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리모델링 활성화 조건

파트 단지 전체 가구를 리모델링하겠다는 움직임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위가 결성됐다는 플래카드가 자주 눈에 띄고 사업 규모도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여태껏 300~400가구 규모의 사업을 주로 수주했던 건설 업체들은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 리모델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분당 일산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도 리모델링 추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아파트 단지 리모델링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우연한 기회에 중동 신도시 내 한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간담회를 구경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생활 불편, 재건축의 대안, 집값 상승 기대가 리모델링 추진 이유로 압축됐다. 입주 당시에 비해 자동차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빚어진 주차 공간 부족을 해결할 수단으로 리모델링을 꼽았다. 배관이 노후화된 데 따른 설비 교체도 리모델링의 주요 이유로 등장했다.신도시에선 재건축을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던 차에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 있는 연한이 준공 후 15년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도 리모델링을 재건축 대안으로 모색하고 나섰다. 꼭 신도시 아파트가 아니라도 재건축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아파트 단지들은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리모델링을 집값 올리기의 한 방편으로도 삼고 있음도 확인됐다. 중동 리모델링 간담회의 사회자는 “브랜드 있는 대형 건설회사가 공사를 맡고 아파트 이름을 바꾸면 집값이 리모델링 이전보다 오르지 않겠느냐”며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중동 아파트 단지 간담회에서 나온 리모델링 추진 이유가 모든 아파트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통분모가 상당 부분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런 현실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리모델링 추진 단지 수에 비해 실제로 리모델링이 이뤄진 단지가 극히 적은 이유는 뭘까. 재건축에 비해 리모델링의 메리트가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돈 적게 들이고도 큰 집으로 늘려 새 집 갖는 재건축의 달콤한 매력에 익숙한 조합원이라면 집도 크게 늘어나지 않는 데다 내 돈까지 들여야 하는 리모델링은 상대적으로 흡입 요소가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내 돈을 아주 적게, 또는 장기 저리로 빌려서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수 있다면 나서는 사람이 많을까. 그렇게 하려면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 정부 지원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수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익(公益)을 감안하는 리모델링이어야 정부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갖는지 해외 사례를 떠올려보자. 프랑스 일본 독일의 리모델링은 각각의 특징이 있다. 건물 여건을 개선한다는 공통의 목표 외에 각국 리모델링을 특징지을 수 있는 목표들이 있다.프랑스는 옛날 건물을 복원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숭례문 바닥을 시멘트로 발라버리는 식의 그런 복원은 프랑스에서 예상하기 힘들다.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건물 준공 당시의 재료와 감각을 살려 옛날 건물을 복원하는 게 프랑스 리모델링의 특징이다. 그런 리모델링이라면 정부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건물 때문에 벌어들이는 관광 수익이 정부 지원을 충당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적인 요소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 리모델링은 건물의 지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진이 발생해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리모델링을 한다는 데 정부가 지원에 인색할 수 있을까.독일 리모델링은 우리도 모델로 삼을 만하다. 독일 리모델링의 핵심은 에너지 절감이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수입국인 독일은 에너지를 줄이는 리모델링을 하면 정부 지원이 따른다. 통상 주택의 에너지 사용량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사용을 줄여나가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지 계량한 후 신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야만 정부 지원 효과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감소돼 공익 명분도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리모델링에 대규모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그런데 국내처럼 아파트 크기를 늘릴 목적이거나 집값 상승이 목적이라면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들다. 사익(私益)을 위해 세금을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활 편의나 시세 차익보다 독일처럼 에너지 절감을 이유로 내세우고 증명된 기술로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겠다고 나서면 정부도 움직일 법하다. 공공기관이나 건설회사가 공익 명분이 충분한 기술을 앞세워 리모델링을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시세 차익 기대 심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에너지 절감을 목표로 한 리모델링은 국내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반론도 예상되지만 검증할 수 있는 리모델링 기술과 기법이 있다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본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리모델링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며 감히 내보는 의견이다.글 김호영 레노베르(www.renovert.co.kr) 이사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