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동에 사는 김주연(54·여) 씨는 투자 목적으로 작년 8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소재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지은 지 20년이 다 돼가는 이 아파트는 김 씨가 매입할 때만 해도 곧 재개발, 재건축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매입 직후 8·31 대책이 발표되면서 모든 움직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 씨는 달리 방법이 없어 몇 달간 상황을 지켜봤지만 떨어지는 집값을 보고 있으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그러던 차에 김 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의 도움으로 리모델링 컨설팅 전문가를 만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 씨가 생각한 리모델링은 인테리어를 개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리모델링은 단순히 외관이나 내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용도 변경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계륵(鷄肋)’과 같았던 성산동 아파트가 생각이 났다.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김 씨의 아파트는 월세를 받는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 났다. 15평짜리 소형 아파트여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받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세입자 타깃은 20대 미혼 남녀, 신혼부부로 맞췄다. 여기에는 김 씨의 아파트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젊은 세입자들을 위해 집안 곳곳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발코니를 넓혔다. 거실 벽면과 천장을 회벽으로 처리한 뒤 여기에 은은한 분위기를 내주는 조명기구를 설치해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 나게 했다. 안방과 거실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공간을 최대한 없앴다. 화장실에는 욕조를 없애고 독립형 샤워 부스를 설치했다. 리모델링하면서 들어간 돈은 3000만 원. 하지만 공사 이후 김 씨의 아파트는 동네에서 가장 인기있는 월세집이 됐다. 총 투자액 대비 수익률은 연 9% 대로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세는 가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부동산 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을 분위기다.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위력을 더하면서 모든 분야가 꽁꽁 얼어붙었다. 거래가 뚝 끊긴 상태에서 매물만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역발상 전략이 빛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싼값에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직후의 부동산, 주가 폭락 때 기회를 잡아 엄청난 부를 축적한 투자자들이 좋은 예다. 리모델링은 ‘저가 매입’을 통해 상품 가치를 높이는 특성상 불황기에 더욱 효과가 있다. 전문가들이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리모델링의 가치를 높게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리모델링은 흔히 화장(化粧)에 비유된다. 화장의 목적은 사람의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데 있다. 독창적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어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경향과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화장의 목적을 탐미적(耽美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원래 화장의 목적은 강한 햇볕이나 먼지, 대기 오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건강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유지해 주는 데 있다. 리모델링도 마찬가지다. 리모델링은 단순히 건물의 내·외부를 고쳐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화장과 마찬가지로 리모델링은 햇볕, 비, 바람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해 건물의 내구 연한을 최대한 늘리는데 목적이 있다. 새롭게 바뀌는 투자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용도를 그 때마다 바꾼다는 점을 빼고는 화장과 큰 차이가 없다.리모델링은 말 그대로 주택을 재가공(Re+Modeling)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리모델링의 영역은 내부를 수리하는 인테리어보다 훨씬 넓다.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건물의 중심이 되는 지붕 보 바닥 내력벽 등을 철거하거나 변형해 재산적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총칭한다. 증축, 개축, 이전, 용도 변경과 건물 구조 안전 강화, 자산 가치 보강 등이 모두 리모델링에 포함된다. 일본 미국 등지에서는 리폼(Reform)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고도 한다. 과거 주택에만 적용됐던 리모델링은 최근 와서 상가 오피스 오피스텔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토지를 새롭게 개량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리모델링의 범주로 들어오고 있다.리모델링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오래된 배수관을 고치는 것, 화장실을 수리하는 것, 물탱크를 설치하는 것, 마루를 새로 까는 것 등이 모두 리모델링이다. 이뿐만 아니라 새 아파트 입주 시 흔히 볼 수 있는 발코니 확장도 기능성 강화를 위한 주택 리모델링의 또 다른 모습이다. 리모델링은 무분별한 재건축, 재개발로 인한 환경 오염과 자원 낭비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리모델링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그렇다면 국내 리모델링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리모델링의 범위가 넓은 데다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어서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내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이 1조500억 원 대로 커진 것을 감안하면 전체 리모델링 시장은 3조 원 대일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박사는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규제 강화로 리모델링의 수요가 늘어나 오는 2010년에는 10조 원 대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리모델링에 있어서 빠질 수 없이 것이 바로 수익성 분석이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개·보수해야 하기 때문에 상권 등 수익성 분석이 필수다. 