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한국가스공사

장이냐, 분배냐’ 요즘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다. 노무현 정부 들어(사실 그 이전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이 붙었던 ‘성장 대 분배’ 논란은 급기야 증시로까지 번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라고 이름 붙여진 이른바, ‘장하성 펀드’의 등장으로 기업들이 과연 잉여자본을 성장을 위한 투자에 쓸 것인가, 아니면 분배를 위한 배당에 쓸 것인가가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주주 가치 증대라는 원칙을 놓고 보더라도 성장이 옳은 것이냐, 분배가 옳은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은 분배가 유리할 수 있어 보이지만 투자를 통한 성장이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 우선이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국가스공사도 요즘 ‘성장이냐, 분배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종목이다. 이 회사는 1999년 말 증시에 상장된 이후 7년 가까이 배당 투자 유망주로 알려져 왔다. 가스 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요금 규제가 일정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회사는 구조적으로 고성장만을 최우선 목표로 추진하기 힘들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익을 성장을 위한 재투자보다는 주주 가치 증대를 위한 배당 등에 써왔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규제가 있는 산업치고 주주 분배를 소홀히 하는 기업은 없다. KT 등 정부의 요금 규제에 묶인 통신업체들이 대표적 경우다.어쨌든 가스공사는 정부의 규제를 받지만, 반대로 정부의 보호를 받는 천연가스(LNG) 도매 분야 독점사업자로 망할 우려가 사실상 없는 데다, 매년 안정된 이익을 내고, 배당 투자 가치도 우수해 장기 투자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주식 중 하나로 인식돼 왔다. 실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을 뽑으면 매년 10위 안에 드는 종목이기도 하다.그러나 가스공사가 최근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회사 측이 투자를 통한 제2의 성장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뜻을 갖고 있는 데다, 정부도 규제 수준을 완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당’과 ‘성장’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투자자들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가스공사에 대해 여전히 배당 투자 매력으로 접근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성장 가치에 무게를 두고 투자해야 할지 분간이 안 간다. 그동안 가스공사를 배당주로 여겨 투자해 왔던 사람들은 “앞으로 배당 매력이 사라지면 어떡하나.”를 걱정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장주로 탈바꿈한다 해도 IT 등 다른 성장주에 비해 매력이 뒤질 텐데.”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는 기우(杞憂)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배당은 한 번 높이면 여간해서 낮추기 어려운 하방경직성을 갖고 있어 적어도 현 수준의 배당 정책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성장을 추구할 경우 그동안 가스공사의 단점 중 하나였던 ‘저성장’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배당 매력과 성장 매력을 동시에 지닌 안정적인 투자 대안으로서 가스공사의 기업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그렇다면 가스공사의 기업 가치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장기 투자 시 어떤 매력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국내 가스 산업 구조부터 알아보면, LNG 산업은 도시가스사업법 제2조에 따라 도시가스사업자 등에 LNG를 공급하는 사업인 ‘가스도매사업’과 가스를 제조하거나 가스도매사업자로부터 LNG를 공급받아 일반 가정에 배관으로 공급하는 사업인 ‘일반도시가스사업’으로 구분돼 있다. 도매 부문은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으며, 소매 부문은 33개의 일반 도시가스사업자가 허가된 권역에서 독점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가스도매사업은 한국가스공사 독점사업이며 대규모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고, 사업 허가에 대한 법적 규제로 인해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다.그동안 가스공사는 독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까닭에 정부의 규제를 받아 왔다. 다시 말해, LNG의 독점 도입 및 판매권을 갖고 있지만, 배타적 권리가 정부에 의해 보장되는 대신 정부가 직접적으로 요금, 즉 공급 마진을 결정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 수준이 바로 가스공사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 온 셈이다. 어찌 보면 가스공사의 기업 가치가 자체 성장성이나 경영자의 자질 등의 요소가 아닌, 정부의 규제 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배당 투자 중심으로 이끌어 왔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최근 정부의 규제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 변화를 알기 위해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정부가 가스공사에 대해 규제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의 에너지 다변화 정책에 따라 1983년 설립된 가스공사는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스 판매량이 매년 큰 폭 증가해 고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2002년 들어 수요가 급격히 둔화되고 설비 투자가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르면서 잉여현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정부로선 국민들에게 요금 인하 혜택을 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 것이다.때문에 2002년부터 규제 강화로 바뀌기 시작, 2005년에는 그 수위가 극에 달했다. 연간 700억~800억 원에 달하는 해외 투자 수익을 모두 요금 인하에 반영토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LNG 수요가 다시 늘고 해외 자원 개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어 정부는 다시 가스공사의 성장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파악되고 있다. 우선 올초 LNG 도입 창구를 가스공사로 일원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1998년 석유사업법을 개정하면서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LNG 직도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세계 LNG 시장이 판매자 중심의 마켓(seller’s market)으로 변하면서 국내 LNG 업체들의 가격협상력이 문제가 되자, 정부가 다시 가스공사로 단일화한 것이다. 윤희도 한국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장은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가스공사의 가격협상력이 강화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정부 정책 변화의 시그널이 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윤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정책 변화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 요금 인하에 반영하고 있는 해외 투자 수익을 가스공사의 해외 투자 재원으로 활용케 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며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공급 마진 규제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 변화가 현실화할 경우 가스공사가 1980~90년대와 같은 고성장 시대를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향후 시장 개척에 따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해외 자원 개발사업이 가스공사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스공사의 해외 사업은 주로 해외 가스전에 대한 지분 투자다.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선행 투자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가스공사는 현재 오만과 카타르 등의 가스전 지분을 보유하면서 매년 수백 억 원대의 배당 수입을 얻고 있다. 당초 지분 투자비 206억 원에 비하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해외 지분 투자 수익은 4611만 달러(약 443억 원)에 달한다. 연간으로는 900억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가스공사의 향후 실적 전망은 어떨까. 가스공사는 2002년부터 정부의 요금(공급 마진)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저조한 흐름을 보여 왔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영업실적은 다시 개선 추세로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 투자 수익 가운데 요금 인하로 반영되는 비율이 낮아질 예정인 데다, LNG 판매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이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전년 대비 9.4%, 13.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이에 따라 2007년 영업이익률은 2006년 대비 0.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증권은 2007년 영업이익이 2006년 대비 26.1%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7년, 2008년에 각각 9.7%, 11.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마지막으로 가스공사의 투자 매력을 살펴보자. 증권사들이 추정하는 올해 예상 배당금은 주당 1500원 정도다.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배당수익률은 4.0%로, 배당 투자만 갖고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사실 가스공사의 배당 투자 매력이 절정을 이뤘던 것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이었다. 2002년부터 정부 규제 본격화로 영업실적이 악화된 가운데서도 가스공사는 잉여현금을 이용한 배당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덕분에 당시 3년간 주가는 시장 평균 대비 44.6%나 초과 상승했다.이은영 애널리스트는 “가스공사에 대해 이제부터는 배당주보다 성장주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가스공사의 기업 가치는 규제 완화와 성장 전략으로 인해 크게 변화할 것.”이라며 “규제 완화와 성장 전략의 귀착점은 바로 주주 가치 상승”이라고 진단했다.배당주 투자 전문가인 곽태선 SEI에셋코리아 사장은 약간 다른 관점에서 가스공사를 좋게 평가했다. 그는 “최소한 시중 금리 수준의 안정적인 배당이 지속된다면 배당 수익에다 시세 차익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어 장기 투자에 안성맞춤인 종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