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Rousseau

유치찬란을 아시나요?

[최선호의 아트 오디세이] 현실을 꿈처럼 걷는 황홀한 세상
루소 씨에게

당신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어린아이가 돼버린 느낌입니다. 유치찬란해서 아름다운, 유치하고도 찬란해서 더 아름다운, 하지만 남의 눈을 마음에 담지 않고 당신 고집대로 평생 유치하게 그려낸 당신의 철학을 존경합니다.

처음 당신의 그림을 보았을 때 시골 이발소 그림 같기도 하고 초등학생 습작 같기도 해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파리 센 강변 좌판에 펼쳐놓고 관광객을 상대로 파는 싸구려 그림이 더 맞을 것 같았지요. 참 유치하구나. 화집의 페이지가 그냥 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정글이 보이고, 사막에서 집시가 꿈을 꾸고, 사자가 나타나고, 야드비가의 여인이 누워 있고, 악어가 피를 흘리고, 침팬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정글의 꽃과 새가 등장하더니 심지어는 하늘에 비행선이 뜨고 에펠탑이 보이더군요. 그림이 새롭게 보였어요. 점점 그림에 눈길이 멈추었지요.

하. 이것 봐라. 재미있네. 어쩜 이리 즐거운 그림그리기를 하실까. 당신에게 쉬워 보이는 어려움이겠지만 남들은 동화 속 세상 같이 보기에 쉽고 머리도 아프지 않아 그냥 좋아해요. 당신이 그린 인물의 초상은 천진하고, 풍경화는 칠하고 또 칠하고 고치고 또 고쳐 재주 못난 화가의 고집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지만 그것도 좋아요.

세월이 가고 초현실주의 화풍이 새롭게 조명돼 이제 당신은 원조 초현실 화가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서 계시네요. 이제 알아요. 당신의 그림은 하나도 유치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찬란하게 빛납니다. 당신이 세상에 있기에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게 보이는지….

세상이 당신을 알아주기에 세상이 얼마나 꿈으로 가득 차 있는지, 꿈속 같은 세상을 우리는 곁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별처럼 세상의 꿈을 화면에 담고 언제나 피에로의 우스운 몸짓이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쁨을 전해줍니다. 하늘나라의 제우스 신전의 장식화도 당신의 유치찬란한 정글 그림으로 장식했다지요. 당신은 진정 멋진 화가입니다. 2011년 겨울. 수화당


편지를 썼다. 어디로 부칠지 몰라 그냥 책상 위에 두었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1844~1910)는 집시가 잠든 사막 한가운데를 휘적휘적 카이젤 수염을 휘날리며 걸어간다. 뱀을 부리는 정글의 어디쯤이든, 아니면 파리 센 강변 어느 길모퉁이든 루소가 붓끝으로 밟고 지나간 화면 속에는 초현실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유치찬란 모드로, 유치찬란하게.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 1908년, 캔버스에 유화, 172×191.5cm, 클리블랜드 미술관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 1908년, 캔버스에 유화, 172×191.5cm, 클리블랜드 미술관
, 1908년, 캔버스에 유화, 172×191.5cm, 클리블랜드 미술관">
파리 풍경

루소는 1884년 5월 12일 프랑스 브르통 지방의 작은 도시 라발에서 함석 일을 하는 양철장이 쥘리앵 루소와 엘레 오노르 사이에 태어났다. 루소의 일생은 그다지 뚜렷한 특징이 없다. 어릴 적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는 것과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서 두어 차례 유급을 하고 일찍 교문을 나서야 했다는 것, 군 복무를 마치고 1871년 12월 27세에 파리 세관에 하급 관리로 취직해 1893년 세관 일을 그만둘 때까지 짬짬이 틈을 내어 그림을 그렸다는 것 정도다.
<자유의 여신이 제22회 앙뎅팡당 전에 출품한 미술가들을 초대하다>, 1906년, 캔버스에 유화, 175×118cm,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자유의 여신이 제22회 앙뎅팡당 전에 출품한 미술가들을 초대하다>, 1906년, 캔버스에 유화, 175×118cm,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06년, 캔버스에 유화, 175×118cm,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요즘으로 치면 본업은 세관원이요, 취미가 그림인 완전한 아마추어였지만 루소는 박물관 미술 복제품 허가도 받고 파리의 시인 알프레드와 피카소 브라크와도 사귀면서 파리 화단을 쥐고 흔든 화상 볼라르도 만났다. 볼라르는 루소의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본 척도 안 했지만 10년쯤 지나고 그의 정글 그림이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얻자 제발 그림 좀 넘겨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됐다.

