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의 세상읽기

제 700년 사직이 망할 무렵, 의자왕은 자신의 서자 41명을 전부 좌평으로 만들었다. 좌평은 오늘로 치면 총리나 장관 격이다. 그 전에는 5, 6명에 불과했던 좌평을 41명씩이나, 그것도 모두 자신의 서자들로 삼았다니 오기(傲氣) 정치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미루어 짐작건대 의자왕은 말년에 정치적으로 고립됐던 듯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충’이나 ‘흥수’ 같은 충신들은 죽거나 귀양을 갔고, 좌평까지 지낸 ‘임자’는 신라 김유신과 내통하면서 신변보장 각서 따위나 교환하고 있었다. 이미 환갑을 넘긴 의자왕은 혈육과 지친이 아니면 국가운영이 어려울 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구려가 망할 무렵의 사회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개소문의 20여 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린 뒤 그의 세 아들은 서로 싸우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차지할 욕심에 한심한 골육상쟁을 벌인다. 아버지가 싸우지 말라고 유언할 만큼 형제들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이를 이용하려는 간신배들은 주위에 또 얼마나 많았으랴. 결국 두 아우가 협력해 형을 치고, 형은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함으로써 고구려 700년 사직도 막을 내린다. 20여년 간 요동을 침범한 당나라 대군과 수십 차례나 싸우고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연개소문이 죽고 불과 2년 만의 일이다. 그에 비하면 통일기에 보여준 신라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저 유명한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은 10배나 많은 군사를 동원하고도 계백의 5000 결사에 밀려 맥을 추지 못한다. 그때 나선 사람이 ‘관창’과 ‘반굴’이다. 화랑의 대명사로 알려진 관창은 신라장군 ‘김품일’의 아들이고, 반굴은 ‘김흠순’의 자식이다. 김품일과 김흠순은 신라의 대표적인 장수다. 특히 김흠순은 김유신의 아우다. 요즘으로 치면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의 어린 자식들이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며 장렬한 죽음으로 수범을 보인 셈이다. 몇 해 뒤 당나라 대군이 신라에 쳐들어왔을 때 김유신의 둘째 아들인 원술은 석문벌에서 패해 도망쳤다. 그것도 도망을 치고 싶어 한 게 아니라 부관이 한사코 앞을 가로막고 만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유신은 이 일로 죽을 때까지 원술을 용서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산천을 떠돌던 원술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달려오지만 이번엔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내쫓는다. ‘아버지에게 아들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술과 같은 놈을 낸들 어찌 자식이라고 여기랴’는 게 어머니 지소부인의 대답이었다. ‘원술은 땅을 두드리고 통곡하면서 물러가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흥하는 데도 망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속담에 ‘흥망성쇠와 부귀빈천이 물레바퀴 돌 듯 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삼국의 700년 역사를 살펴봐도 각기 성기(盛期)와 쇠기(衰期)가 따로 물레바퀴 돌 듯 했다. 그런데 한 국가나 사회가 성기나 쇠기로 접어들 때는 지도층 전체가 그럴 만했다는 공통점들이 있다. 임금 한 사람, 장수 한 사람 때문에 성쇠가 결정된 예는 없다. 성기엔 영명한 군주 밑에 하나같이 뛰어난 장수와 신하들이 있었고, 쇠기엔 물론 그 반대다. 성기와 쇠기가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이치를 요즘 용어로 하면 ‘시대정신’일 수도 있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모럴’이나 ‘패러다임’일 수도 있다. 시대나 사회가 모두 그쪽으로 가는데 혼자만, 또는 몇몇 사람들만 역주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시대와 사회가 정신없이 향해 가는 곳이 과연 성기일까, 쇠기일까?대한민국은 건국 50여 년에 불과한 신생국가다. 대한민국이 흥하든 망하든 후대는 우리를 대한민국 초기의 사람들로 기록할 것이다. 선거철만 돌아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지도자를 뽑을 때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고 단점이 덜한 사람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지고 정치 참여에도 회의를 느낀다. 이래가지고 대한민국이란 국호로 몇 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시대에 훌륭한 인물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최근에 만난 사회 지도층 인사 가운데는 정말 존경할 만한 분들도 있고, 겪을수록 실망스러운 사람도 있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말 존경할 만한 분들이 국가를 이끌고 사회의 물줄기를 바꿀 만한 자리에 대거 포진할 시기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진다. 매사엔 다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신생 대한민국은 아직 때를 얻지 못한 셈이다. 장점이 많은 긍정적인 인물들이 여러 분야에서 쏟아져 나와 국가와 사회, 기업을 이끌어갈 때 우리 민족은 또 한번 크게 도약할 수 있다. 과거엔 마냥 앉아서 하늘이 점지해 주는 때를 기다렸지만 요즘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 헐뜯고 상대를 치지 못해 안달하는 자는 대개 경계함이 옳다. 상생(相生)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겸손하고 열정적인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려면 먼저 사람을 알아보는 우리 자신의 눈부터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