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타고난 목소리가 좋으니 노래 한 번 해보라”는 아내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성악이 올해로 6년째. 안과의사 박영순 박사는 이제 ‘닥터 바리톤’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사람이 하는 일에 되지 않을 것이 없다’는, 큰딸을 위한 메시지의 의미로 시작하게 된 독창회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나를 위한, 딸을 위한 용기에서 출발했다는 박 원장의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이야기다.
[Life Balance]또 하나의 이름 ‘닥터 바리톤’으로
서울 강남에 자리한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11월 영산아트홀에서 열렸던 자선음악회 포스터다. 쟁쟁한 음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그저 취미 차원의 음악 활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으로는 세 번째 무대였지만, 사이사이에 지인들의 초청으로 갤러리 살롱음악회, 대학 동창회, 신년회 등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자선음악회 같은 경우엔 특별한 의미를 담았었는데, 공연은 무료였지만 김태수 회장이란 분께서 백내장 환자를 위한 무료 수술을 위해 거액을 쾌척하셨고, 100여 명에 이르는 환자의 백내장 수술을 제가 집도했거든요.”

한국인 최초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입상자 소프라노 이정애 교수가 초청한 몰도바 국립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 음악회 포스터 속 그는 ‘안과의사 박영순’이 아닌 ‘바리톤 박영순’이 분명했다.



레슨 1년 만에 문호아트홀서 독창회

국제노안연구소장이기도 한 박 원장은 노안 전문의로 유명하다. 과거에 비해 일찍 시작되는 노안 환자를 위한 라식수술을 주로 하는 그의 안과 병원은 인터뷰를 위해 찾은 날도 환자들로 북적였다. 인터뷰와 수술실을 오가는 그의 발걸음이 쉴 새 없이 분주했다.

“안과 수술은 한 마디로 진퇴양난의 한가운데라고 해야 할까요. 앞도 뒤도 없죠. 사람의 눈이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침착함과 함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안과의사로 단련된 집중력이 노래를 할 때 무대에서의 집중력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대에서 잘 떨지도 않아요. 하하.”

성악은 생각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다.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한 아내가 “당신 목소리가 좋으니 노래 한 번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한 것.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면서도 타고난 목소리로 칭찬을 많이 들었던 터라 용기를 냈다. 그의 동생은 ‘눈이 큰 아이’ 등의 곡으로 1970~80년대 활동했던 남성 듀오 ‘버들피리’의 멤버 박장순 씨로, 두 형제는 기타 합주로 무대에 자주 서왔다.

일단 스승부터 찾았다. 6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바리톤 이재환 중앙대 음대 교수에게, 몇 해 전부터는 바리톤 임한귀 씨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 꾸준한 연습과 크고 작은 무대 ‘구력’으로 단련이 된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성악 레슨을 빠뜨리지 않는다. 박 원장은 얘기를 하는 도중 성악 레슨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가졌던 첫 번째 독창회 실황 음반을 찾아 보여줬다. 그런데 만만찮다. 장소는 금호아트홀 내 문호아트홀, 반주자는 우리나라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곡 전곡을 CD 음반으로 만들었던 피아니스트 이연화 교수(현 중앙대 부총장)다. 다소 무모하다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들 즈음, 박 원장의 자초지종이 이어졌다.

“1년쯤 배우고 나니 이재환 교수께서 ‘이제 독창회를 해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승에 대한 맹신이랄까. 해보라고 하니 그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300명가량 오셨는데, 12곡을 부르고 2곡은 앙코르 곡이었어요. 반주자는…, 사실 제 처형이에요. 반주가 아름다우면 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반주 덕도 많이 봤죠.(웃음)”

발성법 자체가 달랐던 성악가의 길은 쉽지 않았다. 한동안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콧소리를 없애고, 자신의 구강 구조에 맞는 호흡법을 찾기까지 끈질기게 매달렸다. 소리를 정확하게 잘 들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스승의 몫이라면, 배운 것을 체화하는 것은 제자의 몫이다. 같은 노래를 CD로 1000번 넘게 듣고 수백 번 따라 불렀다. 차 안에서도, 사이클을 타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노래를 불렀다.



큰딸을 위한 격려의 메시지로 시작한 노래

안과의사와 성악가의 ‘이중생활’ 6년째. 아직도 ‘먼 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노래는 이미 단순한 ‘취미’를 벗어난 듯 보였다. 노래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일까.