루소는 파리 풍경을 그렸다. 파리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있고, 강변으로 낚싯줄을 드리우거나 산책을 하거나 느린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둔하고 우직하게 그렸다. 루소에게는 낮선 풍경을 제 눈으로 읽어내는 안목이 있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그림을 배우는 초보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1889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만국박람회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참가국 국민과 신상품이겠지만 박람회에서 제일 떠들썩한 화젯거리는 단연 에펠탑이었다. 센 강변에 우뚝 선 에펠탑은 박람회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였다. 그해 처음 전깃불 조명이 박람회에 사용돼 덕분에 늦게까지 입장이 허용되고 에펠탑 위로 설치한 큼직한 조명탑이 파리 시내를 비추는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했다. 루소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았다.
<나. 초상-풍경>, 1890년, 캔버스에 유화, 143×110cm, 프라하 국립미술관
<나. 초상-풍경>, 1890년, 캔버스에 유화, 143×110cm, 프라하 국립미술관
, 1890년, 캔버스에 유화, 143×110cm, 프라하 국립미술관">
<나. 초상-풍경>에서 루소는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포기했다. 루소는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하고 부유한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자화상에 애국심에서 우러나는 프랑스의 기술적 성과를 보여주는 두 가지 상징물인 에펠탑과 열기구를 그려 넣었다. 당시 화가들은 에펠탑이 흉물이라고 화면에 그려 넣기를 꺼려했지만 유일하게 쇠라만이 루소보다 1년 앞서 에펠탑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루소는 자신의 그림 속 곳곳에 만국기가 등장하고 프랑스 혁명의 환희를 표현하는 등 신념에 찬 애국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기존의 살롱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공개적으로 지식층의 전위미술과 경쟁했다. 이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정글 그림

루소의 정글 그림에는 뻥튀기보다 더 뻥스런 과장이 있다. 루소는 천연덕스럽게 파리 한복판의 아틀리에 의자에 앉아 열대 원시림을 그렸다. 루소의 상상력은 파리의 대형 열대식물원 ‘자뎅 드 프랑트’에서 자라는 열대식물과 서점에서 간행된 박물지의 삽화와 사진을 통해 열대 나뭇잎들이 그림 속에서 쑥쑥 자라나 커다란 화초가 되고 빽빽한 원시림이 됐다.
<뱀 부리는 사람>, 1907년, 캔버스에 유화, 169×189.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뱀 부리는 사람>, 1907년, 캔버스에 유화, 169×189.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 1907년, 캔버스에 유화, 169×189.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파리의 식물원에는 열대식물들 말고도 볼 만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국적인 식물들 사이에 분수며 조각 장식품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미에가 국립식물원 자연사박물관을 위해서 만든 작품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루소는 호랑이가 물소를 잡아 넘어뜨리는 장면을 그리면서 프레미에의 조각품을 떠올렸다.

아무리 해도 정글 풍경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서점에 가서 동식물 도감과 박물지를 들추어 보았다. 그 안에는 온갖 열대식물과 동물들의 사진과 삽화가 한가득 있었다. 루소는 커다란 캔버스에 이 세상 동물들이 우글대는 멋진 동물원과 식물원을 그리고 싶었다. 정글에 사자가 있고, 악어가 숲속에서 피 흘린다. 물소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정글로 들어와 호랑이의 먹이가 되고 침팬지, 원숭이들이 깃털이 곱고 부리가 아름다운 정글 새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그만 풀꽃도 커다란 야자수만큼 부풀려서 그렸고, 한 군데로 모을 수 없는 풍경도 한 군데로 모아 마치 열대 동식물 인증 사진을 찍듯 그려냈다.
<굶주린 사자>, 1905년, 캔버스에 유화, 201.5×301.5cm, 개인소장
<굶주린 사자>, 1905년, 캔버스에 유화, 201.5×301.5cm, 개인소장
, 1905년, 캔버스에 유화, 201.5×301.5cm, 개인소장">
루소는 태어나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파리 밖 지척에 있는 아프리카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파리 사람들에게 마치 아프리카 탐험을 마치고 곧 돌아와 그린 것처럼 생생하게 과장하고 뻥 튀겼다. 사람들은 루소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열대의 정글 원시림에 다녀와서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루소의 타고난 ‘뻥쟁이’기질이 한몫했다. 1863년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 원정을 떠난 일이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 수도를 함락하고 오스트리아 선제후 막시밀리안 백작을 멕시코 황제로 임명했다. 뒤이어 멕시코에서 봉기가 일어나 주둔한 프랑스 군대가 퇴각했다.

