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일, 금융투자협회 3층 불스홀에서는 권영세 국회의원과 금융투자협회 주최로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핵심은 연금 세제개편이었다.
연금 세제개편을 둘러싼 논쟁을 생각하며…
연금제도가 성숙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선 밀도 있는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지원하는 게 바로 연금 세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노후 준비도는 매우 낮다.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늦게 갖춰진 탓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1988년에야 도입돼 이제 30년이 조금 넘었다.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개인연금은 1994년에 도입됐으니 채 20년이 안 된다. 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은 이제 발걸음을 뗀 수준이다.

그러나 시작이 늦었다고 성숙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선 밀도 있는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지원하는 게 바로 연금 세제다. 국민연금은 더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연금 세제를 통한 노후 준비도 향상은 사적 연금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의 논의도 사적 연금의 세제를 인생 100세 시대에 맞게 바꾸자는 것이었다. 잠시 그날 있었던 논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세제상 인센티브에 대한 논란

사적 연금 활성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세제상의 인센티브인데, 한국의 세제 인센티브는 미약하다. 한국의 연금 세제는 납입 단계에서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추가 납입을 합쳐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50세 미만은 1만6500달러, 50세 이상은 2만2000달러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공제 혜택 한도의 비율을 보면 미국은 50세 미만이 35.6%, 50세 이상이 47.4%나 되지만 한국은 19.5%에 불과하다.

그리고 퇴직연금을 수령할 때는 일시금으로 받는 경우와 연금으로 받는 경우의 세제가 다른데, 대체적으로 연금으로 받는 게 불리하다. 이는 연금제도의 취지나 고령화시대 안정적인 노후 소득 확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일시금으로 받으면 기본 공제로 퇴직급여액의 40%를 적용하고 여기에 연분연승법을 적용해 근속연수별 공제를 추가하는 반면에, 연금으로 받으면 연간 공제 한도가 90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연금 수령 시 과세대상소득의 5%가 원천징수 되고, 이후 다른 연금과 합쳐 연간 총 연금액이 600만 원을 초과하면 종합과세까지 된다. 보험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근속연수와 소득이 높고 연금 수령 기간이 짧을수록 연금소득세가 퇴직소득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세제가 퇴직급여의 일시금 선택을 유인하는 것으로 퇴직연금의 취지와도 배치된다.

이런 상황 인식 하에 나온 연금 세제개편안이 납입 단계에서는 현행 400만 원인 소득공제 혜택을 800만 원으로 인상하고, 급여 단계에서는 연금소득공제 한도를 9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확대해 연금으로 수령할 때와 일시금으로 수령할 때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찬성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납입 단계에서의 소득공제 한도 인상에 대해서는 미묘한 의견 대립이 감지된다.

소득공제 한도를 올리자는 데 의견 대립이 있다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법에 따라 이해득실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현행처럼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의 추가 납입을 합쳐 800만 원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둘을 분리해 각각 400만 원으로 별도 세제로 할 것이냐에 따라 계산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 세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가입자의 속성이 다르고 연금제도 간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현재까지는 별도 세제로 가자는 주장이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연금 세제개편을 둘러싼 논쟁을 생각하며…
노란우산공제를 둘러싼 딜레마

한편 지금처럼 둘을 통합해서 800만 원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별도 세제로 갈 경우 자영업자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자영업자의 퇴직연금 가입이 2017년에 가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란우산공제가 그것이다.

노란우산공제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소기업·소상공인공제제도로 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대표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영업자도 얼마든지 이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하면 3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납입금에 대한 압류도 금지돼 있다. 폐업과 같은 유사시는 물론 노후 생활 자금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소득공제 한도를 800만 원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은 바람 빠진 풍선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주장은 근거가 희박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문제도 안고 있다. 부유한 자영업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금과 노란우산공제를 합치면 13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런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소상공인 중 돈 잘 버는 자영업자 말고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최근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노란우산공제 소득공제 한도를 500만 원까지 확대하자는 안이 통과되면 그 혜택은 1500만 원까지 올라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통합으로 800만 원까지 확대하면 불완전 판매와 같이 시장 질서를 혼탁하게 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연금을 퇴직연금인양 판매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 더 많은 수당이나 수수료를 획득할 수 있는 개인연금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득공제 혜택에서는 동일할지 몰라도 서비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운용 현황을 자세히 알려주지만, 개인연금에는 그런 것이 없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지금까지는 개인연금 관리에도 문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제반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합쳐서 800만 원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 영업 논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보다는 오히려 노후 준비도가 부족하고 이를 만회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적은 50세 이상의 중장년층을 위한 연금 세제를 생각하면 어떨까. 미국처럼 50세 이상의 근로자에게는 추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준다거나, 근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개인연금 가입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이 더욱 절실한 연금 세제가 아닐까.


노란우산공제를 간과한 채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소득공제 한도를 800만 원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은 바람 빠진 풍선과 다를 바가 없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