“딸이 둘인데, 큰딸이 성악을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래서 예고 성악과를 보냈는데, 아이가 워낙 숫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무대 공포증이 있었어요. 나중엔 성대 결절이 와서 결국 성악가의 길은 포기했죠. 지금은 전공을 바꿔 패션 비즈니스 쪽 일을 하고 있어요. 아내의 권유도 있었지만 아마추어로 성악에 도전한 건 딸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어요. 늙은 아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노래를 6년이나 했지만 지금까지도 어려운 곡이 있고, 또 곡 속에 어려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저는 늘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딸에게 무언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그에게 독창회란 무대는 남달랐을 것 같다. 세 번의 정식 독창회 때마다 전문가의 ‘귀’를 가진 아내는 그것밖에 못하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의 발자국을 큰 ‘흔적’으로 남겨주는 것은 결국 가족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대학 졸업 이후 첼로 활을 내려놓은 아내, 무대가 두려워 성악을 포기한 큰딸에게 그의 노래는 어쩌면 희망과 삶의 열정에 대한 ‘찬양가’일지도 모른다.

“노래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끝이 나는 것도, 종착역이 있는 길도 아니에요. 지금껏 무대에서 내려오면 ‘소리 참 좋다’라는 평가까진 들어봤는데, ‘완성됐다’는 칭찬은 못 들어봤어요.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면서 창조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큰 것 같습니다. 노래는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맛깔스럽게 표현했을 때 듣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노래로 느낄 수 있어요. 거창하게 부르기보다는 깨끗하고 심플한 듯하면서도 신선하게 부르고 싶습니다. 청중이 제 노래에 빨려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마도 최종적인 단계 아닐까요.”

6년 차 바리톤인 그의 롤모델은 ‘바리톤의 시인’이라 불리는 성악가 최현수 씨다. 애창곡은 바리톤이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3대 아리아 가운데 하나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디 프로벤자(Di Provenza il mar, il suol: 비올레타가 보낸 이별의 편지를 읽고 크게 상심한 아들을 위로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표현한 곡)’이다. 연속된 고음으로 어려운 곡이지만 곡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부른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곡이라고.



운동 중독, 그리고 열정 중독

안과의사로서, 성악가로서 특별한 체력 관리 노하우가 있을 법했다. 박 원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해 보이는 피부 빛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다.

“제 신체나이가 35세로 나왔어요(실제는 50대 중반). 일단 눈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아침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면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합니다. 그 덕분에 동년배 친구들보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웃음) 체력 관리를 위한 방법이자 좋은 발성을 위한 운동법은 복싱이에요. 원래는 수영을 했는데, 근래에 지인이 복싱 도장을 오픈하면서 복싱을 하게 됐죠. 복싱이 전신운동이라 오십견 예방에도 좋고, 어깨 근육 발달, 복근 단련에 좋아요. 폐활량이 증대되니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복싱은 두 사람이 하는 운동인데, 상대방이 호락호락하게 놔둘 리 없죠. 맞고 때리는 운동이니 죽자 사자 해야 하죠. 그런데 운동도 운동이지만 복싱 후에 들이키는 물 한 잔이 큰 기쁨이에요. 그 물 한 잔 마시면 인생에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란 생각이 절로 들죠.”

규칙적인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다짐과 동시에 독창회를 앞두고 반드시 준수하는 철칙을 공개했다. 100일 전부터 금주는 기본이요, 보양식을 철저히 챙겨 먹는 것. 특히 성대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감기 예방에 만전을 기한다. 목 관리를 위해 도라지 환(丸)과 은행 가루를 챙겨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주말에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한강 둔치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달린다면, 그를 혹 ‘운동 중독’이라고 봐야 할지.

의술 하나로 평생을 살기엔 너무 허전할 것 같아 삶의 ‘레크리에이션’으로 노래를 선택했다는 그는 노래와 운동, 진료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열린 의사회’ 초대 단장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껏 수차례 몽골, 미얀마 등지에서 무료 의료 봉사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백내장 환자 무료 수술을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그가 ‘바리톤’을 대표해 무대에 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안과의사, 성악가, 나눔을 실천하는 의사라는 세 가지 교집합이랄까. 그런데 그 교집합은 이 세 가지로 끝날 것 같진 않다.

“노래가 제 인생 거의 마지막 도전이에요. 노래 하나만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은 걸요. 일주일에 두 번 레슨 받아야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도 해야죠, 크고 작은 무대 앞두고 연습량도 만만치 않아요. 일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삶을 사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죠.”

다음 독창회에는 꼭 초대해 달라는 인사를 건네며 얻어 온 박 원장의 첫 독창회 CD는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들어볼 수 있었다. 풋풋한 아마추어 바리톤이 남긴 무대의 여백은 우렁찬 관객의 박수소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아내의 권유도 있었지만 아마추어로

성악에 도전한 건 딸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어요. 늙은 아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2007년 10월 금호아트홀 내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박영순 박사의 첫 독창회. 3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그는 12곡을 불렀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