상권은 크게 광역 상권, 부도심 상권, 지역지구 상권, 근린생활 상권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중소형 리모델링은 지역지구 상권과 근린생활 상권과 관계가 깊다. 가령 주택을 리모델링할 때는 주택으로서의 효용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주변에 이미 비슷한 유형의 주택이 다량 공급됐다면 변신을 재고해야 한다.상가, 오피스 리모델링도 마찬가지다. 이들 건물은 주변 상권을 수시로 점검해 보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상권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실질교통량의 변화다. 주변에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 시설과 도로 등이 신설, 확충됐다면 임대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통시설 확충은 실질유동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만약 교통시설이 개선되기 이전에 물건을 구입하면 달라진 투자 환경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리모델링은 불필요한 공간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물의 효율성을 높이는 이점이 있다.트렌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가령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주변에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 여러 채 있다면 용도를 변경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도 있다. 다주택에 대한 부담이 큰 경우 오피스나 상가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단독주택도 리모델링 투자에선 효자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다. 논현동의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정선실(59) 씨의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정 씨가 이 집을 산 것은 지난 2000년. 그러나 구입한 후 매매값이 떨어진 데다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려워 속을 태워야 했다. 고심 끝에 정 씨는 마당이 딸린 이 주택을 3000만 원을 들여 사무실로 개조했다. 공사를 끝내고 임대 매물을 내놓은 지 며칠 되지 않아 한 벤처기업 관계자가 그녀를 찾아왔다. 테헤란로에서 회사를 운영하던 이 업체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사무실 이전을 추진 중이었다. 때마침 임대 매물로 나온 정 씨 집은 테헤란로에 비해 임대료가 30% 저렴한 수준이었다. 결국 정 씨는 세입자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단독주택을 사무용 건물로 리모델링해 안정된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리모델링은 건물의 수명도 연장해 준다. 일반적으로 모든 건축재는 수명이 제한적이다. 철근콘크리트는 100년, 목구조, 조적조는 25~30년 등이다. 이들 건축재를 사용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 전체에 심각한 노후가 발생한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내·외부를 리모델링해 건물의 수명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물론 리모델링은 신축이나 재건축에 비해 투입되는 자금도 적다. 통상 합리적인 수준은 신축 대비 70% 선. 소규모 상가나 오피스 빌딩의 경우 골조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기존 도면을 가지고 수선만 하기 때문에 설계, 감리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공사 기간은 신축에 비해 3~6개월가량 단축된다. 현장 방문과 동시에 증축, 구조 변경 여부, 인테리어 수준을 파악해 공사 범위, 예산, 기간 등을 결정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리모델링은 신축에 비해 적용받는 규제가 적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개조하기 때문에 행정 절차도 간단하다. 혜화동에 있는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최선식(62) 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최 씨의 집은 대지 30평에 건평 25평으로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할 생각으로 해당 구청을 찾은 최 씨는 18평 이상은 지을 수 없다는 뜻밖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 주차장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리모델링은 건축 당시의 법규를 적용받기 때문에 강화된 주차장법, 정화조법, 소방법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 수목부동산연구소 양은열 대표는 “전용 주거지에 있는 주택이거나 도로에서 4m 이내에 위치한 주택, 건폐율이 높은 주택은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재건축, 재개발은 규제를 많이 받고 있지만 리모델링은 오히려 정부의 권장 사업이다. 건축물 용도 변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고 절차도 대폭 간소화됐다. 그렇다고 해서 리모델링이 모든 문제의 정답은 아니다.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입지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공사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 전문 업체 2~3곳에 컨설팅을 의뢰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무리한 투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관할구청에 해당 리모델링 사업이 허가인지 신고사항인지 확인해야 한다. 사전에 이를 확인하지 않고 무턱대고 공사에 들어갔다가는 원상 복구 명령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공사 전에 관할구청을 방문, 기재사항 변경 신고서를 작성해 혹시 모를 재산 피해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① 구조적인 안전은 리모델링 전체의 성패와 직결돼 있다. 공사 전에 구조 안전 진단을 받아보고 대수선, 증축 여부 등을 점검해야 한다.② 리모델링의 목적, 소요 예산, 공사 시기 등을 미리 점검하는 것이 좋다.③ 업체를 선정할 때는 시공 실적을 먼저 살펴본 뒤 견적서와 애프터서비스 여부 등을 알아봐야 한다.④ 소음 분진으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면 공사가 지연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주변 이웃들로부터 공사 동의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⑤ 허가, 신고사항을 해당 구청에 확인해야 한다.⑥ 무작정 고급 자재를 쓰기보다는 중고 제품을 간단하게 손질해 공사에 들어가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⑦ 리모델링 관련 서적을 숙독한 후 기본 지식을 갖고 시공업체와 상담하면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