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년의 역사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까르띠에의 큰 자산이다. 긴 세월, 숱한 이야기들이 녹아든 제품들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과거 왕실의 보석들을 사들여 1989년부터 전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열어 온 ‘아트 오브 까르띠에’ 전시회가 4월 한국에 상륙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주최로 4월 22일부터 7월 13일까지 약 3개월간 덕수궁 미술관에서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갖는 것.까르띠에 컬렉션은 프랑스 파리의 프티 팔레 미술관(1989),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1992), 영국의 대영박물관(1997),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1997~98), 상하이박물관(2004)과 모스크바의 크렘린박물관(2007)과 같이 명성 있는 기관에서 이미 개최한 바 있는 근대 공예사의 중요한 보고(寶庫)다. 이번 까르띠에전에서는 컬렉션 작품 267점, 까르띠에 아카이브의 드로잉 작품 76점, 유리 원판 사진, 장부, 공방 작업대 등을 다양하게 살펴봄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한 시대감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집트인도 일본 중국 등 동양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대거 소개할 예정이다.이번 전시회는 까르띠에 컬렉션이 지금까지 선보인 전시회 중 최대 규모로서 1853년 설립 후 거의 전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망라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공방 작업대, 창작자의 사진까지 포함돼 있어 프랑스 공예 역사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작품에 깃든 장인 정신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머리, 다리, 꼬리 부분이 연결돼 유연하다. 바버라 허튼(1912~1979)에게 판매됐는데 그녀는 영국 울워스(Woolworth’s) 소매 체인을 창시한 프랭크 울워스의 손녀딸로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 중 하나였다. 금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구성돼 있으며 루마니아 왕족이 소장했다. 달 착륙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파리에 온 아폴로선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피가로 지가 주문한 것. 우주선의 꼭대기에는 금으로 ‘마이클 콜린즈에게 피가로 지의 독자들이’라고 새겨져 있다.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구슬에 콜릿(collet) 세팅으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목걸이. 데이지 펠로스 부인(Mrs. Daisy Fellowes)의 특별 주문에 의해 제작됐으며, 그녀의 딸인 카스테야 백작부인(Countess of Casteja)에게 전달됐다. 데이지 펠로스는 1920~30년대의 잡지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여성 패션 리더’로 지목한 여인이었다. 파리 사교계를 사로잡았던 데이지는 우아함의 필수 요소인 감각과 대담함의 소유자였다. 20세기의 유명한 사진가이며 걸출한 카페 소사이어티의 멤버였던 마이어 남작(Baron of Meyer)이 소장했다. 뚜껑의 안쪽에는 20개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 코코 샤넬, 미 샤 셀트, 데이지 펠로, 페기 구겐하임, 세실 소렐 등 당대의 유명인사들이 사인의 주인공이다. 불행히도 현재로선 완전하게 판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기의 로맨스’의 주인공, 영국 윈저 공(Duke of Windsor)이 부인에게 선물한 목걸이. 터키석을 제외하고 목걸이 제작에 들어간 모든 원석을 윈저 공이 제공했다. 윈저 공작부인(심프슨 부인)은 이 목걸이를 매우 좋아해 자주 착용했다. 까르띠에가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제작한 일본 ‘신사문(shrine gate)’ 시리즈의 6개 시계 중 한 작품. 트랜스미션 액슬(transmission axle)은 락 크리스털 크로스바(crossbar), 산호 카보숑으로 가려졌다. 인도 스타일 목걸이로서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가였던 오그덴 밀스(Ogden Mills)의 딸인 그라나드 부인(Lady Granard)이 소장했다. 까르띠에 런던의 단골 클라이언트였던 그녀는 특히 티아라를 좋아해서 1922년부터 1937년 사이에 3점의 티아라를 주문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까르띠에는 다양한 모양의 갇혀 있는 새들을 디자인했는 데, 이는 점령된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파리가 해방됐을 때 프랑스 국가 색깔이 입혀진 새가 해방의 기쁨을 표현하며 새장에서 큰 날갯짓을 하고 있다. 장 투생이 디자인했다. 삼차원 입체 장미꽃 모양의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세팅’으로 제작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 까르띠에가 1933년 3월에 특허를 출원하기도 한 이런 유형의 세팅은 보석을 고정하는 마운트를 완전히 가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띠에는 보석의 재질을 생각하지 않는 세팅 방법이라는 이유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