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건 타이쿤투자연구소장

월 증권가는 ‘납량특집(納凉特輯)’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투자 심리가 냉각됐다. 미국 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 Prime Mortgage) 충격파가 전 세계 증시를 강타하면서 국내 주가지수도 급락세를 보였다. 연일 계속되는 외국인의 매도로 주가는 순식간에 1800 초반으로 밀렸고, 개미들의 아우성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손태건 타이쿤투자연구소장(필명 타이쿤)은 요즘 같은 주가 격변기에 더욱 주목 받는 재야 고수다. 기술적 분석의 대가로 통하는 그는 일반인보다는 증권사 직원들과 재야 고수들 사이에 명성이 높다. 손 소장은 특히 2005년 자신이 창안한 ‘타이쿤 파동이론’을 근거로 최근의 주가 하락을 예측해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6월 14일 주가지수 1192.09 바닥과 2006년 12월 1일 주가지수 1436.80 단기 천정을 정확히 맞히기도 했다.그의 ‘신들린’ 예측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이다. 1997년 6월 26일 일은증권(현 브릿지증권) 부산지점장으로 발령 받았던 그는 차트 분석을 통해 다가오는 시장의 위험을 깨닫기 시작했다. 당시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대폭락장을 앞두고 주가는 요동쳤고 대부분의 시장 분석가들은 일시적인 조정 후 상승을 예상했다. 그래서 개인 투자자들의 상당수는 신용과 미수를 동원하는 등 풀 베팅에 나섰다. 일목균형표 등 각종 주가 관련 차트를 매일 손으로 직접 그려가며 시장 분석에 여념이 없던 그는 점점 강렬해지는 매도세를 통해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1997년 7월 말 고객에게 제공되던 신규 신용 공여를 지점장 재량으로 전면 중단하고 투자자들에게도 가급적 주식을 매도하라고 권고했다. 지점의 실적을 책임지고 있는 그가 거래 및 대출 수수료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돈줄이 막히자 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했고 직원들도 동요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후 국가 파산 사태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시세 차트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상당수 증권가 재야 고수가 그러하듯이 그의 출발은 증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았다. 1984년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LG전자 부산영업점에 배치됐다. 그의 업무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세일즈하는 것. 틈틈이 주식에 투자하던 그는 1987년 근무처가 있는 빌딩에 대우증권이 입점하면서 주식 객장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불어 닥친 주식시장 호황으로 두 달 만에 3000만 원을 1억5000만 원으로 불리는 ‘대박’도 터뜨렸다. “짧은 시간에 목돈을 버니 증권시장의 메커니즘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증권을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자연히 본업보다도 증권사 객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객장에 붙은 직원 채용 공고를 보고 ‘증권사에 들어가면 월급도 받고 눈치 보지 않고 증권 공부도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 응시했습니다.”동료들보다 증권가 입문은 다소 늦었지만 탄탄한 경제 이론과 밝은 실무 지식, 타고난 성실성이 결합되면서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시장에 흘러 다니는 정보에 의존해 투자하고 장세가 좋으면 대개 술판을 전전하던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주식 공부를 위해 당시엔 첨단 기기인 컴퓨터도 사고 외국 서적도 구입해 탐독했다. 주식시장의 원리에 깊이 빠져 사무실에서 밤샘 공부도 부지기수.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말처럼 그는 부산지역에서 손꼽히는 투자 전략가로 명성을 쌓았다. 당시 국내 증권가에는 제대로 된 증권 투자 지침서가 없을 정도로 척박한 상황이어서 박식한 그의 이론과 예리한 통찰력은 더욱 빛났다. 그는 1993년 일은증권으로 스카우트됐고 1997년 부산지점장으로 IMF를 맞았다. 그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증권사와 투자자들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일은증권과 대우증권에서 파생상품을 운용하면서 쌓은 실무를 바탕으로 차트 분석 기법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지금의 ‘타이쿤 파동이론’을 완성했다. 시장을 보는 그의 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도세와 매수세의 강도에 집중돼 있다. 시장이 보내는 시그널(매도세와 매수세)을 분석하다 보면 주가가 상승에서 하락, 혹은 하락에서 상승으로 전환되는 변곡점(變曲點)이 눈에 보인다는 것. 변곡점이 되풀이되는 주식시장에서 개인들이 대부분 돈을 잃는 것은 추세 관찰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증시 속성상 급락장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됩니다. 개인들은 자신이 보유한 종목만 쳐다보고 대세 흐름에는 신경을 덜 쓰기 때문입니다. 개인들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도 희망으로 버팁니다. 버티고 버티다 무너지면 바닥에서 던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외국인과 기관은 추세를 먼저 살펴보고 조정을 받아들입니다. 조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상승장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며, 조정 이후 다시 상승이 나오는 것이므로 조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약세장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술적으로 코스피는 갭 하락 후 1800 전반에 머무르고 있지만 일목균형표상 양(붉은색)의 구름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추가 전환 시그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당분간 시장을 관망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입니다.”‘타이쿤 파동이론’은 손태건 타이쿤투자연구소장이 지난 2005년 만든 독특한 투자 이론이다. 손 소장은 현재 매주 1회 한국경제TV ‘눈높이 증권’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양파동’이란 주제로 ‘타이쿤 파동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등 각종 매체의 칼럼을 통해서도 자신의 이론을 전파하고 있다. 이론의 핵심은 주가 그래프에서 캔들(Candle: 양봉과 음봉)의 음양 흐름을 기준으로 주가 파동을 계산해 추세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주가는 중장기적으로 상승파와 하락파가 누적된 숫자만큼 하락하거나 상승한다는 것이 그 요체다.예를 들어 주가의 장기 추세로 상승과 조정이 있겠지만 상승파(상승 추세)가 8번 일어난 뒤 하락파(하락 추세)가 7번 발생하고 그 이후 상승파가 3번 나타나면 향후 주가지수는 18번 상승파 아니면 18번 하락파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계산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상승 파동은 항상 양봉으로 시작하고 하락 파동은 음봉으로 시작한다. 캔들의 색이 같은 흐름이면 캔들 수와는 무관하게 하나의 파동으로 계산한다. 즉 3일 연속 상승해도 상승 1파로 친다. 또 주가의 직전 고점이 돌파되거나 붕괴되면 파동 흐름을 바꾸어 셈한다. 가령 2000원에 시작한 개별 주식의 주가가 3일 연속해 상승해 2600원이 된 후(상승 1파), 2일 동안 500원 빠지고(상승 2파), 다시 하루 올랐다면(상승 3파) 이 기간의 상승파는 모두 3파다. 하락 시에도 직전 주가(2000원)가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손 소장은 “주가는 상승 5파와 하락 3파에 의해 끝없이 순환한다는 엘리어트 파동이론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듯이 타이쿤 파동이론도 흠이 없는 불변의 이론은 아니다”면서도 “2006년 12월 이후 주가의 급등락을 설명하는 유효한 지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글 김태철·사진 이승재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