루소는 자기가 원정군에 참전해서 싸우다가 구사일생으로 귀환했다고 허풍을 쳤다. 하급 세관원으로, 아마추어 화가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던 그에게 이렇게라도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지어낸 말이었다. 정글 풍경도 루소가 제 입으로 다녀와서 보고 그린 풍경이라고 떠벌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믿든 말든 루소는 일종의 과대망상증이 있었다. 그 과대망상이 어쩌면 이리 멋진 정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 덕분에 그림의 전달력과 흡입력은 더욱 강력해졌고, 결국 그는 정글의 화가로 굳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주는 힘이야말로 예술가의 일용할 양식이다. 누구나 다 보고 즐기는 똑같은 현상이라도 어떻게 차용하고 활용하는가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꿈>(부분), 1910년, 캔버스에 유화, 204.5×298.5cm, 뉴욕 근대미술관
<꿈>(부분), 1910년, 캔버스에 유화, 204.5×298.5cm, 뉴욕 근대미술관
(부분), 1910년, 캔버스에 유화, 204.5×298.5cm, 뉴욕 근대미술관">
루소의 그림 <꿈>의 일부를 보자. 원시림 한가운데 뜬금없이 알몸의 여인 야드비가가 몸을 돌려 정글을 둘러보고 있다. 숲속에는 사자와 코끼리, 새들이 모두 주시하고, 평화롭게 잠든 야드비가의 아름다운 꿈속에서 뱀을 벗처럼 부리는 사람이 부는 피리소리에 귀 기울인다. 달빛이 꽃잎과 신록의 나무 위에서 빛날 때 황갈색 뱀이 피리가 내는 선율에 귀 기울인다. 비평가들은 루소의 꿈과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그렸는지 가시 돋친 질문을 퍼부었다. 루소의 대답은 간단했다.

“원시림 풍경에 무슨 붉은 소파냐고요? 야드비가는 소파에서 잠시 잠든 채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요술쟁이가 부는 피리소리를 듣습니다. 구성진 피리 선율이 잠든 숲을 깨웁니다. 야드비가가 소파에 누워 있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원시림 한복판에다가 소파를 그렸습니다.”

야드비가는 누구일까? 루소가 젊어서 사랑했던 폴란드 여인일까. 루소만이 알 뿐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잠자는 집시

사막에 밤이 찾아왔다. 짙고 푸른 밤에 휘영청 보름달이 뜨고 별빛이 성긋성긋 박혀 있다. 벌레 한 마리 없는 정적, 바람도 잠들었다. 투명한 하늘은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깨질 만큼 투명하면서도 단단해 보인다. 달빛이 만들어내는 신비, 어린왕자가 사막 저 편에서 자박자박 걸어 올 듯하다.
<잠자는 집시>, 1897년, 캔버스에 유화, 129.5×200.7cm, 뉴욕 근대미술관
<잠자는 집시>, 1897년, 캔버스에 유화, 129.5×200.7cm, 뉴욕 근대미술관
, 1897년, 캔버스에 유화, 129.5×200.7cm, 뉴욕 근대미술관">
사막의 모래 냄새가 피어오르는 언덕에 집시가 누워 있다. 집시는 검은 피부에 오랜 여행 탓으로 지친 듯 몸을 꼼짝하지 않고 있다. 맨발의 순례자처럼 신발을 벗고 잠을 자면서도 지팡이를 놓지 않는다. 무지개 색깔 고운 옷을 입은 여인은 장밋빛 두건을 감싸고 있다. 지친 순례 길에도 한줄기 빛이 돼준 만돌린이 고단하게 여인의 옆자리에 나란히 누워 있다.

살림살이라고는 고작 찰흙으로 빚은 물병 하나. 먼 길의 피로를 적셔줄 샘물을 담았을 것이다. 눈은 반쯤 감고 입은 반쯤 열려 있다. 달빛이 저 홀로 휘영청 밝다. 사자 한 마리가 여인의 잠을 지킨다. 호기심일까.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의 신비로운 밤기운이 여인과 사자를 감싼다. 사자도 달빛에 홀려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무런 적의가 없는 무심한 눈길, 사자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 두는 힘은 무얼까.

그림의 제목은 <잠자는 집시>다. 수수께끼같이 알쏭달쏭한 그림이다. 그림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림이 던져주는 무언의 메시지는 고독, 꿈, 삶 이런 것들이 아닐까.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시인 장 콕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막에 왔다. 사막에 누운 집시 여인은 먼 길을 걸어왔다. 집시 여인이 꿈길을 따라서 우리에게 왔다. 푸른 강이 흐르고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이곳까지…. 집시 여인의 꿈속에 사자가 나타났다. 꿈길을 굽이돌아 흐르는 푸른 강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림 전체에 두터운 수수께끼의 장막이 휘감아 돈다. 이 장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달빛이 드리운 장막일까. 집시 여인은 이런 사막에 간 적이 없다. 아니, 집시 여인은 여기에 없다. 집시 여인은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꿈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꿈길을 걷고 있다. 삶이 마치 사막을 헤매는 집시처럼 고단하지만 황홀하게, 하지만 현실을 꿈처럼 걸어가고 있다.
[최선호의 아트 오디세이] 현실을 꿈처럼 걷는 황홀한 세상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