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와 기량 면에서 뛰어난 외국의 유명 서커스단의 공연을 보면 어린 시절 보았던 서커스와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가 사람들을 압도한다.지금은 동춘서커스 외에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네 어귀에서 서커스를 공연했다. 한낮에는 서커스 공연을 알리는 광대의 북소리를 동네 개구쟁이들이 뒤쫓아 다니고 저녁나절에는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해 천막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커스 공연이라고 해보았자 천막에서 공연하는 간이무대였지만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에는 한여름 밤 동네 잔치였다. 어린애들은 졸음을 쫓아가면서 공연을 보았고 천막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한 아이들은 공연이 시작된 후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보곤 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서커스는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소재다. 다이내믹한 서커스 공연에 매료된 화가들은 관람객으로만 남지 않고 그들의 공연을 화폭에 옮겼다.1875년 파리 프로도 광장에서 공연을 시작한 페르낭도 서커스 공연을 4번 이상 관람한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흑백 혼혈의 그네 곡예사 라라 양 공연에 매료돼 그 모습을 남겼다. 당시 서커스는 몽마르트 예술가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고 많은 예술가들이 서커스 공연을 찾았다. 이 시기에는 드가, 로트레크, 쇠라가 서커스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했다. 드가의 ‘페르낭도 서커스의 라라 양’은 곡예사 라라 양이 가느다란 밧줄에 매달려 공중에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라라 양은 그네에 매달려 입에 물고 있는 대포에 불을 붙이는 묘기 때문에 ‘대포 여인’이라고 알려져 있다.이 작품 속의 라라 양은 입에 쇠사슬을 물고 서커스 장의 둥근 천장 속으로 마치 빨려 들어갈 듯한 묘기를 펼쳐 보이고 있지만 드가의 시선은 그녀의 묘기에 있지 않다. 또 그네나 구경 온 관중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드가는 곡예사 라라 양과 서커스 장의 돔형 천장 건축물에만 관심을 가졌고 서커스 장의 다른 분위기는 생략해 버렸다. 이러한 드가의 의도는 스냅사진 같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이 작품은 사선과 수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으로 수평선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라라 양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것은 위로 뻗어 나가는 구도다. 드가의 이 작품은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아 화면 위에 붉은 선으로 극단적인 원근법을 사용했으며 밑에서 곡예사를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구성했다.페르낭도 서커스에 매료된 화가는 드가뿐만이 아니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역시 서커스를 즐겨 관람했다. 르누아르의 곡예사들은 특유의 밝고 세련된 색상으로 표현됐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본 드가의 작품과 다른 분위기다. 르누아르의 ‘페르낭도 서커스단의 곡예사들’은 곡예사 프란시스카와 안젤리나가 서커스 공연을 마치고 관람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고 있는 소녀가 프란시스카며 그 옆에 관람객들을 외면하고 품에 오렌지를 안고 있는 소녀가 안젤리나다. 르누아르는 그녀들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독일 유랑 극단의 단원이었던 열일곱 살의 프란시스카와 열다섯 살의 안젤리나는 그림 속의 소녀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녀들은 사춘기 소녀의 몸보다는 힘이 세고 골격이 큰 전형적인 곡예사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르누아르는 밝음과 따뜻함, 그리고 발랄함을 사랑해 어두운 현실을 그리지 않았던 화가다. 이 작품 역시 예술의 목적은 기쁨을 주는 데 있다고 한 그의 신념에 맞게 어린 곡예사의 현실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상의 세계를 표현했다.서커스를 가장 사랑했던 화가는 마르크 샤갈(1887~1985)이다. 그는 춤, 연극, 음악뿐만 아니라 서커스의 꿈같은 세계를 동경했다. 서커스에 대한 샤갈의 애정은 그가 유년시절에 고향에서 보았던 집시들의 공연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1926년께부터 샤갈은 줄타기 곡예사, 광대, 마술사와 동물들이 등장하는 서커스 작품을 통해 순수한 세계의 경이로움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서커스는 샤갈에게 성공적인 주제였다. 그는 구아슈, 유화 등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서커스를 표현했다. ‘푸른 서커스’는 샤갈의 서커스 작품 중심에 있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선량한 눈과 물고기가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맑고 투명한 푸른색 속에 샤갈이 항상 그리워하던 첼로 연주하는 집시, 닭, 꽃 등은 심연의 깊은 물속에 잠겨 있다. 그런 소재들은 이미 그의 작품 속에 일관성 있게 자주 등장하고 있는 소재들로서 샤갈의 고향 러시아를 상징하고 있으며 그의 중요한 작품 테마다. 푸른 색 화면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붉은 색으로 표현한 곡예사와 초록색 말이 화면의 단조로움을 막아준다.샤갈은 “서커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 기쁨과 오락을 찾는 인간의 추구와 관련 있는 가장 격렬한 외침은 최고의 시의 형태를 취한다”라고 말했다.푸른 서커스-1950년, 캔버스에 유채, 222×175cm, 개인 소장페르낭도 서커스의 라라 양-1879년, 캔버스에 유채, 117×7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페르낭도 서커스단의 곡예사들-1879년, 캔버스에 유채, 130×9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