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e Epoque

년부터 파리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유럽판 뉴욕 헤럴드는 일명 ‘파리 헤럴드’라고 불렸다. 신문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던 그 해를 끝으로 발행을 멈췄다. 15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이 신문은 오직 벨 에포크(Belle Epoque) 만을 위한 신문이었던 셈이다. 파리에서 발행됐지만 200부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황실로 발송됐으며 그 독자층은 로마노프 왕가와 귀족들이었다. 이 시기에는 비단 러시아 왕실뿐만 아니라 뉴욕은 물론 당시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와 아르헨티나의 부호, 모나코 왕족들까지 세계인의 이목이 오직 파리로 모아졌다. 파리 헤럴드는 한 세기가 지난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펼쳐 봐도 생생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다양한 기사들이 컬러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멋스럽게 넘실대고 있다.정말 좋았던 그 시절, 거리에는 상업 포스터가 나붙고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면 맥심과 사보이 레스토랑에서는 귀부인들이 화려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우아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가 넘쳐 흘렀다. 물랭루주에는 이국적인 축제가 밤을 밝히고 아름다운 꽃의 파리를 이뤘다. 얼마 전 상영된 영화 ‘물랭루주’에서 주인공인 몬로스 공작이 사틴에게 선물한 목걸이는 실제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서 무려 100만 달러에 낙찰된 바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듯 당시 주얼리는 다이아몬드를 텍스타일처럼 촘촘히 박고 전체적인 실루엣을 만들었다. 이것은 가공 기술의 개가였기에 주얼리 디자인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그 후 쇠퇴로 이어지는 나날들, 1900년대 초의 파리를 아는 사람들은 한없는 애착심을 가지고 이 시대를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되뇌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주얼리와 드레스는 특별한 이미지를 남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분야에서는 벨 에포크라는 스타일 용어를 사용하길 꺼린다. 왜냐하면 아르누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얼리 양식을 논하고자 할 때는 벨 에포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짧지만 개성이 뚜렷하고 다른 시대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형태를 취하면서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벨 에포크 주얼리의 특징은 백색의 우아함이다. 플래티넘을 사용한 다이아몬드 세팅이 거의 백색의 환희를 연출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이러한 세공을 할 수 없었을까. 물론 비슷한 세공을 할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 금이나 은, 그리고 백금으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그러나 강도의 문제 때문에 두께가 늘어났으며 약함을 보정하기 위해 덧대는 세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플래티넘을 직접 주얼리 가공에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융점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산소 용접이 가능해진 190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됐다.이즈음에 남아프리카 킴벌라이트 광산이 발굴돼 다이아몬드의 공급이 늘어난 것도 벨 에포크 시대를 다이아몬드 시대로 바꾼 요인이다. 이때부터 중산층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들도 다이아몬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상류층의 여성들은 보다 크고 품질도 좋은 다이아몬드로 차별화를 시도하게 된다. 큰 다이아몬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탱하고 있는 금속은 최대한 얇게 보이고자 했으니 당연히 플래티넘의 역할은 커졌다.나이프 에지(knife edge)라 불리는 날카로운 밴드로 다이아몬드가 떠있는 듯한 세팅을 시도한 티파니가 명성을 얻자 모든 주얼리 세공은 이 방향으로 가게 된다. ‘밀그레이닝’이라는 기법으로 플래티넘의 표면에 낱알을 새긴 것과 같은 이미지로 다이아몬드가 발산하는 광휘를 더욱 산란시켜 그 광채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공급 확대는 커팅에서도 변화를 가져와 무게나 크기에 연연한 올드 커트(old mine cut)에서 이제는 과감하게 미학적으로 날렵한 유러피언 커트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다양한 커트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코코 시대의 모티브를 참고하게 된다. 다만 로코코 시대의 주얼리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시대의 건축이나 도자기, 의상의 레이스 같은 것을 인용했고 로코코 특유의 스크롤 형식을 배제해 그것을 받아들인 아르누보와 구별되는 양식을 만들었다.이 시대에 가장 주목 받은 디자인 요소는 로코코 시대를 대변하는 화관, 즉 갈런드 스타일(Garland style)로 하트 모양이나 장식용 술인 태슬(tassel), 리본이나 매듭, 아칸서스, 꽃 줄(swag) 등이었다. 한편 일본의 양식 진주가 성공한 시기도 이즈음이서 미키모토 진주는 진주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다이아몬드와 함께 그 시절을 빛낸 또 다른 요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