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 르꿀뜨르(Jaeger-LeCoultre) 공장 방문기

늘은 따뜻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어 주세요.” 예거 르꿀뜨르 공장을 방문하기로 한 날 기자들에게 떨어진 지령이다. 공장이 깊은 산중에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라는 것. ‘깊은 산골 옹달샘’은 아니지만 실제로 예거 르꿀뜨르의 공장은 제네바 시내에서 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약 1시간 정도를 들어가야 나오는 곳에 있었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달력 사진 속 스위스’ 그 자체. 멀리 눈 덮인 몽블랑이 보이고 드넓은 초원과 소들,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있는 마을을 여러 번 통과하게 된다. 잠시 후, 산중에 있을 것 같지 않아 더욱 신비로운 커다란 호수를 끼고 르 산티에 마을이 보였다.세계 최고 시계 명장들의 고향 발레 드 주. 그곳의 작은 마을인 르 산티에는 16세기 위그노 교도들이 종교 박해로부터 피난처로 삼은 스위스의 외딴 계곡이다. 4월, 심지어 5월까지 눈이 내리는 곳으로 그 안에 고립돼 청교도적인 끈기와 수공예 기술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시계 마을이 형성됐다.이곳엔 바쉐론 콘스탄틴을 비롯한 수많은 시계 브랜드들의 공장이 들어서 있지만 그중 가장 크고 좋다고 손꼽히는 것이 바로 예거 르꿀뜨르의 공장이다. 공장은 호수를 중심으로 총 세 동으로 나뉘며 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무브먼트를 생산하는 메인 공장과 주얼 세팅만 전문적으로 하는 공장, 그리고 탁상시계인 애트모스를 생산하는 공장이 그것이다. 예거 르꿀뜨르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공장에 오기가 쉽지 않은 만큼, 지금까지 방문한 한국인들의 숫자가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고. 그만큼 이번 공장 방문의 의미는 남달랐다.메인 공장에 들어서자 예거 르꿀뜨르의 대표적 시계인 리베르소 모양의 큰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벽에는 175년의 브랜드 역사를 자랑하듯 오래돼 빛바랜 시계 도면들이 걸려 있고 모든 방마다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인물이나 무브먼트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공장에서 제공하는 가운을 입고 가장 처음 찾은 곳은 디자인실.시계가 탄생되기 위해 거치는 첫 관문으로 문자반, 케이스, 스트랩까지 모든 디자인을 관장한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시계 도면을 정립하고 부품의 재질과 구성을 정확한 수치로 계산해 예측한다.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각 무브먼트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찍어내는 곳. 세계에서 가장 작은 칼리버101에서 탁상시계 애트모스의 커다란 부품까지 총망라한다.들어서자마자 부품 생산을 위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부품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제조된다. 기다란 금속을 기계 안에 넣어주면 레이저나 날카로운 칼날들이 부품을 만들어내는 방법과 거푸집의 틀로 찍어내는 방법이다. 한 개의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200여 가지의 거푸집이 사용되고, 과거 것까지 총 1만 개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전의 것들을 보유하는 이유는 추후에 애프터서비스를 위한 것. 아무리 오래 전에 구입한 시계도 이곳에서 부품을 재생산해 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고객 만족도와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제일 꼭대기 층에는 예거 르꿀뜨르의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옹 등 컴플리케이션 워치만 제작하는 시계 장인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곳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이중으로 돼 있어 신발 바닥에 묻은 이물질을 떼어내고 들어가야 한다. 내부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했다. 이곳 장인들은 각자 맡은 시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조립한다. 이후 애프터서비스가 들어왔을 때는 그 시계를 만든 장인만이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기술이 독립적이고 뛰어나다.이러한 여러 과정을 통해 시계가 완성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거 르꿀뜨르만의 테스트가 있다. ‘1000시간 테스트’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시계들이 상품화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치는 통과의례다. 계산된 충격을 가하고 방수 기능을 5기압까지 테스트하며 다양한 온도 변화를 거친다. 이로 인해 예거 르꿀뜨르의 모든 시계는 여타 브랜드들처럼 스위스 정부가 인정하는 테스트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깐깐한 스위스 사람들마저도 인정해 마지않는 예거 르꿀뜨르의 숨은 저력은 바로 이 공장에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발레 드 주(스위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