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르세에 가서 그림을 보았을 때, 여러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있었지만 유난히 일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많다고 느꼈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른 미술관은 중세부터 근대 이전의 그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중세시대의 주제는 거의 성경이나 신화 속 이야기, 아니면 왕이나 귀족, 부유한 상인들의 초상화나 주문, 제작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르세는 근대 인상주의 작품들을 위주로 소장하고 있어 좀 더 우리의 일상에 가까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인상주의란 사조 자체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 운동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일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즐겨 그린 사람들이 있는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소개할까 한다.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마루를 깎는 사람들>(The floor scrapers), 187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방 안에 열심히 일하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웃옷을 벗고 일하는 남자들의 등이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꽤나 더워 보이는 오후. 한쪽 구석에 웃옷을 벗어 던져둔 채 남자들은 열심히 마루를 깎아내고 있다. 역시 빛을 받아 윤이 반질반질 나는 마룻바닥은 이 그림을 가장 감탄하며 보게 하는 부분이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마루를 깎아내는 고된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중이다. 간간이 옆의 동료와 이야기도 나누며, 한쪽 옆에는 따라놓은 와인도 보인다. 그들이 목을 축여가며 일하고 있는 방 안에는 오직 쓱싹쓱싹 마루 깎는 소리만 들려올 뿐.

그림만 보고 있어도 내가 이 방안에서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사진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 이 그림은 눈앞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그 일상의 아름다움
화가인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상속받아 부유하게 생활했다. 그의 삶은 노동자 계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신 가난한 화가들을 돕고 인상주의 전시회 기금을 마련했으며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등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사주곤 했다. 또한 그는 사후에 소장하던 그림들을 국가에 기증해 보다 많은 대중이 수준 높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화가로서 카유보트는 서민들의 일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어떤 특별한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적인 표현 그 자체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직접 노동을 경험해보지 못한 부르주아의 가벼운 취미생활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카유보트의 그림을 보고 난 후에는 그렇게 평가하기엔 너무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본인이 그 고된 노동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더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의 신성함을 표현했다기보다는 리얼리티를 그림으로 멋지게 살려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관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이삭 줍는 여인들>(The gleaners), 1857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번에는 허리를 굽힌 채 일하는 세 명의 여자가 있다. 너무나 유명해 말이 필요 없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이다. 넓게 펼쳐진 황금빛 들판에서 세 명의 여인이 추수 후에 떨어진 낟알들을 줍고 있다. 그들 뒤로는 추수가 끝나 건초더미를 정리하는 일꾼들이 보인다.

동적으로 보이던 카유보트의 그림과는 달리, 밀레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정적인 그림을 그렸다. 여인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순간은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가장 낮게 허리를 구부린 여인들. 낮은 곳에 있지만 근면은 그들이 지닌 커다란 미덕이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그 일상의 아름다움
밀레는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누구보다도 경건한 자세로 일을 하고 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그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일하는 농민의 숭고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밀레의 이런 사상은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여러 점의 밀레 작품을 모작하기도 했다. 다음 그림을 보면 그 점이 피부로 와 닿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휴식>(Rest from work-after Millet), 189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은 밀레의 그림보다 훨씬 강렬하다. 수확 후 낫으로 풀을 베어 열심히 쌓아둔 부부. 일을 마치고 잠시 쌓아놓은 건초더미에 기대어 꿀맛 같은 낮잠을 청한다. 곤히 잠든 두 사람.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내는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고, 얼굴에 모자를 덮고 자고 있는 남자는 신발을 벗어 옆에 두었다. 그 옆에 두 자루의 낫이 부부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 있다. 그들 뒤로 베어놓은 풀을 쌓아둔 수레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한 쌍이 보인다.

노란 들판과 대비되는 파란 하늘, 그리고 농부 부부의 푸른색 옷들이 고흐의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랑과 파랑의 멋진 보색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그 일상의 아름다움
고흐가 가장 존경했던 화가는 밀레였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속에도 밀레를 향한 존경심은 여러 군데 드러나 있다. 고흐의 걸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씨 뿌리는 사람들>은 밀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들이었다.

단,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고귀하고 정적으로 그려낸 밀레와는 달리, 고흐는 서민들 삶의 모습의 투박함을 그대로 나타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밀레의 그림이 마치 종교화처럼 숭고한 분위기라면, 일이 끝나고 너무 고된 나머지 쓰러지듯 누워서 자는 농민들, 그 투박하지만 현실적인 느낌은 밀레와는 다른 고흐의 그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세 명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느낌과 의도는 각기 다를지라도 그들의 작품들은 모두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돌아온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다른 미술관에서 너무 많이 보았던 종교화나 귀족들의 초상화보다 이 그림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던 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자들의 평범한 일상도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다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믿음에 마음 한편으로 동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그 일상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