이었다. 포도송이가 잘 성숙된 것에 비해 타닌은 부족했다. 늦게 수확한 포도는 타닌이 보충됐지만 지나친 산도가 문제였다.

이어진 1990년도 아주 훌륭한 빈티지다. 기후는 1989년과 달랐다. 첫 번째 성장 조건에 있어 1월부터 3월까지 이상기후로 날씨가 너무 덥고 햇살이 강했다. 2월 24일에 영상 25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고맙게도 4월에 비가 내렸고, 5월에는 해가 좋았다. 개화는 불규칙했다. 메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카베르네 소비뇽은 그렇지 못했다.
위대한 빈티지의 조건은 하늘이 알아서 해주는 가지치기로부터 시작 됐음을 알 수 있다. 1945년도가 그랬고, 1961년도가 그랬다.
위대한 빈티지의 조건은 하늘이 알아서 해주는 가지치기로부터 시작 됐음을 알 수 있다. 1945년도가 그랬고, 1961년도가 그랬다.
7월에는 지나치게 더웠다. 21일에는 영상 39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런 이상 고온은 역전 현상을 발생시켜 수액이 상승하는 것을 막아 성장에 장애를 초래했다. 하지만 9월에 고마운 비가 내려 대지를 식혀주었고, 9월 중순에는 수확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메를로는 아주 훌륭했고, 늦게 수확한 카베르네 소비뇽도 작고 두꺼워서 농축된 주스를 얻을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위대한 빈티지의 조건은 하늘이 알아서 해주는 가지치기로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1945년도가 그랬고, 1961년도가 그랬다. 수확량은 줄어들었지만 몇 송이 남지 않은 포도송이에 포도나무는 모든 영양분을 집중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포도 열매를 익게 만들었다. 요즈음 포도나무 한 그루에 포도송이를 4~5개만 남기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위대한 빈티지가 생산된 조건을 인위적으로 따라하기 위함이다.

그 이후의 조건은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포도 열매가 맺히고 성장하는 동안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 이어지면 이상적인데, 그렇지 않더라도 수확기에 날씨가 좋다면 이를 만회해 좋은 와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0년, 2005년 빈티지가 별 다섯 개에 해당하며, 2003년과 2009년도 훌륭한 빈티지로 손꼽힌다.




김재현 하나은행 WM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