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iwak trekking 이창주 라이트하우스 픽처스 대표

[LIFE BALANCE] 사서 하는 고생의 미학 아시나요
이창주 라이트하우스 픽처스 대표는 매달 산에 오른다. 등산이 아니라 비박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트레킹은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산의 풍광을 즐기는 여행이며 상황에 맞게 최소한의 장비를 챙겨 산에 오르되, 자연을 벗삼아 하루를 지내고 오는 것이 비박 트레킹”이라며 등산의 종류인 건 맞지만 그냥 등산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비박 트레킹을 경험하고자 대금산을 함께 오르기로 한 3월 15일, 커다란 백팩을 매고 있는 이 대표를 보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한 마디 한다. “산에서 비박하려는 건가? 아직도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구먼, 집 놔두고 왜 거지같이 산에서 자는 감?”

비박이란 말은 독일어인 ­­비바크(biwak), 원래 군대가 야영을 하며 경계병이 밤을 지새는 ‘bi(주변)+wache(감시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는 있지만 산행로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무거운 짐을 지고 여행하는 백패킹과 비슷한 수준이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을 동원해 산을 오르는 클라이밍보다는 한 차원 낮은 등산 여행이 비박 트레킹인 것이다. 산속에서 밤하늘을 지붕 삼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땅 위에서 내 한 몸 누워 잠을 청하는 사서 하는 고생, 그게 바로 비박 트레킹의 미학이다.

이 대표의 첫 아웃도어 스포츠가 비박 트레킹이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2009년 여름휴가 당시 텐트 하나만 구해서 오라는 선배를 따라 오토캠핑을 한 번 경험한 후 어느 순간 캠핑에 빠져들었고 그 후 3여 년 동안은 오토캠핑만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좀 더 액티비한 것은 원했다.

“가족끼리 또는 친구끼리 오손도손 하루를 보내고 오는 오토캠핑은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은 존재하지만 모든 게 준비돼 있는 캠핑이 점점 편하게 느껴졌어요. 좀 더 자연을 그대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또한 사진을 찍는 직업상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어떤 곳을 간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관심 자체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특히, 사진 또한 디지털화되면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활동량은 급격히 줄어들었죠. 몸에 이상이 오면서 자연스레 캠핑보다 좀 더 활동적인 운동을 겸할 수 있는 비박 트레킹에 눈을 돌리게 됐어요. 한 마디로 우연찮게 시작했던 캠핑으로 인해 필연이 된 비박 트레킹의 시작이었죠.”

오토캠핑은 차가 들어가는 곳까지만 갈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비박은 발걸음이 닿는 한 더 깊숙히 들어갈 수 있다는 데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이 대표의 비박 트레킹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지 않은 길을, 풍광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이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서 비박하지 않고는 못 참는 열혈 비박 트레킹 마니아가 됐다.
[LIFE BALANCE] 사서 하는 고생의 미학 아시나요
“봄에는 인천과 가까운 굴업도, 여름에는 물을 따라 가는 계곡 트레킹이 참맛인 인제의 아침가리, 가을에는 외연도를 추천하지만 풍랑으로 배가 끊겨서 못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또한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과 9개의 봉우리가 모여 만든 능선이 부드러운 영남 알프스 역시 가을에 제격입니다. 겨울에는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힌 태백산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최근 등산이 유행 아닌 유행처럼 돼 너무 많은 제약이 생겼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비박을 어느 정도 허용해요. 캠핑 문화가 발전하면서 지킬 수 없는 규제보다는 지킬 수 있는 규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취사를 허용하는 장소를 만들어 놓고 그 외의 장소에서는 금지하든가, 쓰레기는 각자 가져가도록 하는 현실적인 규제를 만들어 놨으면 해요.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불을 피워도 되고 계곡에서 목욕도 가능합니다. 그 대신 썩지 않는 쓰레기는 자발적으로 수거해 가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썩는 음식물 같은 경우에는 동물들을 위해 남겨두고 가도록 돼 있다고 해요. 무조건 금지라는 규제보다는 지킬 수 있는 규제가 언젠가 생기길 바랍니다.”

선배와 둘뿐이었던 이 대표의 첫 비박 트레킹은 7명의 고정 멤버로 이루어진 ‘문밖(MOONBAK)’이라는 모임 결성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그들과 함께 비박을 즐긴다.

“‘문밖’은 아웃도어, 즉 문 밖만 나가면 행복하단 의미로 시작한 이름입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오토캠핑을, 나를 위해선 비박 트레킹을 합니다. 20kg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예약을 걱정하지 않고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게 비박 트레킹의 가장 큰 장점이죠. 오로지 두 발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느릿함이, 자연을 하나하나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아요. 국내에 4000여 개의 산이 존재하는데 되도록 전부 가보려고 해요. 물론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서 몸이 허락할 때까지.”


양정원 기자 neiro@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